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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스위프트의 증언 “그는 나의 벌거벗은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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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스위프트의 증언 “그는 나의 벌거벗은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입력
2017.08.1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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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스위프트가 지난해 5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레드 카펫에 선 모습. 뉴욕= EPA 연합뉴스
테일러 스위프트가 지난해 5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레드 카펫에 선 모습. 뉴욕= EPA 연합뉴스

최근 미국내 음악계는 한 여성 가수의 성폭력 소송 승소에 술렁였다. 지난 2006년 데뷔한 이후 5장의 정규앨범으로 7,600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데다, 미국내 음반업계 최고 권위로 알려진 그래미상에서도 여성 가수로선 처음으로 2번의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한 인물이었기에 파장은 컸다. 지난 6월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그의 가치를 2억8,000만 달러로 평가했다. 다름 아닌 글로벌 팝스타인 테일러 스위프트 얘기다.

성공가도를 달려왔지만 스위프트도 성폭력 소송에선 여느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피해 사실 증명에 어려움을 겪었다.

사건은 지난 2013년6월2일, 콜로라도 주 덴버시의 펩시 센터에서 열린 콘서트의 시작 전 무대 뒤 스위프트의 팬미팅 현장에서 시작됐다. 팬들과 사진을 찍던 스위프트가 당시 라디오 DJ였던 데이비드 뮬러와 그의 여자친구와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뮬러가 스위프트의 치마 밑으로 손을 넣어 엉덩이를 움켜 쥔 게 발단이었다. 스위프트 측은 즉각 이 사실을 뮬러의 프로그램 관계자에게 알렸고 라디오 방송국 측은 내부 조사를 통해 뮬러를 해고했다. 하지만 그 해 뮬러는 성추행 사실을 부인하며 스위프트 측이 자신의 경력을 망쳤다며 300만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스위프트는 2015년, “뮬러가 나를 성추행한 것이 맞다”며 맞고소를 내면서 손해배상금으로 상징적인 ‘1달러’를 요구했다.

이 사건은 결국 지난 14일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 법원에서 스위프트의 주장을 인정하는 판결로 일단락됐다. 재판부는 “스위프트 보안팀의 거짓말로 해고당했다는 것은 뮬러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소송을 기각했다.

지난 10일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 법정에서 증언하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모습을 스케치한 그림. AP 연합뉴스
지난 10일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 법정에서 증언하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모습을 스케치한 그림. AP 연합뉴스

물론 과정은 쉽지 않았다. 판결 나흘 전인 지난 10일 스위프트는 법정에 출석해 한 시간 가량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했다. 뮬러의 변호사는 집요하게 사건 당시의 묘사를 요구했고 스위프트는 수 차례 반복해서 자신의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현지 언론은 그의 증언에 대해 “법정에서 ‘엉덩이’와 ‘볼기짝’이란 단어가 가장 많이 언급된 증언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뮬러 측은 성추행 혐의를 부인하며 당시 상황에 대해 사진촬영이 갑작스럽게 이뤄졌으며, 밀치는 과정에서 자신의 손이 우연히 스위프트의 늑골 부위를 만진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스위프트의 증언은 달랐다. 그녀는 이날 팬미팅에서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서로 밀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신체접촉을 겪기는 했지만 뮬러와의 신체접촉은 전혀 달랐다고 주장했다. 스위프트는 단호하게 “그는 내 늑골을 만진 것도, 내 손을 만진 것도, 내 팔을 만진 것도 아니다. 그는 내 벌거벗은 엉덩이를 움켜쥐었다”고 말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세 사람이 함께 섰을 때 스위프트는 뮬러의 행동에 충격을 받아 짧은 순간 이것이 실수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뮬러의 행동이 고의적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뮬러에게서 최대한 떨어져 그의 여자친구 쪽으로 붙을 수 밖에 없었지만 그 와중에도 뮬러는 계속 스위프트를 붙잡고 있었다. 스위프트는 “한번도 나에게 벌어진 적이 없는 충격적인 일이었기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멀리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스위프트는 많은 성범죄 소송에 나선 피해 여성들처럼, 자신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뮬러 측 변호사의 반복된 질문은 스위프트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변호사는 반복해서 “당시 뮬러의 손의 위치가 당신의 치마의 아래에 있었나, 밖에 있었나”, “뮬러가 다른 부적절한 방법으로 당신을 만졌나” 등을 물었다. 스위프트는 냉담하게 “그가 나의 하반신을 움켜잡는 것과 내가 그에게서 벗어나는 걸 막는 것 말고는, 그는 부적절하게 나를 만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항상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스위프트의 성추행 장면이 외부로 알려지지 못했던 사실도 의혹의 대상이었다. 스위프트는 사진이 가벽 앞에서 찍혔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뮬러의 성추행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뮬러의 손이 어디에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 그녀의 치마 바로 밑에 있는 것이라며, “우리는 거기에 보디가드를 세워두지 않았다”고 신랄하게 비꼬기도 했다.

스위프트의 어머니 역시 법정에서 증언했다. 그녀는 “이 사건은 부모로써 내가 왜 딸을 예의바르게 키웠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승소판결이 나자 스위프트는 울면서 어머니를 끌어안았고, 배심원을 향해 감사의 말을 전했다. 스위프트 측은 이후 성폭력 피해자의 변호를 지원하는 단체들에 기부를 할 계획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법정에서의 스위스트 행위가 성범죄 소송을 해 본 여성들에겐 또 다른 고통이란 점에 주목한다.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손문숙 활동가는 “성폭력 소송에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상대방에게 성폭력을 행사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는 점까지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진다”고 지적했다.

폐쇄회로(CC)TV 화면이나 목격자 등 증거가 없는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은 둘 사이에서만 발생하는데, 소송 과정에서 보통 가해자가 자신의 무혐의를 입증해야 할 부담보다는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도 무거운 짐이다. 아울러 입증 과정에서 피해자는 소위 ‘오해를 부를만한 행동이나 발언을 하지 않았나’라는 의혹에 대해서도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 한다.

손 활동가는 “진술하는 모습에서도 가해자는 보통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데 반해 피해자는 순식간에 피해가 벌어진 상황에 당황하고, 온갖 감정에 휘말리면서 당시를 정확하게 기억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며 “이러한 이해 없이 피해자가 추행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 등을 놓고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보는 시각도 피해자의 구제를 힘들게 만드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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