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민승 기자

등록 : 2017.04.05 16:26
수정 : 2017.07.04 15:28

[짜오! 베트남] 집집마다 금고 둘 정도로 은행 못 믿어도... "신용카드는 성공의 상징"

<5> 현금 시대에서 신용 시대로

등록 : 2017.04.05 16:26
수정 : 2017.07.04 15:28

베트남 사람들의 지불 방식이 변화를 맞고 있다. 금융시스템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현재까지는 현금 혹은 금에 대한 선호가 높지만 젊은층을 중심으로 점차 신용카드 사용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빠른 경제성장과 사회적 신뢰 구축이 맞물려 이런 추세는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용카드 긁는 남자? 성공한 남자!

지난 3일 베트남 호찌민 시내의 한 금고가게. 아내와 함께 가게를 찾은 응우옌 디엣 닷씨는 한참을 고민하다 빨간색 중형 제품 하나를 낙점했다. 가격은 베트남 근로자들의 웬만한 월급에 해당하는 630만동(약 32만원). ‘너무 비싼 것 아니냐’ 고 하자 “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더 가치 있는 ‘물건’들을 지켜줄 것이기에 또 비싸다고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게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가 씩 웃기만 하자 매장 직원이 “미국 달러화가 아니면 금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베트남 사람들 집에는 금고가 하나씩 있고, 여유 있는 집엔 층마다 있는 경우도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금이나 달러 등 안전자산에 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애착은 남다르다.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역사적 배경이 첫손에 꼽힌다. 수 차례 전쟁을 치르면서 돈은 언제든지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고, 특히 40여년 전 통일 과정에서 단행된 화폐개혁과 예금 몰수로 은행에 대한 불신이 깊기 때문이다. 현지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이용객이 많아야 신용카드 같은 다른 금융산업이 발전할 수 있지만 은행 이용률이 높지 않은 실정”이라며 “취약한 은행 보안 시스템과 직원들의 부패도 안전자산의 직접 보관을 부추기고 있다”고 전했다. 제도권 금융에 대한 불신으로 은행 대신 집에 돈을 보관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때 공간을 덜 차지하는 달러나 금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호찌민 시내 한 가구점의 금고코너. 한국에서는 금고가게를 구경하기 힘들지만 베트남에서는 웬만한 규모의 가구점들은 한 켠에 금고 코너를 마련해놓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금품을 은행 대신 직접 보관 방법을 선호한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홈쇼핑? 상품 확인 뒤 현금결제

현지에선 은행에 입금해 둔 돈이 증발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린다. 지난달 28일에는 3년 동안 예치해 둔 87억동(약 4억3,000만원)을 찾기 위해 은행(National Citizen Bank)에 들렀다가 돈이 모두 사라진 사실을 알았다는 하노이 고객의 사연이 언론에 소개됐고, 앞서 지난해 8월에는 농산물 중개업체의 은행(VPbank) 계좌에서 260억동(약 12억8,700만원)이 사라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특히 농산물 중개업체 사건의 경우 관련 직원이 그만두었다는 이유로 은행은 책임 보상을 회피했으며, 이후 법무부 장관까지 나섰지만 현재까지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소액의 예금을 잃어버렸다는 소식은 뉴스거리도 안된다.

이 같은 금융권에 대한 불신은 현금 결제에 대한 압도적 선호로 나타나고 있다. 코트라 호찌민무역관에 따르면 지난해 베트남에서 인터넷 등을 통해 이뤄진 전자상거래의 85%가 현금으로 이뤄졌다. 베트남SCJ홈쇼핑 관계자는 “TV 홈쇼핑에서는 현금결제 비율이 더 높았다"며 “배송 직원이 상품을 인도하는 시점에 대문 앞에서 현금으로 결제 받는 경우가 90%를 넘는다”고 말했다. TV홈쇼핑 이용 연령층이 인터넷ㆍ모바일 연령층보다 다소 높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금 결제 비율이 높은 이유는 또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뒷돈’ 관행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현지 은행 관계자는 “월급은 40만원인데 씀씀이로 보면 400만원인 사람들이 있다”며 “신용카드 사용이 월급 외 자신의 수입을 노출시킨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소액의 생활용품이 아닌 주택 등 액수가 큰 거래에서는 금이 이용되기도 한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에 따라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개인간의 거래에서는 일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2년 5월 시행된 관련 규정에 따르면 계좌이체가 아닌 금으로 대금을 치르다 적발될 경우 최대 3억동(약 1,482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강력한 처벌에 속한다.

지난 4일 호찌민 시내 베트남우리은행 창구에서 한 손님이 직불카드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베트남에 진출한 우리은행은 지난달 직불카드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올 상반기 중 신용카드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신용카드 발급기준 대폭 완화

현금과 금을 좋아하고 은행보다는 집 금고를 선호하는 곳이지만 최근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직불카드, 신용카드 사용자가 점차 늘고 있는 것. 신동민 신한베트남은행장은 “대도시 젊은층을 중심으로 카드 사용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전년도 수치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성장이 가파르다”고 전했다. 신한베트남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자사 체크ㆍ신용카드 발급 건수는 4만6,000건으로 전년 대비 40% 이상 늘었다. 카드 결제 금액도 1억5,400만달러로 전년보다 30% 이상 늘었다. 이 같은 추세에 따라 지난해 말 베트남현지 법인 설립에 성공한 우리은행도 지난달 13일 직불카드 서비스를 시작한 데 이어 상반기 내 신용카드 시장 진출을 위한 사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 30년 전 한국처럼 ‘신용카드 사용자=성공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도 카드 시장 확대에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여성 응우옌 하 푸엉(30)씨는 “베트남 은행이 아닌 외국계 특히, HSBC나 시티 은행이 발행한 신용카드를 쓰는 사람의 경우 성공한 사람으로 보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소수의 고소득 직장인들에게 허용되던 신용카드 발급 기준 소득이 최근 800만동(39만7,000원)으로 대폭 완화되면서 그 같은 분위기는 약간 변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지난해 9,440만 가량의 베트남 인구 중 280만~350만명이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있는 걸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6%대의 견고한 경제성장, 그로 인한 소득 증가, 높은 젊은 인구 비율 등 신용카드 시장으로서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이 한국처럼 신용카드 시대를 반드시 거치리란 보장은 없다. 현금 시대에서 모바일 결제 시대로 곧바로 옮겨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55%)을 바탕으로 모모, 톱페이, 123페이, VT페이 등 핀테크 기반의 결제시스템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며, 온라인 쇼핑은 물론 전기세 수도세까지 결제를 지원하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베트남을 처음 찾는 외국 관광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는 화폐(동)와 관련된 것. 화폐 단위가 워낙 커서 공항에서 탄 택시 요금을 결제할 때부터 애를 먹는다. 지폐 종류만 해도 200동짜리부터 50만동짜리까지 11종에 이르고, 쌀국수 한 그릇이 15만동, 캔 음료 하나가 3만동, 4만동 하는 식이다. 어떤 지폐로 값을 치러야 할지 몰라 뜸을 들이면 종업원이 대신 현금을 추려가기도 한다. 해외 유입 인구 증가에 따라 신용카드 증가도 늘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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