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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뽀금이네 식당 “아들 잃은 슬픔, 나눔으로 치유”

입력
2017.04.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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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강원도 제234호 착한가게인 ‘뽀금이네 식당’에서 사장인 최은주(52ㆍ왼쪽)씨와 남편 장근성(56ㆍ농부)씨 부부가 환하게 웃고 있다. 정반석 기자
21일 강원도 제234호 착한가게인 ‘뽀금이네 식당’에서 사장인 최은주(52ㆍ왼쪽)씨와 남편 장근성(56ㆍ농부)씨 부부가 환하게 웃고 있다. 정반석 기자

“1, 2억씩 기부하는 것만이 나눔일까요? 크게만 생각하면 보이지 않죠.”

휴전선이 코 앞인 강원 인제군 서화면 천도리. 1,000가구(2,100여명)가 사는 마을에서 ‘뽀금이네 식당’ 사장 최은주(52)씨는 유명인사다. 이구동성 “이웃마을 사람들도 다 안다”고 할 정도다. 지난 12년간 순대국밥과 돈가스를 주로 팔며 손님들과 안면을 익힌 덕만은 아니다. 10년 넘게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들을 물심양면 돕는 ‘기부천사’로 정평이 나있다는 게 주민들 얘기다. 2012년부터는 아예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착한가게’(강원 234호점) 현판을 내걸었다.

뽀금이네 식당을 서울에서 3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어렵사리 찾아간 21일, 손님 대부분은 최씨의 봉사와 기부 이력을 말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직장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하러 왔다는 이모(35)씨는 “회사가 (식당) 근처에 있어 자주 온다”며 “주인장이 자원봉사와 각종 기부금 후원에 열심인 것을 여기 사람들은 다 안다”고 했다. 돈가스가 맛있어 시간 날 때마다 온다는 부사관 김모씨 또한 “기부단체 사랑의열매에서 받은 각종 감사패를 보고, 수익금 후원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며 “자기가 번 돈을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겠냐”고 말했다.

최씨에겐 아픈 사연이 있다. “먹고 살기 바빴지, 봉사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던 최씨가 봉사와 기부에 눈을 뜬 건 2005년. 당시 천도리에 식당을 막 열었던 최씨는 중학교 1학년생이던 둘째 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었다. 아들은 더운 여름 학교 친구들과 운동을 마친 후 동네 강변에서 수영을 하다 변을 당했다고 했다. 아들을 떠나 보낸 지 넉 달 후에는 첫째 딸도 어깨에 철심을 박아야 할 정도의 중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던 사고들. 최씨는 거듭된 불운에 자신을 자책하고, 괴로워하고, 방황했단다. “며칠간 버스를 타고 목적지 없이 강릉, 포항 등 전국을 쏘다니는 등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고 했다.

그런 최씨에게 나눔과 봉사는 약이었다. 무작정 인제군청에 전화를 걸어 “도울 수 있는 일을 알려 달라”고 물은 게 계기. ‘어디서 그런 생각이 시작됐는지’는 이제 기억도 나지 않지만, 군청에서 연결해준 한 노인복지센터에 매달 나가 반찬을 기부하기 시작했다. 아예 몸이 불편한 노인 분들을 모셔와 식사 대접에 나선 최씨는 “세상에 이렇게 날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구나,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겠구나 느끼며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최씨는 노인복지센터가 옮겨간 이후에도 매달 넷째 주에는 요양원에 나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돕고, 매달 둘째 주 보육원을 찾아가 소년소녀가장들을 도우며 봉사를 이어 오고 있다. 연말이면 좋은 일에 써 달라며 사랑의열매나 공공기관에 성금을 보냈다가 받은 감사패도 여럿이다. 최씨는 “누구나 힘든 일이 오는데 너무 갑자기 겹쳐와 감당을 못했던 것 같다”며 “세상을 먼저 떠난 아이를 통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을 배웠다”고 고마워했다.

고운 시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식당 운영이 어렵고 집안 형편이 어려울 때 봉사에 나선 최씨에게 여러 뒷말이 쏟아졌다. 심지어 “정신 나간 여자” “남편이 건설현장에서 고된 일하는데 아들 죽고 남의 집 봉사하러 다닌다” 등의 막말도 들렸다. 작은 마을이라 금새 마을 전체로 퍼져나가곤 했다. 그는 “스스로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시작한 것인데 그런 마음도 몰라주는 것 같아 펑펑 울었다”고 했다. 서러웠다고 했다.

최씨는 이제 그런 말에 개의치 않는다. “내가 원하는 일, 좋아하는 일, 행복한 일을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이제는 신념이 됐다. 10년 넘는 한결 같은 모습에 시아버지조차 “우리 며느리는 봉사가 취미야, 취미”라고 말할 정도. 가족들도 주말이면 최씨의 일정을 챙겨주며 응원하고 있다.

‘봉사란, 기부란 무엇인가요.’ 뜬금없어 보일 질문에 최씨는 “봉사를 크게만 생각하니 멀게 느끼는 것”이라며 “편한 마음을 가지면 도울 수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는 답을 내놓았다. 꼭 큰 돈을 기부해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언행으로 상대의 기분을 좋게 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서 몸으로 돕는 것, 자질구레한 돈을 아껴 나누는 것이 모두 좋은 봉사라는 게 최씨의 지론이다.

실제로 최씨가 하고 있는 기부들은 생활 속 작은 실천에서 비롯된 게 많다. 지난해 연말 기부금 또한 식당 계산 후 남은 동전과 주변의 헌 옷을 모아 팔아 마련했다. 머리카락 기증도 최씨가 내놓은 나눔의 주요 품목이다. 이날 식당 입구에는 헌 옷 세 덩어리가 눈에 띄었는데, 그는 “주변 친구들이 알아서 헌 옷을 보내주며 기부에 동참하고 있다”고 웃었다.

최씨는 올해 기부 계획을 새로 세웠다며 종이봉투를 하나 보여줬다. 종이봉투에는 지난달 27일부터 하루하루의 식당 매출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매달 3만원씩 내는 착한가게 기부금 외에 식당 매출의 1%를 추가로 모아 좋은 일에 쓰겠다고 했다. 그는 “한 번에 많이 기부하는 것보다 매일 조금씩 꾸준하게 모으는 것이 쉽다”며 “마음의 통장에 하루 500원이라도 모아 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기자에게 제안했다. “봉사를 통해 나태해지지 않고 더 열심히 살게 되는 힘을 얻게 된다”는 게 최씨가 기부를 권하는 이유였다.

마침 식당에 들어 온 손님들이 가게 한 편에 쌓인 계란을 집어 들고, 직접 계란프라이를 하느라 정신 없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계란프라이 무한 셀프 코너’. 주로 식당을 찾아오는 근처 군부대 장병들이 계란 하나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종의 서비스란다. 최씨는 “조류인플루엔자(AI) 파동으로 계란 한 판 가격이 1만원을 넘을 때도 포기하지 않은 서비스”라며 “이 또한 일종의 봉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조그만, 진정한 마음이 담긴 나눔. 최씨가 생각하는 기부의 전부였다.

인제=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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