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지평선] ‘보수 도시’ 안동의 독립운동가들

입력
2017.08.17 16:41
0 0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독립운동가 중 가장 주목받은 이가 이상룡이다. 이상룡은 만주 항일운동의 거목으로 훗날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냈다. 이상룡을 미워한 일제가 그의 안동 저택 임청각을 동강낸 사실도 문 대통령에 의해 다시 알려졌다. 광복절 기념 뮤지컬 ‘그날이 오면’에서 다룬 애국지사 김용환 또한 안동 출신이다. 그는 도박에 빠져 아이가 태어난 것도 모르고 사돈댁에서 보낸 돈마저 노름으로 날렸다 해서 당대의 파락호로 불린다. 그러나 실은 독립군에 자금을 대기 위해 노름꾼으로 위장했던 것이다.

▦ 안동은 독립운동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고장이다. 포상 독립운동가만 357명으로 다른 지역보다 10배가량 많다. 미포상 독립운동가까지 합치면 1,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만주 항일운동의 기둥 김동삼, 아나키스트 유림, 의열단원 김시현 김지섭, ‘광야’의 저항시인 이육사 그리고 사회주의 계열의 김재봉 권오설 등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국권 침탈에 항의해 전국적으로 70명 이상이 자결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김순흠 이만도 등 안동 사람이 10명으로 가장 많다.

▦ 안동의 독립운동은 대개 집안ㆍ문중ㆍ마을 단위로 이뤄졌다. 부자와 형제는 기본이요 일가친척이 같이 나서기도 했다. 가령 의성 김씨가 모여 산 내앞마을에서는 150명 이상이 만주로 망명했다. 이로 인해 하회마을과 자웅을 겨루던 마을 위세가 크게 꺾였고 지금은 아는 이조차 드물다. 이 마을 김대락은 65세의 고령에 고향을 떠났다. 만삭의 새댁까지 포함된 일행은 한겨울 매서운 추위 속에서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도착한 만주에서 배고픔, 추위 등과 싸우면서도 경학사와 신흥강습소 등을 조직해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 안동의 독립운동에는 퇴계의 영향이 컸다. 안동 등 영남 남인은 조선 후기 정계 진출이 막히자 퇴계 학문을 따르며 공부에 몰두했다. 개인적 이익보다 대의를 추구했는데 그러다 보니 독립운동에 뛰어들게 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보수 유학에서 출발했지만 폐쇄적이지는 않았다. 이상룡만 해도 유림 출신이지만 사회주의를 유가의 대동사회로 이해했다. 유학자였던 류인식은 쉰이 넘어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사회주의 계열의 권오설이 좌우 합작의 6ㆍ10 만세운동을 주도한 것도 마찬가지다. 당시의 안동은 현재의 안동과 많이 달랐던 것 같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oc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