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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정말 기업비밀 유출 불러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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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정말 기업비밀 유출 불러올까

입력
2018.04.24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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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명ㆍ함유량ㆍ유해성 등 기재된

MSDS, 고용부에 제출 의무화

기업 “원료ㆍ함유량 노출만으로도

타기업서 유사품 생산 가능” 반발

정부 “장관 비공개 승인 받으면

대체 명칭ㆍ함유량 허용 문제없다”

EU에 비해 강력한 규제는 사실

반도체공장 환경보고서 이어 2R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고용노동부가 28년 만에 착수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면개정 작업이 경영계의 거센 반발에 맞닥뜨렸다. 경영계는 개정안 내용 중 물질안전보건자료(MSDSㆍMaterial Safety Data Sheet)의 정부 제출과 사전심사제 도입을 문제삼고 있다. MSDS는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사용ㆍ관리하기 위해 이를 제조하거나 수입하는 업자가 제품명과 구성 성분, 함유량, 유해성과 위험성 등을 기재하는 문서로, 지금까지는 정부에 낼 필요 없이 사업장에만 비치해왔으나 개정안은 MSDS를 고용부에 반드시 제출하도록 했다. 또 업자의 재량에 따라 영업비밀로 보호할 성분은 쓰지 않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장관의 비공개 승인이 있어야 해당 물질에 대한 정보를 적지 않을 수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대중에게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작업환경보고서 공개를 두고 한바탕 갈등을 겪은 터라 ‘알 권리’를 넓히는 산안법을 둘러싼 논란은 더 증폭되는 양상이다.

“영업기밀이 근로자 안전에 우선할 수 없다”

23일 고용부는 법 개정 취지에 대해 “영업비밀 기재 남용으로 화학물질정보에 대한 알 권리가 제한되고, 근로자들의 직업병 위험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2011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조사대상 73개 화학제품제조 사업장이 보유한 MSDS 중 45.5%에 영업비밀이 적용됐고, 이 비율은 2014년 67.4%까지 뛰었다. 이처럼 영업비밀을 이유로 구성 성분을 기재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화학물질을 다루는 사업장 근로자들의 질병 발생 시 업무 연관성을 입증하기 어렵고, 직업병의 위험성도 높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이번 산안법 개정안으로 화학제품의 전체 성분이 공개되는 것처럼 아우성치지만 이는 과장된 측면이 많다. 인터넷에서 대중들이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사업장 정보, 유해물질 명칭 및 유해ㆍ위험성 정도뿐이다. 고용부는 오히려 MSDS에 기재되는 정보의 양은 지금보다 줄어든다고 항변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MSDS에 제품에 들어간 모든 화학물질을 적어야 했지만, 앞으로는 국제 기준에 부합하도록 유해ㆍ위험한 화학물질만 적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비공개 승인을 받으면 대체명칭과 대체 함유량을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A제품에 10가지 화학물질이 들어가 있다면, 그 중 유해한 성분이 있는 물질명만 공개하고 그마저도 영업비밀에 해당되면 다른 이름을 쓰는 것이 허용된다. 다만 비공개 승인의 유효기간은 3년으로 그 때마다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

“영업기밀을 정부가 틀어쥐는 것이다”

최소한의 정보만 공개하겠다는 고용부의 설명을 기업들은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제품의 원료나 함유량을 노출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기업에서 유사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데다 사전 심사 등 과정에서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특히 경영계는 “기업의 영업비밀을 정부가 틀어쥐겠다는 셈”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MSDS 기재 대상이 아닌 구성성분도 명칭ㆍ함유량 등의 정보를 따로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본부장은 "MSDS에 기재하지 않은 화학물질 정보는 기업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중요한 정보”라며 “이를 정부가 수집ㆍ보관할 경우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얼마든지 제3자에 공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용부는 향후 화학물질의 유해성이 새로 규명될 수 있는 만큼 전체 성분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지만, 이는 기업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유례 없는 과잉 규제?

이번 개정안이 ‘전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는 과도한 규제’인지를 두고도 공방은 치열하다. 경영계 편에 서 있는 정지우 한국안전학회 정책부문장은 한 토론회에서 “선진국 어느 나라도 MSDS를 정부에 제출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고용부는 “MSDS 사전심사 제도는 유럽연합(EU)과 캐나다 일부 주정부에서도 운영 중”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고용부 화학사고예방과 관계자는 “EU는 2007년부터 화학물질 관리제도(REACH)에 따라 유해성 평가 및 허가를 받도록 하고 인터넷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도 사업장 정보, 구성 성분 및 유해성 정보 등을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일보 확인 결과, EU는 1톤 이상의 화학물질의 등록만 의무화하고 있어 용량에 관계없이 모든 화학물질의 정보를 제출하도록 하는 산안법 개정안이 보다 엄격한 것은 사실이다. 1톤 미만은 화학물질 및 혼합물의 분류, 표시 및 포장 규정(CLP)에 따라 유해물질이 들어간 경우 포장에 주의 표시를 하도록 의무화 돼있다. 유례가 없지는 않지만, 가장 강력한 수준의 규제인 것만은 분명하다는 얘기다.

현재 산안법 개정안은 국무조정실에서 규제심사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후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제출될 예정인데 국회에서도 강력한 충돌이 예상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야당 간사인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은 “산업계를 대변하는 이들로부터 의견을 듣고 정부와 여당 안에 대응할 수 있는 안을 내놓겠다”고 예고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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