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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나의 미투 극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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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나의 미투 극복기

입력
2018.02.27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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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삼겹살이 눌면히 익어가고 소주 폭탄주가 휙휙 돌아갈 때였다. 마주 앉은 선배 A에게 성희롱을 당한 것은. “탐스러운 엉덩이”로 시작해 “만지고 싶다”를 거쳐 “만져 봤다던데”로 끝난 더러운 말의 일격. 나는 참지 않았다. 술상을 엎을 기세로 따졌다. 용맹무쌍한 투사여서가 아니었다. 그때 나는 곱게 자라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B급 초보 사회생활자였다(“너 귀에 X 박았냐”고 욕한 선배에게 “네? 뭘 박았냐는 말씀이십니까?”라고 진지하게 물은 적이 있다). 불의, 그것도 내게 닥친 불의에 눈감아지지 않았다. 취해서 뵈는 게 없기도 했다.

난장판이 벌어졌다. “조용히 해!” 질책 당한 건 나였다. 선배 B가 나서 줬다. “지금 어떻게 조용히 합니까!” “까불지 마!” 선배 C가 후배인 B를 향해 폭탄주가 찰랑찰랑하는 유리잔을 던졌다. 삼겹살 불판 한 번 갈아보지 못하고 회식은 끝났다. “그런 것도 자리 봐 가면서 해라.” 즐거운 회식을 망친 죄를 추궁 당한 것도 나였다. 호소할수록 억울해지는 것, 내가 겪어야 할 비운이었다.

그러나 반전. 책임을 다하는 목격자가 나타났다. 선배 D가 나를 열정적으로 변호해 줬다. 연차 높은 남성인 D의 말을 사람들은 귀담아 들었다. “오해해서 미안하네.” 선배 몇이 삼겹살집 앞에서 사과했다. 다음 날, 부서장인 선배 E가 ‘진상 조사’를 마치고 나를 불렀다. “A가 제대로 사과하게 해주세요. 그거면 됐어요.” 그래서 나는 사과 받았다. 나와 A가 단둘이 있지 않도록, E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지켜봐 줬다. “나도 사과한다. 필요할 때 언제든 나를 찾아라.” E의 위로에 눈물이 터졌다.

‘가장 만만한 분노의 대상은 나’라고 했던가. 나는 한동안 자책했다. “그 따위 말, 못 들은 척 할 걸 그랬나.” 후회했다. ‘군대 갔다 온 남자’라면 어떻게 처신했을지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어머니쪽의 큰 엉덩이 체형 유전자까지 원망했다. 그래도 나는 억세게 운이 좋았다. A, B, C, D, E 모두 남성이었지만, 똘똘 뭉쳐 나를 모함하지 않았다. A는 적어도 겉으로는 미안해했다. 저열한 복수를 시도하지도 않았다. “그 아이 평소 행실이 좀…” “무슨 의도가 있을 텐데…” 다른 동료들이 수군거리는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왕따가 되지 않았고, 사표를 만지작거릴 필요도 없었다. 명예훼손∙무고죄로 고소를 당하지도 않았다. 동화 같은 결말이었다.

내가 더 이상 비참해지지 않은 건 한국일보가 엄청나게 선진적인 조직인 덕분이었을까. 내가 유난히 귀여운 후배라서였을까. 아니다. 나를 도와준 선배들이 그 사건에 관한 한 정의로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보호하고 지지했다. 그들이 함께 싸웠기에 나는 다치지 않았다. 밤마다 연극계 절대권력자의 사타구니를 주물러야 했던 동료의 고통에 눈감은 사람들과 달랐다. “위대한 작가는 세속의 도덕을 초월한 존재니까…” 우악스러운 예술지상주의에 숨은, 치사하거나 미련한 사람들과 달랐다. 스스로 사법정의의 보루임을 망각하고 침묵과 보복의 카르텔에 기꺼이 동참한 사람들과도 달랐다.

‘다른 피해자’인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고백하건대, 그 일이 벌어진 밤 나는 나의 안전을 믿었다. 당장 꾹 참지 않아도 내가 해고 당하거나 일이 끊기거나 꿈을 포기해야 할 일은 없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뒷일이 더럽고 두려워서 입 닫은 문화계 성폭력 피해자들에 비하면 나는 배부른 고발자였다. 증언과 폭로를 망설이는 건 비겁이 아니다. 내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술상을, 밥상을, 책상을 엎을 각오로 악쓰며 싸우는 건 영리한 전략은 아니다.

나처럼 운이 좋지도, 의로운 동료들의 응원을 받지도 못한 비참한 약자들의 싸움이 ‘미투’다. 그들은 인간다움을 되찾으려 삶을 통째로 걸었다. 그들을 외롭게 하지 말자. 동료애는 술잔을 돌리고 명절 선물을 나눠가질 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최문선 문화부 차장

최문선 문화부 차장
최문선 문화부 차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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