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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싱글맘 장미야 넌 나쁜 게 아니야, 아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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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싱글맘 장미야 넌 나쁜 게 아니야, 아픈 거야”

입력
2018.06.08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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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미 작가. 비룡소 제공
황선미 작가. 비룡소 제공

황선미(55) 작가에게 10년 전 이야기가 왔다. 한국 그림책 전시가 열린 스위스의 한 도시에서다. 처음 만난 시청 직원이 식사 자리에서 한국인 입양아 얘기를 꺼냈다. “한국인 입양아가 많다. ‘우리’ 인구와 대비할 때 놀라운 숫자다. 우울증을 겪거나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라는 말이 차마 삼켜지지 않았다. 버려진 아이들을 버리고 또 버리는 말.

10년의 고민을 ‘엑시트(Exit)’에 담아 펴냈다. 황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그는 밀리언셀러 동화책 ‘마당을 나온 암탉’의 저자다. 이번엔 어른 책이다. 무책임한 어른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출구라는 뜻의 엑시트는 자살을 도와주는 국제 단체의 모임의 이름이기도 하다. “절망 같은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사는 것과 죽는 것의 무게가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7일 전화로 만난 황 작가는 말했다.

주인공 장미는 18세 싱글맘이다. 얼굴도 모르는 부모에게 버림받았다. “새끼가 이뻐야 어미 아비가 붙어 산다.” 그런 말을 들으며 할머니 손에 겨우 컸다.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아이에게 생겨 버린 검은 구멍은 장미가 부모에게 받은 형벌이었다.” 구멍을 지닌 채로 태어난 장미는 또 다른 구멍을 낳고 만다. 강간으로 임신한 아기 하티. “사랑해.” 태어나 처음으로 그렇게 믿은 남자가 가해자였다. 강간 후 남자가 가래 뱉듯 뇌까린 말도 그거였다. “난생 처음 들었던 그 말은 유리창에 부딪혀 흘러내린 빗물 같았다. 아프고 구차하고 굴욕적이고 수치스러운 거였다.”

얻어 사는 반지하 방에 무섭게 번진 곰팡이, 끝내 역류해 집을 삼킨 하수. 세상이 장미와 하티에게 매긴 신분이 딱 그랬다. “약점을 알아챈 사람들이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장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장미는 그러나 자책 밖에 모른다. 원망할 누군가를 곁에 둬 보지 못한 탓이다. 슬픔도 모른다. 배꼽 주위가 뻐근하게 아파지면 그게 슬픔이겠거니 한다.

엑시트

황선미 지음

비룡소 발행∙272쪽∙1만3,000원

소설은 잔잔하고 착하다. 이야기를 그저 담담하게 밀어 간다. 장미는 TV 드라마에 나오는 억척스러운 똑순이도, 모성애의 어린 화신도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아이다. 그러나 어디도 없는 취급을 받는 아이 장미는 삶을, 하티를 포기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러려고 애쓴다. 상실을 앓으며 사는 나이 든 여성이 장미 앞에 나타난다. 그는 장미를 구원할까. “넌 나쁜 게 아니야, 아픈 거야.” 소설 속 인물의 입을 빌려 세상의 장미들에게, 하티들에게 황 작가가 전하는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황 작가는 울먹이고 있을 것만 같다. 주인공 이름을 왜 장미로 지었을까. 황 작가의 대답. “장미가 제일 예쁘니까. 장미 또래 아이들은 마냥 예뻐야 하니까. 예뻤으면 좋겠으니까…”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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