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23일 테러방지법 처리를 놓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과, 야당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으로 극한 대치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날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 온 테러방지법안을 ‘국가 비상 사태’를 이유로 상임위원회 의결 없이 국회 본회의에 직권 상정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이 필리버스터 카드를 꺼내 들어 밤늦게까지 의사진행을 합법 차단, 테러방지법안의 본회의 통과를 무산시켰다. 더민주는 여당이 수정안을 내지 않을 경우 선거구 획정안 처리가 예고된 26일까지 3박4일 간 필리버스터를 계속하겠다고 경고했다. 여야가 본회의 처리에 합의한 북한인권법 및 무쟁점 법안도 통과되지 못하면서 향후 의사 일정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이날 오전 정 의장이 여야가 합의한 선거구 획정 기준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구 획정위원회에 넘기며 쟁점 법안 협상이 잠시 돌파구를 찾는 듯했지만 결국 극한 대치 상태로 되돌아 온 셈이다.
정 의장은 이날 본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국민 안위와 공공의 안녕, 질서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심사기간 지정(직권상정)의 요건인 국가비상사태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법률 자문과 검토를 거쳐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후 정 의장이 이철우 새누리당이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을 직권 상정하자 더민주는 필리버스터에 돌입했다. 더민주는 앞서 이종걸 원내대표를 포함한 소속 의원 108명 이름으로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지난 2012년 5월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리는 국회법 개정으로 재 도입된 필리버스터는 의원 한 사람이 한 차례에 시간과 의사 정족수의 제한 없이 토론을 할 수 있는 제도다. 국회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가 적용된 것은 1964년 의원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동료 의원의 구속동의안 처리에 반대해 5시간 넘게 발언한 이후 52년 만이다.
첫 토론자로는 나선 김광진 더민주 의원은 정 의장이 직권상정 이유로 ‘북한 테러위협 증가에 따른 국가비상사태로 간주’한 것을 거론하며 “(그 동안) 국가 비상사태로 선포한 사례는 10월유신의 서막과 종말을 알린 1972년 12월과 1979년 10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등 3차례인데, 지금이 국가비상사태라고 볼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특히 김 의원은 이날 오후7시7분 발언을 시작해 자정을 넘긴 24일 0시39분에 마쳤다. 김의원이 연설한 5시간32분은 1964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시 여당이던 민주공화당이 김준연 자유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상정하자,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해 멈추지 않고 연설을 이어갔던 5시간19분을 넘어선 것이다.
이춘석 더민주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밤 기자간담회를 갖고 “필리버스터는 희망하는 의원이 없을 때까지 갈 것”이라며 “테러방지법안이 필요하지만 새누리당의 법안에는 국가정보원의 무제한 감청, 금융정보수집권, 정보수집 추적권ㆍ조사권 부여 등 독소조항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반면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민 생명 안전을 볼모로 정략적으로 (필리버스터를) 활용하고 있어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김 의원의 발언에 이어 24일 새벽에는 국민의당과 정의당 등 다른 야당 의원들도 잇따라 필리버스터 참여의 뜻을 밝혔다.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김지은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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