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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야근이 일을 망친다

입력
2017.05.0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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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졸린 눈을 비비고 출근 버스에서 내린다. 아침 8시,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오전 내내 마우스를 까딱거리며 이메일을 확인하고 보고서를 끄적거린다. 점심을 먹고 잠깐 페이스북과 웹서핑을 하다 보니 벌써 오후 3시. 동료와 커피를 마시고 두어 번 회의에 참석하니 벌써 저녁이다. 어차피 오늘도 야근이니 느지막이 밥을 먹고 들어와 대충 일을 하다 10시쯤 퇴근한다. 오늘 딱히 성과는 없지만 괜찮다. 내일 또 출근하니까.’

필자의 대기업 시절 보통의 하루 일과였다. 물론 열심히 일하고 배우던 시기도 있었지만 대부분 위와 같이 수렴되곤 했다. 그건 지금도 다들 비슷한 것 같다. 무언가 열심히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 같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딱히 남는 것은 없는 지난한 일상들.

스웨덴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롤란드 폴센은 이러한 현상을 ‘공허노동 (Empty Labor)’이라고 부른다. 인터넷 서핑이나 채팅, 쇼핑과 같은 업무 시간 중의 개인 여가활동을 의미하는데, 스웨덴에서는 직장인들이 하루 평균 두 시간을 공허노동에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각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모르긴 몰라도 최소 일과의 절반 이상은 될 것이다. 단지 딴짓뿐만이 아니라 업무 중의 피상적이거나 비효율적인 시간 사용까지 포함하면 그 수치는 분명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전 세계적으로(OECD 국가들 중) 가장 오랜 시간 노동에 시달리지만 업무 생산성은 최하위에 머물게 된 열악한 현실에 처해 있다. 매일 언론과 학자들이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막상 조직에서 공허노동과 야근문화를 개선하기란 쉽지 않다.

어쨌든 우리 부장님은 오늘도 야근을 하고 왜인지 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일을 하다 보면 긴급하게 납기를 맞추기 위해 야근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성적인 야근 문화는 장기적으로 오히려 일을 망치게 된다.

나에게 스타트업 창업 후 가장 큰 변화는 ‘공허노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일주일 내내 내 시간이기 때문에 한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게 되었다. 물론 창업 초기에는 절대적인 투입 시간이 필요하여 자발적인 야근도 많았지만 점점 야근 없이도 성과를 내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딥워크(Deep Work)’라는 책에 의하면, 앞으로의 업무 환경에서는 무조건적인 야근보다는 제한된 시간에 집중하는 힘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한다. 기존의 공허노동과 같은 피상적 작업이 아니라, 딥워크라고 명명한 고도로 집중하고 가치를 극대화하는 지적 몰입의 시간이 일의 성패를 가른다는 것이다. 저자인 칼 뉴포트는 MIT 박사 출신으로 본인이 직접 수년간 5시 반에 퇴근하며 야근이 없는 삶을 실천하면서도 수많은 논문과 교수 승진이라는 성과를 이루었다. 사업이든 공부든 앞으로 변화하는 시대에서 지식 전문가로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될 일은 단순히 시간을 많이 투입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학창 시절 나보다 더 많이 자고 노는 것 같아 보이는 친구가 있는데, 매번 나보다 성적이 더 좋았다. 내가 공부한답시고 졸면서 지지부진하게 앉아 있을 때, 그 친구는 푹 자고 맑은 정신으로 짧고 굵게 집중하여 더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 친구의 지혜를 깨달을 때가 되었다. ‘딥워크’에 의하면 사람이 하루에 고도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4시간이 최대치라고 한다. 즉 그 이후에는 어차피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지며, 차라리 푹 쉬는 것이 더 좋다. 오히려 야근이 없다고 못을 박아 버리면 제한된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깊은 몰입으로 인해 더 좋은 업무 성과로 보답할 것이다.

단지 말뿐인 ‘칼퇴법’이 아니라, 진짜 성과로 보여주는 조직이 더 많아지길 희망한다.

장수한 퇴사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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