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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거꾸로 읽는 논어(論語)

입력
2017.09.1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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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뜻인지는 제쳐두고 많은 사람들은 학이시습(學而時習)은 들어 봤어도 논어(論語)라는 책이 어떤 구절로 끝나는지를 잘 모르는 듯하다. 사실 그 끝 구절이야말로 논어가 어떤 책인지를 설명해주고 있는데도 말이다.

“말을 알지 못하면(不知言) 사람을 알 수 없다(無以知人)”. 이 구절은 그냥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논어라는 책의 최종결론이라는 점에서 그 뜻을 명확히 해야 한다. 말을 안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하는 말만 듣고서도 정확히 그 속내를 읽어낸다는 뜻이다. 그래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짧은 구절이지만 그 안에 함축된 의미는 논어 전체를 통해 쉽게 풀어낼 수 있다. 사실 행동으로 드러나고 나서, 그 사람을 아는 것은 쉽다. 대신 행동으로 드러나기 전, 그 사람이 하는 말만 가지고 그 사람을 안다는 건 여간 어렵지 않다. 특히 짧은 몇 마디 말만으로도 그 사람의 사람됨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우리는 세상 살아가는 것이 한결 쉬울 만하다.

그런데 이 구절은 일반 사람한테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이다. 즉 지도자는 사람을 쓰는(用人ㆍ용인)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에 앞서 사람을 잘 알아보는 것은 필수적이다.

우리 조상은 그것을 지인지감(知人之鑑)이라고 불렀다. 다산 정약용은 좀 더 구체적으로 관인지법(觀人之法)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했다.

사실 조선시대 임금이나 관리들의 논어력(論語力)과 비교하면 지금 우리의 논어력은 부끄럽다 못해 참담한 수준이다. 중용(中庸)이라는 말은 책이름이기도 하지만 논어에 나오는 말인데 지금도 유학을 전공했다는 사람들조차 ‘좌우균형’, ‘조화’, ‘치우치지 않음’ 운운한다.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뜻이다. 중용(中庸)은 명사가 아니라 적중하여(中) 유지한다(庸=常)는 두 개의 동사다. 사안의 본질에 적중해 그것을 오래 품고 가는 능력이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록에는 부중(不中)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는데 이 또한 법률이나 문제의 해결책 등이 사안에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요즘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북핵 해법을 제대로 찾지 못해 허우적거리고 있는 모습이 다름 아닌 부중(不中)인 것이다.

옆으로 샌 김에 하나만 더 짚어 보자. 이미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강대국에 보낸 주요 대사(大使)를 두고서 전문성 논란이 거세다. 공신(功臣) 보훈 차원의 인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논어에서 공자는 사신, 즉 오늘날의 대사로 보내는 사람의 핵심 능력을 전대(專對)라고 말하고 있다. 전대란 본국에 조회하지 않고서 현지에서 외교관이 독자적으로 응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시경(詩經)’ 삼백편을 다 외우더라도 정사를 맡겼을 때 잘하지 못하고, 외국에 사신으로 나가 혼자서 응대하여 처결하지(專對) 못한다면 비록 많이 배웠다 한들 또한 어디에다 쓰겠는가?”

사실 논어가 어떤 책인지는 학이시습(學而時習)보다는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가 훨씬 분명하게 보여준다. 실은 “배우고 시간 날 때마다 익히면 정말로 기쁘지 아니한가?”는 첫째, 어떤 사람이 학이시습 하는 것을 정말로 기뻐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보는 잣대이며 둘째, 특히 지도자가 학이시습 하는 것을 정말로 기뻐할 때라야 그 지도자에게 스승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신하(師臣)가 다가갈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예습 복습 잘하라는 뜻이 아니다.

공자는 사람보는 네 가지 단계를 제시했다. 날 때부터 사람 잘 알아보는 자(生而知之), (논어 같은 책을 통해) 배워서 사람 잘 알아보는 자(學而知之), 곤경에 처하고서야 사람 보는 법을 배우는 자(困而學之), 곤경을 겪고서도 배우지 않는 자(困而不學). 적폐청산에 나선 새 정부의 인사능력은 어느 단계에 있을지 곧 드러날 것이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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