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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이미 ‘우리’인 그들

입력
2016.08.0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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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을 우연히 읽고 머리가 조금 무거워졌다.

이름있는 경제전문 매체 기획기사인데, 머리글을 옮겨보자면 “지난 20여 년간 국제결혼과 외국인 근로자 이주 등으로 우리 사회의 다문화 인구 비중이 크게 늘었다”면서 “이들이 자녀를 출산하면서 초중고교생 비중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에 이들에 대한 교육정책 등 향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내용이었다. 맞는 말이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다문화 학생 수가 8만2,536명으로 집계”되었으며 “12만1,000명에 달하는 미취학 아동수까지 합치면 다문화 학생 20만 시대가 눈앞에 닥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설명이 뒤를 이었다. 여기에 정부부처 자료와 통계수치를 그래픽으로 다듬어 한눈에 알아보기 좋게 웹 지면을 장식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기사를 ‘다문화’ 학생과 ‘일반’ 학생을 서로가 다른 계층이라는 듯, 뚜렷이 구분하고 경계 짓기로 마무리했다. 머리가 무거워진 것은 그 때문이다. “다문화 학생 비중이 40%를 넘어선 밀집 학교의 경우, 실제로 일반학생들의 지역 이탈현상뿐만 아니라 ‘역차별’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는 판단은 그가 인용한 모 교육대학 교수의 “이 같은 현상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일반 한국인들은 떠나고 다문화가정과 그 자녀들이 주로 거주하면서 주류 사회로부터 배제된 ‘게토’가 형성될 수 있다”는 지적으로 끝을 맺는다. 결론은 이에 따른 국가교육정책의 변화를 촉구하는 내용이지만 어인 일인지 나는 ‘일반 한국인’과 ‘다문화가정 자녀’는 서로 다른 사람들인가 하는 의문만 가득 품게 됐다.

우리에게 ‘우리’의 범주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배타적인 관념이 존재하는 한 늘 우리는 ‘우리’가 될 수 없다. 일치함의 시작은 경계와 구분을 푸는 것에서 비롯되며 누군가를 부르는 용어의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 우리의 한 축인 이들을 굳이 쪼개어 계층화시킬 필요는 없지 않은가. 사실 이젠 너무나 익숙하게 쓰이고 있는 ‘다문화’라는 호칭 역시 우리의 일부를 향한 호칭으로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을지 못내 염려스럽다.

10여년 전 어느 늦은 가을날의 기억이다. 전남 나주시 인근 농촌에 사는 필리핀 결혼이주여성 로나 씨는 남편과 더불어 오전 내내 비닐하우스에서 방울토마토를 따다가 점심을 위해 귀가하고 있었다. 그는 논둑길 너머 저만치 밭에 다녀오는 시어머니 이전금 씨를 보더니 11월의 차가운 바람쯤 아랑곳하지 않고 웃옷도 걸치지 않은 채 차에서 내렸다.

“어므니이~. 어데 갔다 와아?”

한국말이 서툰 로나 씨는 양팔을 휘두르며 살랑살랑 엉덩이춤까지 추면서 시어머니를 맞이했다. 그가 한국 남자 서창열 씨와 결혼한 것은 2005년 4월이었다. 성실한 인상의 남편과 처음 맞선을 본 후 주저 없이 한국행을 택했고 낯선 땅에 자신을 믿고 따라 온 그를 위해 창열 씨는 무진 애를 썼다. 이곳저곳 여행을 하며 한국의 문화를 알려주었고 한글학교를 보내는 것도 모자라 본인 스스로 유치원에서 쓰는 한글교육자료들을 구해 직접 가르쳐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어떤 일이든 로나 씨의 의사를 먼저 물어보고 속내를 확인한 후 뒷일까지 직접 챙겨주는 섬세한 심성이 뒤를 받쳤다.

“첨이는 필리핀 처녀랑 결혼시킨다고 혀서 걱정도 많았당게. 근디 인자는 안 그려. 복댕이 들어왔다고 동네 사람들도 다들 그라제.”

일찍 남편을 여의고 자식 다섯을 키우느라 안 해본 일이 없다는 이전금 씨는 이제 살아가는 보람이 생겼다며 세월 가득한 얼굴에 웃음꽃을 피워주던 기억이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가정에 아이가 생겼다면 지금쯤 초등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었을 텐데 오랜만에 안부 전화를 건네야 할 듯싶다. 이미 ‘우리’인 아이의 이름은 알아야 하니.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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