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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사냥하는 네티즌 수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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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사냥하는 네티즌 수사대

입력
2017.10.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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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40번 버스 기사' 논란으로 화두에 오른 온라인 마녀 사냥. 정확하지 않은 정보의 유통과 언론의 보도가 다시 한번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240번 버스 기사' 논란으로 화두에 오른 온라인 마녀 사냥. 정확하지 않은 정보의 유통과 언론의 보도가 다시 한번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애기가 내리고 엄마가 같이 내리기도 전에 기사 아재가 출발했소. 엄마가 ‘아저씨 내려주세요 못 내렸어요’ 소리소리 쳐도 듣지 않고 그냥 가더이다. 기사는 (그 소리를) 들었는데도 안 멈추고. 너무 화가 나고 눈물 나오.”

지난달 11일 쌍화차코코아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240번 버스 목격담은 삽시간에 온라인을 뒤덮었다. 7살짜리 딸만 버스에서 내리고 엄마가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운전기사가 버스를 출발시켰고 욕설까지 했다는 이야기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퍼져나가며 “정신도 개념도 없다” “버스기사를 강력 처벌해야 한다”는 등의 원색적인 비난과 욕설이 쏟아졌다.

하지만 다음날 버스기사의 딸이 “아버지가 욕을 한 일이 없다”는 해명 글을 올리고, 서울시와 경찰의 조사 결과 버스기사가 규정을 어기지 않았고 단지 아이 엄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실수로 확인되면서 사태는 급변했다. 네티즌 수사대의 화살은 아이 엄마를 향했다. 사건 당일 기사를 처벌할 수 있는지 서울 자양1파출소에 물은 것을 두고, 모든 게 아이 엄마 탓이라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불길은 멈추지 않고 처음 목격담을 올린 네티즌에게도 번졌다. 정확하지도 않은 사실을 올린 목격자를 허위 사실 유포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인터넷을 뒤덮기 시작했다.

청와대가 운영하는 '국민 청원 및 제안'에 올라온 240번 버스 기사 처벌 촉구 청원. 인터넷 캡처
청와대가 운영하는 '국민 청원 및 제안'에 올라온 240번 버스 기사 처벌 촉구 청원. 인터넷 캡처

집단지성이 집단사냥으로

멀쩡한 사람을 하루아침에 범법자로 만들고 사회적 비난에 고스란히 노출시키는 이 같은 온라인 마녀사냥은 우리 사회에 드물지 않은 일이 됐다. 네티즌들은 공분을 쏟아낼 만한 사건이 터지면 해당자의 신상정보와 과거 SNS 등에 올린 글을 찾아내 사진, 가족, 거주지, 발언 등을 낱낱이 공개하고 추측을 섞어 사건을 재구성하거나 비난한다. 공개된 정보는 사이버 세상에서 순식간에 복제ㆍ재생산된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그런 것 같다”로, 곧 “확실히 그렇다”로 돌변하고, 분노가 한번 확산되기 시작하면 정확한 사실 확인은 뒷전으로 밀리고 서로 공격의 수위를 높여가기 일쑤다.

온라인 마녀사냥의 피해자는 잊기 어려운 트라우마를 겪지만, 가해자인 익명의 군중은 일부 책임감조차 느끼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2012년 성동규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온라인 마냐사냥에 관한 근거이론적 방법론 분석’에 따르면 피해자는 “상황이 오해거나 거짓으로 밝혀질 경우 특정인에게 무분별하게 손가락질을 했던 사람들은 ‘아 그래? 아님 말고’라는 말만 남긴 채 사과 한마디, 정정의 글 한마디조차 올리지 않은 채 다시 평상시 일상 속으로 유유히 되돌아간다”고 증언했다.

지난달 12일 오전 출고된 240번 버스기사 사건 관련 기사에는 1만6,000여개의 비난 댓글이 달려있고, 지금까지 8,500여개의 트윗, 1,800여개의 블로그 게시글이 남아있다. 수천명 이상이 마녀사냥에 참여한 것이다. 첫 기사에 댓글을 달았던 최모(25ㆍ여)씨는 “평소에 겪었던 경험도 있었고 기사도 나와서 당연히 진짜인 줄 알았다”며 “다음날 미안한 마음에 댓글을 지웠다”고 말했다. 해당 버스기사는 나중에 “자살까지 생각했다”며 심리적 충격을 호소했다. 그가 감당해야 했던 마음의 짐은 해소할 도리가 없다.

2012년 채선당 사건은 온라인 마녀사냥이 유발하는 피해가 얼마나 심각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맘스홀릭’ 네이버 카페에 24주 된 임산부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채선당 종업원이 발로 배를 걷어찼고 사장은 방관만 하고 있었다” 며 “병원에서 검사 받은 결과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는 글을 올렸다. 채선당은 걷잡을 수 없는 비난에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하지만 경찰이 폐쇄회로(CC)TV를 확인해본 결과 배를 걷어찬 쪽은 임산부였고 사장도 나와 싸움을 말린 것으로 조사됐다. 사실과는 상관 없이 해당 채선당 체인점은 이미 회복 불가능한 이미지 손상을 입고 문을 닫았다.

2012년 당시 채선당 본사에서 올린 사과문.
2012년 당시 채선당 본사에서 올린 사과문.

잘못된 정보도 진실처럼

마녀사냥의 와중에 엉뚱한 2차, 3차 피해자도 생긴다. 8월 20일 대구의 한 여교사가 초등학생 제자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뉴스가 보도된 후 한 네티즌이 해당 여교사라며 아이를 안고 있는 한 여성의 사진을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공개했다. “대구의 초등학교 교사다” “논란이 된 시기부터 트위터 활동을 멈췄다” “나이가 비슷하고 아이가 있다”는 구체적인 근거도 함께 명시했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경남지방경찰청에 따르면 피의자 여교사로 잘못 지목된 여성은 8월 29일 해당 네티즌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또래들로부터 끔찍한 폭행을 당한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에서도 네티즌들은 ‘한 가해 여중생 부모가 경찰이라 수사를 안 하려 한다’는 엉뚱한 주장을 사실처럼 퍼뜨렸다. 경찰이 “피의자 아버지 중 경찰은 없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이번엔 ‘어머니가 경찰이다’라고 물고 늘어졌다.

유시민 전 장관은 지난달 21일 JTBC 썰전에 출연해 240번 기사 논란과 관련 "기사에 당사자(버스 기사)의 해명을 실어주거나 최소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JTBC 제공
유시민 전 장관은 지난달 21일 JTBC 썰전에 출연해 240번 기사 논란과 관련 "기사에 당사자(버스 기사)의 해명을 실어주거나 최소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JTBC 제공

사실 확인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마저 이 같은 마녀사냥에 참여하는 일이 없지 않다. 240번 버스기사 사건은 지난달 12일 오전부터 언론사들이 인터넷 기사를 출고하기 시작했는데, [단독]이 붙은 최초 보도부터 다수의 언론 보도가 버스기사의 해명도 없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그대로 인용해 보도했을 뿐이었다.

언론의 잘못된 보도는 그 폐해가 더욱 심각하다. 11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목격담이 올라왔을 때만 해도 “진짜라면 큰 문제”라는 반신반의 분위기에서 글이 공유됐지만, 12일부터 언론 보도가 쏟아지면서 인터넷 목격담은 진실이 돼 버렸다. 손동영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과 교수는 “소셜미디어에서 주고받는 의견과 달리 언론은 공신력 있는 기관이기 때문에 한쪽 방향으로 결론 내면 확대 재생산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고 말했다.

약자를 지키기 위한 정의인가

네티즌 수사대는 여교사와 제자의 성관계 사건처럼 말초적 관심을 자극하는 사건에 발빠르게 움직이곤 했지만, 최근엔 을(乙)이 폭로한 갑(甲)의 횡포에 매우 민감했다. 약자에 폭로에 네티즌들은 “공정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이대로 묻히면 안 된다” 등 합당한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며 가해자를 집중 공격했다. 정의구현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사실 자체를 냉정하게 확인하는 훈련은 부족한 것이다.

김지호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온라인의 마녀사냥은 극단적인 피해를 본 사람의 주장으로부터 시작되는 경향이 많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정의, 비정의라는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정보에 대한 명확한 탐색 없이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순실 게이트 이후 정의에 목마른 목소리들이 증가했다”는 진단도 나온다.

여론에 의한 정의구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확인 되지 않은 사실과 댓글, 추천, 여론만으로도 가해자를 만들 수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 사실에 바탕을 둔 정의는 빛을 잃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여론에 의한 정의구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확인 되지 않은 사실과 댓글, 추천, 여론만으로도 가해자를 만들 수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 사실에 바탕을 둔 정의는 빛을 잃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여론에 의한 심판은 위험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김 교수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정의가 곧 정의가 되는, ‘정의 투표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의 정체성이 드러난 오프라인 현실에서는 한번 내뱉은 말을 철회하기가 어렵지만 익명의 온라인 공간에서는 얼마든지 의견을 바꾸거나 철회하기 쉽다. 그렇다 보니 ‘이쪽이 옳다’ 하면 이쪽으로 의견이 쏠렸다가 ‘틀렸다. 다른 쪽이 옳다’고 하면 다시 그쪽으로 의견을 바꾸는 모순적인 행동이 사이버 시스템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사람들은 정보가 제한적이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관찰해서 결론을 낸다”며 “예전엔 남들이 어떻게 의견을 제시하고 판단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제한돼 있는데 인터넷은 다른 사람의 반응을 시각적으로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어 타인의 의견에 의존을 해서 사안을 판단하는 경향이 커졌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법과 제도가 아닌 비공식적 처벌을 하려는 이유는 사회 중심을 이루는 법적인 처벌, 공정성과 적정 수위에 대한 신뢰도가 낮기 때문”이라며 우리 사회의 한계를 지적했다.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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