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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림 객원기자 기자

등록 : 2017.08.11 04:40

[푸드 스토리] 여름엔 역시 메밀, 까칠한데 부드러운 마성의 면발

등록 : 2017.08.11 04:40

이맘때 점심 메뉴를 고민하자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평양 냉면, 막국수, 아니면 메밀국수.

탄탄한 밀가루 면인 밀면이나 냉우동을 떠올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뜨거운 여름날 왠지 더 당기는 메밀 국수 맛.

까다롭다. 까칠하다. 그러나 고소하고 부드럽다. 반전 매력의 여름 별미, 메밀 국수. 경기 용인 고기리 장원막국수의 메밀면이다.

맛 좋은 메밀의 조건

밀가루로 만든 면은 맛있다. 튼튼한 근육질 식감에, 밀가루의 단맛도 은근해서 좋다. 그 맛있는 밀가루 면을 두고 메밀을 먹는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향이다. 고소하고, 살짝 쌉쌀한 여운도 남기는 잔망스러운 그 곡물이라니! 밀가루는 소금만 넣어도 탄력을 갖기 쉽지만 메밀은 워낙 탄력과 거리가 먼 조성이다. 반죽이 쉽지 않다. 기술과 노하우를 녹여 면을 만들어 둬도, 그래 봐야 툭툭 끊기고 질감도 거친 면이다. 그게 좋다. 매끈하게 훌훌 넘어가는 밀가루 면이 주지 않는, 까칠한데 부드러운 그 질감은 메밀만의 것이다.

메밀은 짙은 적갈색 겉껍질 속으로 초여름 메뚜기 같은 연둣빛을 띄고 있다. 이 신선한 색은 산소와 만나 우중충한 적갈색으로 금세 바뀐다. 슬쩍 연둣빛 띤 회색이 좋은 메밀의 지표다. 과하게 드러내놓고 연두색을 띄는 것이 아닌, 마치 광택 같은 오묘한 색이다. 이 색의 메밀이 가진 향도, 질감도 최상이다.

좋은 메밀로 잘 만든 면은 일단 육안으로 알 수 있다. 속살의 색과 같은 연둣빛 띤 회색이 나야 한다. 메밀면은 새카맣지 않다. 겉보리나 메밀 껍질을 섞어 탄 맛을 내고 전분을 잔뜩 넣어 쫀쫀하게 뽑아 낸, 한 때 유행을 타고 하향 평준화된 대량 생산 메밀면은 이제 분식집에서나 볼 수 있다. 메밀면은 기본적으로 회색에 가깝다. 밝은 것도 있고, 좀더 어두운 것도 있다. 겉껍질을 섞어 드문드문 까만 점이 박힌 것도 있는데 메밀이 가진 이로운 성분은 껍질에 더 많다.

메밀의 진짜 제철은?

좋은 메밀엔 아스라한 연둣빛이 살짝 돈다.

그런데 메밀 국수의 제철은 언제일까? 상식적으로 여름은 아니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한 계절이 지금 이 여름이다. 소설가 이효석이 소설에서 묘사하기로 이때에 콩잎이 포기로 자랐고 옥수수는 잎새가 푸르르다. 메밀은 씨앗이라 꽃이 져야 열매가 맺히고, 그래야 씨앗도 턴다. 메밀의 시간은 아직 좀더 기다려야 한다. 우리 입맛의 메밀 제철은 여름이지만, 메밀의 제철은 가을로 가는 것이 맞다. 메밀 수확기가 가을이라, 보통은 수확 직후 메밀이 제철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용적 측면에서 메밀의 계절은 가을이 아니다. 메밀은 사실 아무 때나 심으면 추수할 수 있는 작물이다. 알다시피 춥고 메마른 지역에서 요긴한 식량이 됐던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도 2개월이면 다 자라 거둘 수 있다. 즉, 가을이 수확기라는 법도 없다. 국내산 중에서도 여름에 수확하는 것도 있다. 제주에서도 여름 메밀이 난다. 식당이 쓰기 곤란할 정도로 적은 것이 문제일 뿐이다. 강원 봉평군이 메밀 주산지로 꼽히는데 전국의 메밀을 모아 들이고, 수입 메밀을 가공하는 의미가 더 짙다. 좋은 메밀을 찾아 전국 곳곳을 다닌 서울 서초구의 일본식 메밀국수 전문점 스바루의 강영철 대표도 “강원보다 제주 한라산 구릉에 보이는 메밀 밭이 더 많다”고 했다.

좀처럼 반죽이 되려 하지 않는 메밀을 면으로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다. 반죽을 면으로 뽑아내자마자 끓는 물에 입수시키고 찬 물에 재빨리 헹구는 것도 금방 풀어지기 때문이다.

흔히 중국산을 저급한 것으로 취급하며 “평양냉면 한 그릇이 1만원 넘는 세상에 중국산 메밀을 쓴다”고 펄쩍 뛰는 ‘면스플레인’(면+Explainㆍ냉면을 자꾸 가르치려 하는 태도) 부류도 있는데, 그게 정작 잘 몰라서 시끄럽게 하는 소리다. 국산이 다 좋으리라는 법이 이제는 없다. 일단, 우리가 먹는 메밀의 양도 너무 많아 수입산에 크게 의존하게 됐다. 지난해 여름 취재를 위해 찾은 신흥 평양냉면 전문점들 중에서 국내산 메밀을 쓰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다섯 곳 중 네 곳이 중국산, 한 곳이 미국산을 쓰고 있었다. 메밀을 다루는 이름난 집 중에 중국산과 수입산 메밀을 사용하는 곳들이 더 많다. 미간 찌푸리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수입산이 나쁘다는 오해는 참 낡았다. 메밀은 원산지가 중국의 내몽골 어귀다. 중국에서부터 세계로 뻗어 나온 작물이다. 잘 키워 잘 수확해 잘 수입해오고 잘 보관하면, 국산 메밀 중 저급한 것보다 훨씬 낫게 쓴다. 100% 메밀 면을 뽑는 것으로 이름난 막국수 전문점 고기리 장원막국수 유창수 대표도 “어설픈 국내산보다는 수입산 중 좋은 것이 낫다”고 본다. 이 집도 시기마다 들어오는 메밀을 봐서 중국산 또는 미국산 중 좋은 것을 골라 받는다. 둘을 섞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어서, 절묘한 비율로 배합해 쓰기도 한다. 단가도 문제다. 비슷한 품질이라면 국내산 메밀 단가는 두 배 가격까지도 나간다. 막국수 한 그릇에 7,000원에 팔자면 품질 좋은 수입산이 합당한 선택이다.

메밀의 제철을 따지려거든 수입산 햇메밀이 식당에 당도하는 시기가 언제인가도 봐야 한다. 늦다. 최대한 빨라도 1월 말이다. 스바루의 강 대표는 몇 해째 서울 양재동 양곡도매시장에 매주 나가 메밀을 사들이는데, “중국산 햇메밀은 1월 말부터 나오기 시작해 2,3월에 많다”며 “잘 보관하면 1년 내내 햇메밀 상태 그대로 싱싱하게 유지하는 비법을 아는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고 설명한다. 강 대표는 가게를 넓혀 저온 보관 창고를 두는 것이 느릿느릿한 목표다.

아무튼 대부분 메밀로 만든 국수를 다루는 식당이 사용하는 수입산 메밀이 통관돼 시장에 나오는 시기를 가늠하자면, 메밀국수 제철은 단연 엄동설한이 한 풀 꺾인 늦겨울부터다. 가을 메밀 수확기부터 면스플레인 단골 레퍼토리로 ‘평양냉면 제철’이라는 한겨울까지는 정작 가장 오래 묵은 메밀을 먹는 셈이다.

한국과 일본식 메밀면, 가장 맛 좋은 메밀 면의 비법

메밀로 만드는 면은 크게 세 갈래다. 평양냉면과 막국수, 그리고 일본의 메밀국수인 ‘소바’. 이 중 평양냉면과 막국수는 요즘 면이 통합되는 추세다. 원래 평양냉면 국수는 메밀가루에 전분을 더해 탄성을 보태 만드는데 메밀가루로만 만드는 ‘순면’이 고급스러운 것으로 자리 잡았다. 막국수도 원래는 밀가루를 혼합하지만 요즘 잘한다는 집은 메밀 100%를 내세우고 있다. 세계인이 면을 만드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지만 평양냉면과 막국수는 공통적으로 압출면이다. 일정한 크기의 구멍이 뚫린 길다란 통에 반죽을 넣고 위에서 누르는 힘으로 반죽이 면 모양으로 빠져 나오게 하는 것이다. 재료로 똑같이 메밀가루 100%를 추구하니 막국수인지 평양냉면인지 아리송한 면들이 교집합을 이룬다. 어차피 평양냉면이나 막국수나 그 지역 흔한 곡물로 면을 만들고, 그 지역 흔한 재료로 육수를 내 차게 식혀 말아먹는 것이다. 이름이 다를 뿐 어쩌면 다르게 부를 필요도 없는 지역 차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여 평양냉면과 막국수의 100% 메밀면은 하나로 설명해도 모자람이 없기에 고기리 장원막국수의 사례만을 든다.

고기리 장원막국수의 물 막국수.

고기리 장원 막국수에서는 겉껍질을 깐 ‘메밀쌀’을 일주일에 한 번씩 받아 저온저장고에 보관해 두고 쓴다. 주방에 제분기를 두고 하루에 8~10번 사이로 제분을 해 가루를 내는데 한 번에 10㎏씩만 제분해 바로 반죽을 만들어 1시간 이내에 면을 뽑는다. 이 모든 노고는 모두 메밀의 향을 잃지 않기 위함이다. 반죽할 때도 오직 찬물만 섞어 메밀의 온전한 향을 살린다. 뜨거운 물을 사용해 반죽하면 향이 일정 부분 날아간다. 애지중지 향을 아낀 메밀 면은 바다 같은 끓는 물에서 1~2분 사이로 그때그때 메밀의 상태에 맞춰 삶는다.

소바와 한국 메밀면의 가장 큰 차이는 국수를 만드는 방법이다. 소바는 반죽을 얇게 펴서 칼로 자르는 도삭면이다. 평양냉면과 막국수 면은 분창의 모양대로 둥글지만, 소바는 네 면으로 각이 진 이유다. 소바 면은 반죽이 쉽게 되지 않는 메밀을 효과적으로 반죽하기 위해 익반죽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소바로 역사를 쓰고 있는 두 곳, 스바루와 미나미에서는 찬물로 반죽한다. 미나미 남창수 대표는 “쉽지 않지만 기술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미나미의 자루소바와 스다치 소바.

“일본에는 맛있는 소바를 만드는 3원칙이 있는데, ‘금방 제분한 가루로, 금방 반죽해 자른 것을, 금방 삶아낸다’라는 것이다.” 두 집 다 여건이 되는 만큼 최대한 지킨다. 일단 소바의 황금 비율은 오랜 시간 일본에서 판가름이 났는데 메밀이 8이요, 밀가루가 2인 ‘니하치(二八)’를 이상으로 친다. 두 식당 다 8대2로 가루를 섞어 찬물에 반죽한다. 식당마다 기술과 노하우는 다르다. 스바루에서는 껍질이 있는 메밀을 그대로 산다. 국내산 메밀도 쓰고, 수입산 메밀도 쓴다. 매주 양곡도매시장에 직접 나가서 그날 가장 좋은 것을 가져온다. 일본에서 가져온 맷돌로 제분하는 점이 특징이다. 1주일에 서너 번 맷돌을 돌린다. 면은 아침과 오후에 만들어 두고 18초~20초 삶는다. 미나미에서는 봉평산 메밀을 쓰는데 이틀에 한 번씩 제분한 가루를 받는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반죽하고 면을 자르는 것이 유별난 점이다. 딱 15~20초 사이로 삶으면 다 익는다.

평양냉면이고, 막국수고, 소바고 간에 메밀로 면을 만드는 것은 원래부터 쉽지 않다. 게다가 메밀이란 놈은 도통 결합하려 하지 않는 배타적인 조직이다. 100% 메밀면을 만드는 것은 신기에 가깝다. 잘하는 메밀 국수집들의 비법을 보니 이들은 기술자를 넘어 장인에 가깝다.

눈 앞에 펼쳐지는 라이브 소바 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일식당 스시조의 소바는 신라호텔 일식당 아리아께와 함께 특급호텔 소바의 양대 산맥이다. 스시조는 봉평산 메밀로 만든 니하치 소바다. 한석원 주방장은 “소바는 메밀의 고소한 향으로 먹는 면”이라고 정의한다. 즉석에서 만들어 바로 먹으면 그 향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다. 스시조에서는 주말마다 ‘라이브 수타 소바 프로모션’을 하고 있다. 소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로 8월27일까지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일식당 ‘스시조’의 소바. 웨스틴조선 제공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일식당 ‘스시조’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라이브 수타 소바 프로모션’(27일까지). 웨스틴조선 제공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강태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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