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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공기 반, 소리 반의 외교

입력
2017.04.2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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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의 목적은 전쟁과 극단적 대립을 피하는 데 있다. 외교와 안보는 상이한 지향점을 갖는다. 생명과 존립을 지키기 위한 안보에 있어서는 타협의 여지가 별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안보의 추구가 극단적 선택이 되지 않도록 상호간의 접점을 도출한다는 점에서 외교는 공감과 타협을 기본으로 한다. 대화로 전쟁을 피하고, 상대방을 돌려놓을 수 있다면, 화술은 외교의 가장 큰 무기가 된다.

물론 외교 역시 힘을 바탕으로 한다. 큰 목소리를 가진 행위자가 기본적으로 우위에 서게 된다. 특히 강대국 사이에 낀 나라의 외교 현실은 혹독하다. 자신의 운명이 거대 게임의 일부가 되어 있을 때 취할 수 있는 외교적 선택은 너무도 제한적이다. 그러나 힘의 논리를 가지고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공감을 통해 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외교의 언어는 때로는 단호해야 하지만, 때로는 노래가 되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이 노래는 단순히 즐기기 위한 음악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절실한 소통의 도구이다.

문득 K팝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한 심사위원이 종종 했던 말이 생각난다. 노래는 짧은 시간에 관객에게 감동을 주고 다가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긴 호흡과 음을 당기고 늘리는 리듬감, 장ㆍ단조를 오가는 변조, 그리고 공기 반 소리 반의 자연스런 공간감이 갖춰져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외교의 노래는 어떠했는가? 이제까지 우리는 공기 하나 없이 어깨에 힘주고 긴장하며 가사를 전달하는 데 치중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한 박자, 한 소절이라도 어긋날 때마다 안팎에서 탈탈 털리는 경험을 하고 난 정책담당자들은 가장 안전한 목소리로 모범답안의 멜로디를 불러야 했다. 솔직하고 정직한, 하지만 다음 소절이 어떻게 나올지 뻔히 보이는 노래를 짧은 호흡으로 불러왔는지도 모른다. 만약 지금 대선 후보들의 외교안보 논의도 오디션 심사위원처럼 평가했다면, 관객 마음에 와 닿아 다음 라운드로 진출할 수 있었을까?

외교에 있어서 원칙은 중요하고, 말과 행동도 일치해야 한다. 그러나 말과 말, 그리고 말과 행동 사이의 시간과 공간의 패턴이 반드시 일정할 필요는 없다. 외교에서 말과 말, 행동 사이의 공간은 자칫 불확실성이 될 수 있지만, 만약 이러한 공간이 치밀하게 의도된 것이라면 외교적 자산이 될 수도 있다. 동맹국 사이에서 같은 말을 하는데도 행동이 조율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달라 보이는 말을 하는데도 자연스럽게 조율이 되는 경우가 있다. 후자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신뢰감이다. 거기에 유연성과 창조성이 덧붙여졌을 때 비로소 외교적 카드를 한 장 쥘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지금의 상황에서 “한미동맹을 중심축으로 하고 중국을 잘 설득하는“ 것 이외에 한반도 외교에서 획기적 방안이 나올 여지는 크지 않다. 결국 매번 똑같이 부르고 불러서 이제 식상한 그 ‘뻔한 발라드’를 새로 편곡해서 한 끗발 다르게 불러내야 할지 모른다. 그러기 위해 새로운 템포와 리듬, 그리고 의도한 엇박자까지 연습해야 한다. 또한 그 외교의 노래는 관객을 바라보고 불러야 한다. 종종 우리 외교의 노래는 무대 뒤를 보고 자국민을 상대로 불려졌다. 하지만 이제는 미국, 중국, 일본, 북한 그리고 국제사회라는 관객 앞에서 그들의 마음 한구석을 움직여야 한다.

우리는 “예, 아니오”의 확실한 언어로 외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고, 대상에 따라 분노의 언어와 애정의 언어를 뚜렷이 구별했다. 물론 우리의 운명을 건 외교 문제에서 의사표명은 신중하고 당당해야 한다. 다만 그 언어의 사용은 더 유연하고 마음에 와 닿아야 한다.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지는 한반도 정세 하에서 우리는 근엄한 안보의 구호뿐만 아니라 새로운 외교의 언어로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것도 공기 반, 소리 반의 여운을 남기면서 말이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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