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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따뜻한 정부의 과유불급 증후군

입력
2017.06.2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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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고통을 껴안읍시다”. 이 말은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의 한 대목으로 새 정부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새 정부는 촛불시위를 통해 드러난 국민들의 요구인 적폐청산을 대선 핵심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한 만큼 나라를 바로 세운다는 대의(大義)를 내걸고 있다. 즉 문재인 정부는 ‘따뜻하고 바른 나라’를 지향하는 정부라고 성격 지울 수 있다.

경제적 양극화와 정치사회적 적폐가 누적되어 있는 만큼 대한민국을 나라다운 나라로 만드는데 고쳐야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것이 사실이며, 그런 만큼 가슴 뜨거운 문재인 정부는 넘치는 개혁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과거 정권들을 돌이켜 보면 집권 초 의욕만큼 성과를 낸 정부는 드물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 ‘국민이 행복한 시대’를 지향했지만, 결과적으로 국민이 분노하는 시대를 만들고 조기에 퇴진했다.

왜 정권들은 집권 초 추구하던 목표를 실현하는데 실패했는가?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나 정책적 과욕과 과속이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개혁 의욕에 넘치는 나머지 과도한 과제들을 그것도 숙성되지 않은 채 서둘러 추진한 결과, 정권들은 스스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의 함정에 빠져 총체적 실패를 거듭해 왔다.

문재인 정부도 이미 과유불급 증후군의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국정 3대 우선과제로 일자리 창출·4차 산업혁명 준비ㆍ저출산 대책을 선정했다. 이 모두 성과를 내는데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한 국가과제들이다. 특히 저출산 대책의 경우, 지난 10년간 100조원의 재정을 쏟아 붓고도 실패했다. 서울대 공대에서 과학계가 안고 있는 근본문제로 지적한 ‘축적의 시간’이 부족한 문제는 개혁정책에도 마찬가지다. 가슴 뜨거운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축적의 시간’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과도한 개혁 의욕으로 인한 실패 위험을 스스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문제, 교육개혁, 재벌개혁 곳곳에서 가슴 따뜻한 정부의 넘치는 의욕이 쏟아내는 뜨거운 정책들이 이미 시장과 충돌하여 마찰과 불안을 가져 오고 있다. 개혁은 필요하지만 부담과 수혜의 재배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진통을 수반한다. 그렇기 때문에 의욕에 치우친 나머지 충분히 숙성되지 않은 개혁은 국민들의 폭 넓은 지지를 얻는데 실패하고 시장과의 마찰로 인하여 개혁의 추동력을 상실하기 쉽다.

일례로 청년실업 문제가 재앙이라고 할 만큼 심각한 국가과제라면, 급하게 추경으로 미봉책부터 시작할 일이 아니라 보다 체계적인 계획을 준비하여 큰 그림으로 국민들을 설득해야 국회도 이를 수용할 것이다. 취업자중 공공부문 비중에 있어 덴마크는 35%인 반면에 우리나라는 8%에 불과하다. 또한 사회복지에 대한 지출의 대 GDP 비율이 덴마크는 29%인 반면에 우리나라는 10%에 불과하며, 덴마크 국민들은 소득 중 조세와 사회부담금으로 우리보다 대략 3배 더 부담한다. 따라서 정부는 우리나라의 취업자 중 공공부문 비중이 낮다는 것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고복지ㆍ고부담 사회로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 청사진을 먼저 제시하고 이에 필요한 공무원 정원 확대를 추진하는 것이 타당하다.

문재인 정부는 고령화와 저성장시대의 진입 시점에 집권한 정부인만큼 대한민국의 다음 시대를 준비해야 할 역사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다. 가슴 따뜻한 정부가 들어와서 의욕만 앞서 좌충우돌하다가 또 국민들에게 실망만 안겨주는 허망한 일이 없도록 문재인 정부는 서둘지 말고 보다 숙성된 개혁정책을 추진하기 바란다.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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