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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방을 살리면 청년이 산다

입력
2018.04.04 14:2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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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대에 비하면 우리 세대는 많은 혜택을 누렸다. 경제성장률 연 10% 대의 고도성장기를 살았던 덕에 대학만 졸업하면 취업 걱정은 없었다. 고등학교만 나와도 갈 수 있는 회사나 공장은 많았다. 20대 후반이면 대부분 결혼을 했다. 집은 차차 돈을 모아 사는 게 당연해서 신접살림은 으레 단칸방에서 시작했다. 삶이 팍팍하긴 했어도 아예 취업이 안 된다거나 결혼을 포기하는 등 요즘 젊은이들이 처한 상황을 그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청년들의 현실은 한 마디로 암담하다. 한창 친구와 뛰어 놀아야 할 학창시절에는 학원과 독서실을 전전하며 좋은 대학에 가려고 노력하지만 좋은 대학 나왔다고 일자리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들어간 회사에서는 과로에 시달리고, 결혼해서 아이라도 낳으면 여성은 자의 반 타의 반 경단녀(경력단절여성)가 된다. 그러니 결혼과 출산이 사치(?)가 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청년들에게 “얼른 결혼해서 애 낳고 살라”는 소리는 덕담이 아니다. 아마 그랬다간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다.

2018년 현재 고등학교 1학년생은 60만 명인데 초등학교 1학년생은 46만 명, 작년 출생아 수는 35만 8천명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역에서 더 극심하게 나타난다. 농촌지역도 아닌 광주의 고등학교 1학년생은 2만 명이지만 작년 출생아 수는 1만 명으로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청년과 여성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은 결과다.

이제 낡은 제도를 버리고 저성장과 감소하는 인구 증가율에 맞추어 시스템과 체계를 전면 개혁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 관행을 근절하고 조세체계를 개편하여 청년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도 고생하지 않도록 국가가 직접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여기에 더해 지방 살리기를 정책 대안의 하나로 삼아야 한다. 지금 지방의 현실은 암울하다. 지역경제가 쇠락하면서 일자리가 없어지니 젊은이들이 전부 서울로 올라가려 한다. 그러나 서울은 더 힘들다. 돈 있는 사람에게 서울은 천국이지만, 가난한 청년들에게 서울은 춥고 비좁고 배고픈 곳이다.

알바, 임시직, 비정규직 등 뭐라고 부르든 아무리 열심히 벌어도 방값에 세금에 식비, 교통비 내고 나면 한 달에 10~20만 원, 정규직이더라도 50~100만 원 모으기가 힘들다. 수도권의 작은 아파트도 2억 원은 줘야 전세를 얻을 수 있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결혼도, 분가나 독립도 할 수 없다는 계산이고, 이러니 ‘헬 조선’이다.

지방을 다시 살려야 한다. 지방대학을 나와 그 지역에서 취직하고 돈을 모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나이 들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 맨 주먹으로 서울에 올라와 크게 성공해서 금의환향하던 시대는 끝났다. 젊은이들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꿈꾸고 있는데, 1%나 이룰까 말까 한 성공담을 마치 ‘노오력’하면 다 될 것처럼 말하는 허황한 소리도 그만하자.

문제는 다시 지방을 살릴 방법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방 분권 개헌을 하려는 이유다. 지금까지 지방은 중앙정부의 집행기관에 불과했다. 지방자치를 했지만 돈도 권한도 중앙이 여전히 쥐고 있었다. 개헌을 하면 돈과 권한을 지방에 내주고 각자 답을 찾으라고 해야 한다. 사람마다 다 다르듯이 지방도 제각각 사정이 다 다르다. 자기 지역이 뭘 해야 다시 살아날지 가장 열심히 고민하는 것도, 가장 정확한 답을 찾는 것도 결국 지역의 주민들이고 해당 지자체일 수밖에 없다.

지방이 살아나면 굳이 서울로 몰려들 필요가 없다. 과밀은 필연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부른다. 치열한 경쟁은 1등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패자로 만든다. 이제 덜 경쟁하고 격차가 덜한 세상으로 바꾸어야 한다. 지방 분권 개헌은 승자와 패자 간의 차이를 줄임으로써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다. 따뜻한 세상이 되면 청년들이 지방에서도 보금자리를 꾸릴 테고,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마을마다 다시 울려 퍼질 것이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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