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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의 시 한 송이] 풍경

입력
2016.03.1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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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에 기억하고 싶은 생일을 써넣는 일로 한 해를 시작해요. 멀어진 사람, 몇 백 년 전 사람의 생일도 있어요. 양력이면 요일이 새삼스럽고 음력이면 날짜가 새삼스럽죠. 생일을 써넣어야 한 해의 달력이 도착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뭐 생일이 별 거라고, 엄마가 잘하는 말이에요. 특히 본인 생일을 그리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식들 생일은 일찌감치부터 챙깁니다. 엄마 말대로 생일이 뭐 별 거라고…. 별 거는 아닌데 반짝반짝, 따끔따끔 마음이 생겨나는 날입니다. 당사자보다 축하해주는 사람이 환해지는 날이니, 생일인 사람이 자신의 생일을 선물해주는 날인지도 모르겠어요.

누구나 한 번 가는 길을 내가 어슬렁어슬렁 갈 수 있는 것은 싱그러운 거목 때문입니다. 멀리 가도 거목이 함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언덕은 아름답습니다. 나도 환합니다. 천천히와 어슬렁은 잘 어울립니다. 거목들은 처음 생겨난 곳, 연한 그곳을 잊지 않습니다. 거목이 고목이 되지 않는 비결이기도 하겠지요.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악기를 가진 아이와 손쥐고 가는 것은 누구일까요? 나일까요? 거목일까요? 언덕일까요? 아이 자신일까요? 어쩌면 거목과 나와 아이와 언덕은 서로가 있어 점점 더 길어지는 손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말개질 때까지 씻긴 언어라서 김종삼 시를 청교도적이라고 하지요. 김종삼 시는 말을 덧붙이기 어려워요. 다만 너무 조용하죠. 생일처럼요.

생일이라는 풍경. 들리지 않는 악기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아이를 만나러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길이 만들어집니다. 모두가 숨죽였을 때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다행이에요. 일 년에 한 번씩 생일이 돌아와서요. 당신의 처음 시간에 닿아볼 수 있어서요. 되돌아오는 시간이 점점 길어져도 괜찮아요. 당신이 있잖아요.

생일의 풍경. 어둠 속에서 케이크에 켜진 촛불을 막 끄려는 순간처럼 ‘너무 조용’해도 괜찮아요. 오늘은 당신의 생일입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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