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지연 기자

등록 : 2018.05.26 09:00
수정 : 2018.05.27 14:51

“거제도 안내해 드릴까요” 한국에 꽂힌 마드무아젤

[외국인 ‘한국 알리미’들의 진화]

등록 : 2018.05.26 09:00
수정 : 2018.05.2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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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66개 도시 여행한 모로

광주서 2년 살다가 거제에 ‘둥지’

유튜브 영상서 남북회담 설명하며 눈물

프랑스의 엄마도 한국 궁금해져 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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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바탕 ‘진짜 한국’ 홍보

80쪽짜리 영문 가이드북 ‘전라남도’ 제작

유튜브 채널 ‘전라고’ 통해 구석구석 여행기

딸 리아 모로(왼쪽)의 유난스러운 한국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어머니 퀘스노아가 프랑스에서 머나먼 여행을 떠나 왔다. 전국에 장대비가 내린 18일 경남 거제시 구조라해변에는 비안개가 자욱했지만 ‘진짜 한국’을 마주한 모녀는 즐겁기만 하다. 거제=신상순 선임기자

프랑스 리옹에 사는 마흐틴 퀘스노아(Martine Quesnoyㆍ57)는 지난 15일 난생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12살 때부터 한국에 빠져 케이팝(K-pop)과 한국 드라마를 섭렵하더니 대학교 졸업 후에는 아예 한국에 둥지를 튼 딸 리아 모로(Lea Moreauㆍ25)를 만나기 위해서다. 어릴 적 할아버지 서재에 꽂혀있던 남ㆍ북한 관련 책을 읽은 뒤 한국과 아시아대륙에 열광했던 딸이다.

그리운 딸을 만나러 오기까지 꼬박 만 하루가 걸렸다. 프랑스 리옹에서 파리까지 차로 달려 4시간 30분, 파리에서 중국 상하이를 거쳐 김해공항까지 14시간을 날아왔다. 한국 땅을 밟자마자 다시 버스를 타고 1시간가량을 내달려 한반도 남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경남 거제에 도착했다. 오랜 여행에 지쳐 한국 일정 둘째 날에는 끼니도 거른 채 쉬었다.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던 모로는 18일 경남 거제시 거제국제교류센터 앞에 나와 “먼 길 오느라 고생했죠”라 반기며 제법 ‘현지인’답게 ‘이방인’을 맞았다. “거제는 어떻게 와도 6시간은 족히 걸린다”라며 하루 전 김해공항에서 출발하는 거제행 버스시간표를 보내주던 그에게서 현지인의 여유가 느껴졌다. 모로는 평일엔 센터 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일하고 쉬는 날엔 거제 구석구석을 여행한다.

수도권에 사는 토종 한국인도 큰마음 먹어야 가는 거제에 프랑스인 모로가 사는 이유는 여행지의 진짜 모습을 수도가 아닌 지방에서 찾는 나름의 철학 때문이다. 모로는 2014년 처음 한국을 여행했다.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서울, 천안, 구미, 대구, 안동, 부산, 경주, 울산 등을 다녔다. 2016년 ‘진짜 한국’을 찾았다며 전남 광주에 짐을 풀었던 그는 지난해 12월 한국의 다른 매력을 알고 싶다며 경남 거제로 이사했다.

프랑스인 퀘스노아(오른쪽)가 18일 딸 모로의 안내를 받으며 경남 거제시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둘러봤다.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볼 때만 해도 한국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는 그는 “분단의 역사를 마주하니 슬프고 소름이 돋는다”고 말했다. 거제=신상순 선임기자

이날 어머니 퀘스노아와 함께 한 모로의 특별한 ‘여행 가이드’는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서 시작됐다. 한반도 분단 역사의 출발점을 어머니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위해서다. “전쟁은 끔찍하다”며 총성 효과음에도 흠칫 놀라던 퀘스노아는 이내 감탄사를 쏟아냈다. 당시 포로들의 일상을 재연한 생활관 앞에서 딸의 설명을 들으며 복잡한 감정도 드러냈다. “소름 돋고 추운 느낌이 든다”며 팔을 걷어 보였다.

포로생활관을 보고 나온 퀘스노아가 “한국전쟁의 참상을 엿보니 소름이 돋는다”며 딸 모로에게 심경을 전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볼 때만 해도 한국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는 그는 “분단의 역사를 마주하니 슬프고 소름이 돋는다”고 말했다. 거제=신상순 선임기자

한국 얘기라면 퀘스노아도 어깨너머 익힌 ‘풍월’쯤은 있다. 모로의 한국사랑 덕분에 퀘스노아와 가족은 프랑스 한식당에서 삼겹살을 먹고 소주와 막걸리를 마셔봤지만 ‘한국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딸이 좋아하는 나라’, 딱 그만큼의 관심이었다. 퀘스노아가 ‘도대체 한국에 뭐가 있을까’라고 궁금해진 건 최근 일이다. 모로가 프랑스인들에게 한국전쟁과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설명하다 북받쳐 그만 눈물을 글썽거리는 유튜브 영상을 봤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은 순간이 어떤 의미를 지니길래 모로는 눈시울을 붉혔을까. 한국에 온 퀘스노아는 딸을 이해하고 있었다. “두 개의 다른 나라라고만 생각했는데 여기 재연된 전쟁 당시 모습을 보고 나니 고통의 응어리가 맺힌 채 살 수밖에 없는 한국인들을 이해하게 되네요. 같은 민족이 전쟁으로 인해 사상과 이념으로 나뉘었던 슬픔이 느껴집니다.”

모로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난달 27일 프랑스에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를 설명하는 유튜브 영상을 만들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를 나눈 뒤 경계를 넘는 장면은 평화의 상징"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유튜브 캡쳐.

모로 모녀는 지금 한국에 있는 게 큰 행운이라고 말한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퀘스노아의 마음 한 켠에는 ‘당장 내일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고 했다. 외국 언론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 관련 뉴스를 북한 핵실험이나 전쟁 위험 중심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보고 듣는 게 이렇다 보니 여행자 가족인 모로네도 한국에 사는 딸을 걱정했다.

퀘스노아는 속마음을 털어놨다. “우리는 같은 여행자들이고 프랑스 미디어가 한국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는 못 할 거예요. 한국에 사는 딸이 이곳 사정을 더 많이 알 거라 믿고 그 선택을 지지해요. 그래도 북한 보도를 보면 어쩔 수 없이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잖아요. 막상 공항에 내려 한국인들의 표정을 보니 ‘기우구나’ 싶었지만요.”

한국에 푹 빠진 모로와, 그런 딸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어머니 퀘스노아가 18일 경남 거제시 구조라해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거제=신상순 선임기자

모로는 최근 들어 한반도에 대한 외국인들의 시각이 달라졌다고 증언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프랑스 친구들은 메신저로 ‘한국에 가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비행기는 직항이 있는지’ ‘어떻게 여행하는 게 경제적인지’ 등을 묻는다. 한국을 찾는 지인들도 늘었다. 지난해에는 친동생이 다녀갔고 7월에는 모로의 가장 친한 친구가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퀘스노아는 17일 딸 모로를 한국으로 끌어당겼던 광주에도 다녀왔다. 모로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는 고장이다. 무등산국립공원과 정심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양림동을 둘러봤다. 모로가 ‘광주로 이주한 건 최고의 선택이자 운명’이라고 말한 까닭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퀘스노아는 음식과 사람, 그리고 역사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맛의 고장 프랑스 리옹에서 온 그는 광주에서 맛본 한국음식을 극찬했다. “그 중에서도 불고기와 전은 잊을 수 없는 맛”이라며 눈을 감고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퀘스노아는 광주에 또 오고 싶다고 말했다. “광주에는 어떤 정신이 깃들어있어요. 이 장소에서만 느껴지는 무척 편안한 분위기도 있고요.” 굴 빼곤 날것을 먹지 않는다는 퀘스노아지만 거제 구조라해변에서는 처음 회에 도전했다. 서툰 젓가락질이지만 식도(食道)를 갖추려 애쓰는 엄마의 모습에 딸은 즐거워했다.

프랑스 모녀의 한국여행. 날것을 즐겨 먹지 않는 퀘스노아는 딸 모로의 ‘하나, 둘, 셋’ 소리에 맞춰 농어회 한 조각을 입에 물었다. 젓가락질은 금세 배웠지만 가부좌 틀어 앉는 것은 버거워 작은 의자에 앉았다. 거제=신상순 선임기자

모로의 친구들을 통해 추상적이기만 했던 한국인의 정(情)도 느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가족이 아닌 친구를 ‘언니’ ‘오빠’라고 부르잖아요. 모로가 일자리를 구하거나 비자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 친구들은 자기 일처럼 도와주었다고 해요. 한국은 ‘서로 돕고 사는 나라’예요.”

지금은 국내 66개 도시를 여행한 ‘한국여행 전문가’로 불리지만, 2년 전에는 모로도 여느 외국인 관광객 못지않게 헤매기 일쑤였다. 지역 정보가 부족하고 한국어가 서툰 탓이었다. 프랑스에서 구해온 한국 여행 가이드북은 한참 전에 출판된 것이었다. 책에 나온 숙박시설이나 맛집이 여전할지 의심스러웠다. 여행을 준비하며 한국 역사를 공부하고 싶었지만 인터넷으로 접하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다.

한국에 온 뒤 좌충우돌했다. 대중교통으로 서울에서 광주까지 가는 방법부터 찾기 힘들었다. 다른 나라에서 유용했던 구글맵은 한국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한국인을 위한 지도 애플리케이션은 한글로 돼 있어 프랑스인인 그에겐 도움이 안 됐다.

광주와 거제에 머물며 ‘한국 알리미’ 역할을 톡톡히 하는 모로는 한국 방문 외국인 여행자를 돕기 위한 80쪽짜리 책 ‘전라남도’를 만들기도 했다. 사진 모로 제공.

모로가 만든 전라남도 소개 책자. 모로 리아 제공.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 했다. ‘전라남도(Jeollanam-Do)’라는 제목의 80쪽짜리 영문 여행 가이드북을 직접 만들었다. 일하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외국인 여행자들을 돕기 위해 만든 소책자라 시중에 판매하지 않지만, 광주를 찾는 외국인들 사이에선 없어서 못 파는 ‘레어템(희귀품목)’으로 통한다. 흔한 한국 관광책자에 없는 지방도시를, 광주 거주자인 모로가 현지인의 시각으로 자세히 소개하고 있어서다. 몇 번 버스를 어디에서 타는지부터 버스 시간표와 교통비, 먹어볼 음식 등 실제 여행할 때 느끼는 필요를 꼼꼼히 챙겼다. 모로가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들 사이에 으뜸으로 꼽히는 ‘한국 알리미’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모로는 평온과 역동성이 조화를 이룬 전라도가 좋다고 했다. 가까이에 아름다운 무등산ㆍ내장산 국립공원이 있어 언제든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에 더 없는 천국이다. 반면 불빛으로 가득한 도시에선 언제든 시끌벅적한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창업하는 청년들의 열정을 느꼈다.

모로의 추천장소는 이 책 속의 백미다. 외국인들이 기대하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장소. 전통문화가 살아있고 비교적 덜 알려진 관광지. 대표적인 곳이 전남 화순군에 위치한 운주사다. “운주사는 관광객으로 붐비지 않아요. 여길 모르는 한국인들도 많아요. 기념품 상점이나 편의점이 없고 전통 사찰을 볼 수 있어 정말 좋았어요. 절 주변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요”

모로가 광양 매화마을을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 채널 전라고(JEOLLA GO) 캡처

광주와 전라도에 빠져있는 그가 2년째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전라고(JEOLLA GO)’에는 전남 광양 매화마을과 여수 앞바다, 전주 한옥마을, 강진의 푸른 해변을 소개하는 흥미로운 동영상 여행기 17개가 담겨있다. 자신처럼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을 위해 영상은 불어와 영어로 만들었다. 이들 영상엔 한국인이 생각하는 뻔한 관광지와 진부한 설명은 빠져있다. 대신 이방인의 시각을 담아 한국 땅이 낯선 외국인들 사이에선 스타 유튜버(동영상 채널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ㆍ youtuber)로 불린지 오래다. 기획과 여행을 마치고 영상을 편집해 제작하기까지 꼬박 사흘이 걸리지만 모로는 이 작업으로 특별한 수익을 거두지 않는다. “한국에 열광하는 내가 이토록 여행 정보를 찾기 어렵다면 단순히 여행을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은 더 힘들겠다고 생각했어요.“

광주에 살면서 모로는 한국에 더욱 매료됐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판소리를 비로소 직접 들었고,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접할 수 없던 가야금의 구슬픈 선율도 느꼈다. 무엇보다도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이곳에 유독 정이 갔다. 5ㆍ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공부하면서 한국사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다. “광주 역사에서 큰 슬픔을 느껴요. 군인들이 시민들을 공격했을 때 학생이었던 한 광주시민을 만나 그가 경험한 비극을 들은 적이 있어요. 광주시민들은 정부 때문에 죽임을 당했고 많은 고통을 당했어요. 이 사건은 오래도록 역사책에서 지워지지 않겠죠. 어두운 역사를 한국인들은 떠올리고 싶지 않을 거예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모로는 어머니에게 지난해 자신이 지켜본 대통령 탄핵 사태를 설명했다. 부패에 맞서고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시민들이 힘을 모았다는 점에서 5ㆍ18민주화운동과 닮았다는 평가도 더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부패 스캔들로 탄핵됐을 때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에너지와 힘을 품고 있는 걸 느꼈어요.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민주주의’가 제대로 발휘됐다는 점이 두 사건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거제로 보금자리를 옮기며 유튜브 활동을 멈췄지만, 모로는 기회가 되는 대로 한국을 알리는 자칭 한국 홍보대사다. 지난해에는 서울에서 열린 비디오 콘테스트에서 공식 한국 투어테이너로 선발됐다. 모로는 앞으로도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관광지를 색다르게 보여주고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해 흥미를 갖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은 한국어가 많이 서툴지만, 나중에 유창해지면 TV쇼를 진행하고 싶어요. 또 한국인들이 그들의 아름다운 나라를 다시 발견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거제=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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