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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피해구제를 위한 똑똑한 선택, 집단소송제!

입력
2018.07.1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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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가 치더라도 우산 값이 갑자기 오른다면 사람들은 바가지를 씌운다고 생각하여 우산을 사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우산 장수는 우산 값을 올리지 않는다. 또 3,000원짜리 머그잔을 공짜로 받은 사람에게 6,000원에 팔라고 하면, 의외로 팔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 것이 된 머그잔이 시가의 2배 이상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상품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가격이 올라야 하고, 물건을 2배 가격에 팔 수 있다면 파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실제 사람들은 그렇게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 작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의 관찰 또는 실험 결과이다.

그는 인간이 합리적이지 않은 허점투성이임을 전제로, 인간의 “똑똑한 선택”을 유도할 것을 주장한다. 특히 공공정책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정책결정자가 “부드러운 개입”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부드러운 개입”은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라는 뜻의 넛지(nudge)라고 불렸다. 남성용 소변기 위에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스티커를 붙이는 것보다 소변기 안에 파리 사진을 붙여놓는 것이 ‘사회적 넛지’가 된다. 납세자에게 안내문을 보낼 때 “당신이 내는 세금은 당신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줍니다”라고 쓰는 것보다 “이미 국민의 90% 이상이 납부하였습니다”라고 쓰는 것이 자진납세를 이끌어내는 데 효율적이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ㆍ연비조작ㆍ개인정보 유출ㆍ라돈 침대 등 다수가 피해를 입는 사건이 빈발하고 있지만, 그 피해 구제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집단적 피해가 발생했을 때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선뜻 권리를 행사하기를 주저한다. 무엇보다 현재의 소송제도 하에서는 개개인이 소송에 필요한 자금과 노력, 시간을 들여야 하고 그 과정에서 정신적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입증부족 등의 이유로 실제 인정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을 고려하면, 회복 전에 비용을 투입하는 것도 부담이 된다. 더구나 비용이 실제 회복액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집단적 피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 개개인은 일단 현상을 유지하려 한다. 이런 선택은 사회적으로 피해를 방치하는 결과가 되고,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절차를 준수하고 의무를 이행해야 할 사회적 유인을 약화시킨다.

여기서 피해자들의 “똑똑한 선택”을 유도할 수 있도록 법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위의 이유로 권리 행사를 회피하지만 그렇다고 피해를 용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편, 피해자들 중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하려는 소수도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만약 적극적인 일부가 전체를 위해서 권리를 주장하도록 하고, 나중에 배상이 현실화 되었을 때 전체 피해자들이 비용을 분담하도록 한다면 권리행사 회피 유인은 약화될 것이다.

집단소송제는 스스로 나서는 것은 주저하지만 구제 받기를 희망하는 다수 피해자의 심리를 반영한다. 피해자 일부가 대표로 제기한 소송으로 전체 피해자가 함께 구제 받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이를 원치 않는 피해자들이 자신은 제외할 것을 선택하도록 설계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모든 피해자 각자가 실제 의도한 대로 결과를 얻고, 사회적으로도 집단적 손실에 상응한 균형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또 가해자의 책임을 현실화하여 법과 절차를 충실히 지켜야 할 유인을 발동시킬 수 있게 된다. 아울러 가해자도 끊임없이 책임을 추궁 당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집단적 피해를 일으키는 위법행위에 맞서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가치가 모두 실현되는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법무부는 올해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을 개정하여 여러 분야에 집단소송제를 확대하려고 한다. 집단소송제가 집단적 피해에 대한 경제정의와 사회 안전을 이루기 위한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사회적 넛지’로서 작동하기를 기대한다.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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