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담회 제의 불구 역사학회들 거부
시민사회 원로ㆍ문인 1800명 시국선언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정부가 역사학자ㆍ학회ㆍ교사들의 거센 반발에 뒤늦게 소통에 나섰다. 그러나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감은 학계에서 시민사회단체 원로까지 확산되는 형국이다.
19일 교육부와 역사학계에 따르면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역사 관련 학회 8~9곳에 최근 간담회를 제의했지만 대부분 거절당했다. 지난 12일 국정화 방침 발표 전까지 별다른 여론 수렴 과정 없이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말만 반복했던 황 부총리가 뒤늦게 소통해보겠다고 나선 것인데 ‘뒷북’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역사 관련 학회들은 교육부의 간담회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며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학회 관계자는 “마치 교육부가 여론 수렴에 나선 듯한 모양새를 취하는 것에 들러리가 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역사학계는 오는 30일 서울대에서 개최되는 전국역사학대회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관련한 의견을 모을 방침이다.
역사 관련 학회들이 만남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황 부총리는 대학 총장들과 만남을 갖고 여론전을 이어갔다. 황 부총리는 18일 오후 서울 모처에서 서울대와 숙명여대, 국민대, 건국대, 제주대 등 17개 대학 총장들과 비밀리에 만나 역사교과서 국정화 당위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대학총장들이 참석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지자, 교육부는 초청 대상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학자들의 집필 거부는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날도 서강대 사학과 교수 8명을 포함해 이 대학 교수 91명이 ‘역사교육의 상식 회복을 위하여’라는 국정화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집필거부를 선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ㆍ경북지역의 경북대, 영남대, 대구대, 계명대 등 이 지역 9개 대학 역사학 전공 교수 40명도 연대성명을 통해 집필 거부에 동참했다. 서울대 국사학과 대학원생과 강사 등 총 91명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다양한 교과서가 자유롭게 경쟁할 수 없는 상황은 민주주의의 파괴이자 전체주의로의 후퇴”라며 정부의 방침 철회를 요구했다.
시민사회 원로와 활동가 등 600여명이 속한 시민사회단체현대회의는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국정교과서 사태에 즈음한 시민사회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민주주의 퇴행에 대한 시민사회의 저항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시국선언에는 소설가 김훈ㆍ조정래씨 등 각계 원로 620명과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 305곳이 참여했다.
한국작가회의도 이날 국정화와 관련한 성명을 내 “친일·독재 권력이 민주·독립의 역사를 침탈하고자 하는 폭거”라고 비판했다. 성명에는 문학평론가 황현산씨, 소설가 공지영씨, 시인 김용택ㆍ도종환씨 등 문인 1,217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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