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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Biz 리더] 아디다스 제끼고 “이젠 삼성ㆍ애플과 경쟁”

입력
2017.03.0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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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플랭크 회장은 “스포츠 브랜드 1위가 우리 목표”라며 “우린 젊은 브랜드이고 구성원도 젊으며 이기고자 하는 의지와 근성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내 직접 진출에 맞춰 지난해 말 한국을 찾은 그는 “삼성전자처럼 혁신적인 IT기업과 협업해 제품을 선보이고 싶다”고도 했다. 위키피디아 ⓒDcavalli
케빈 플랭크 회장은 “스포츠 브랜드 1위가 우리 목표”라며 “우린 젊은 브랜드이고 구성원도 젊으며 이기고자 하는 의지와 근성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내 직접 진출에 맞춰 지난해 말 한국을 찾은 그는 “삼성전자처럼 혁신적인 IT기업과 협업해 제품을 선보이고 싶다”고도 했다. 위키피디아 ⓒDcavalli

“언더아머의 경쟁상대는 아디다스 뿐만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IT의 거물인 삼성, 애플과 경쟁하고 있다.”

최근 국내 직접 진출에 나선 글로벌 스포츠웨어 브랜드 언더아머의 최고경영자(CEO) 케빈 플랭크(45) 회장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서 이같이 말했다. 전자제품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스포츠웨어 브랜드 경영자가 CES의 기조연설자로 나선 것이 의아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는 “언더아머가 늘 테크놀로지(기술집약) 회사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더아머를 단순한 스포츠웨어 회사로 한정 짓지 않으려는 플랭크 회장의 사고는 그가 던지는 질문에서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삼성과 애플이 의류와 신발을 만들겠다고 결정한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실제로 만든다면 어떤 걸 내놓을까. 애플과 삼성을 이기려면 답을 찾아야 한다. 누가 됐든 훌륭한 차세대 티셔츠를 만들어내는 회사가 이길 테니까.”

플랭크 회장은 1996년 언더아머를 창업해 북미 지역 스포츠웨어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언더아머는 지난해 3분기까지 26분기 연속 20%가 넘는 매출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나이키, 아디다스에 이어 세계 3위 스포츠 브랜드로 올라섰다. 북미 시장에서는 지난해 3위로 내려서긴 했지만 2015년 아디다스를 꺾고 스포츠웨어 점유율 2위에 오를 만큼 무서운 기세를 보였다. 지난해 전 세계 매출은 전년도보다 22% 늘어난 48억3,000만달러(약 5조 4,580억원). 플랭크 회장의 자산은 19억달러에 이른다.

언더아머는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는 프론티어 기업 중 하나다. CES에서 언더아머가 선보인 운동화는 내장된 칩으로 착용자의 이동 거리, 속도, 칼로리 소모량 등을 기록하고, 스마트 잠옷은 신체의 변화를 측정하는 한편 온도를 조절해 최적의 수면과 회복을 돕는다. 고객의 니즈에 대응하려면 데이터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플랭크 회장이 내놓은 혁신 상품이다. 언더아머는 지난해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6위에 올랐는데 스포츠 브랜드 중에서는 10위 안에 든 유일한 회사이다.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면 길이 보인다’

플랭크 회장은 부동산 사업가인 아버지와 전 켄싱턴시 시장이자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고위 관료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풍족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형제들 중 유일한 문제아였다. 1년치 수업료가 4,000만원에 이르는 명문 사립학교인 조지타운 고교에서 낙제와 음주난동으로 2년 만에 퇴학당했다. 그가 당시 어머니에게 전화해 “학비 부담이 줄어들게 돼 다행”이라고 말할 만큼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퇴학은 전화위복이 됐다. 모범생인 형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에 맞는 삶을 찾은 것이다. 미식축구 선수로 뛴 경력 덕에 이웃학교에 금세 전학을 갔지만 대학 진학은 쉽지 않았다. 대학 미식축구 1부 리그에 속한 학교 중 어느 곳에서도 영입 제의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주전으로 뛸 가능성은 낮지만 ‘워크온(자비로 입학해 다니는 선수)’으로 메릴랜드대에 들어갔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최대한 활용했다. 주전 선수들이 점수를 낼 수 있도록 온 몸을 다해 상대 선수에게 돌진하는 수비수 역할을 맡았다. 유명 미식축구 선수 에릭 오그보구가 대학 시절 경기장에서 뇌진탕을 겪은 적이 한 번 있는데 바로 케빈 플랭크 때문이었다. 이런 투지 덕에 플랭크는 팀의 주장 자리까지 올랐다.

경기장에서는 죽을 힘을 다해 뛰었지만 플랭크의 머릿속은 사업 아이디어로 가득했다. 친구들이 데이트를 할 때 밸런타인데이에 꽃을 팔았고 록 밴드 공연에 갈 때 공연장에서 티셔츠를 판매했다. 최고의 사업 아이템은 경기장에 있었다. 미식축구 경기를 한바탕 뛰고 나면 유니폼 안에 입는 면 소재 티셔츠가 땀에 흠뻑 젖곤 했다. 심할 경우 티셔츠 무게만 1㎏이 넘었다. 플랭크는 땀에 젖은 티셔츠가 불편할 뿐 아니라 선수의 기량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했다. ‘땀을 잘 배출하는 티셔츠를 왜 아무도 만들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만들어야겠다.’

꽃을 팔아 번 돈으로 다양한 원단을 사서 그는 견본을 제작했다. 결국 여성 속옷에 쓰이는 재질을 사용해 땀에 젖어도 200g밖에 안 되는 티셔츠를 만들었고, 견본을 제작해 팀원들에게 나눠줬다. 동료들의 반응은 ‘대만족’이었다..

대학 졸업 후 플랭크는 1만7,000달러를 들고 할머니 집 지하실에서 친구 킵 퍽스와 사업을 시작했다. 대학 미식축구팀 장비 담당자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라커룸을 돌아다니며 티셔츠 견본을 나눠줬다. 입소문을 내기 위해서였다. 프로 선수가 된 대학 동료들에게도 티셔츠를 여러 장 보내 같은 팀 선수들에게 나눠주게 했다. 전화 세일즈와 주문 정리, 상품 포장ㆍ배송을 단 둘이 하느라 잠은 하루 네댓 시간밖에 잘 수 없었다. 통장 잔고가 바닥나고 빚이 4만달러까지 쌓였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미식축구에서 상대 선수에게 뛰어들 듯 그의 저돌적인 투지는 먹혀 들었다. 조지아공대를 시작으로 대학 팀들에서 주문이 이어졌다. 기존에 입던 브랜드에 익숙해 낯설어 하던 선수들도 언더아머 의류의 뛰어난 땀 배출 기능에 만족해 했고 입소문은 선수들 사이에서 퍼져 나갔다. 바이럴 마케팅의 시작이었다.

플랭크의 영업전략은 ‘실제보다 커보이게 하기’였다. 티셔츠 판매 계약을 맺은 대학이 5군데면 사람들에게 10군데라고 말했고, 명함은 ‘회장 겸 창업자 케빈 플랭크’와 ‘세일즈맨 케빈 플랭크’ 2종류를 함께 들고 다녔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뛰어든 뒤 해법을 찾았다. 긴 소매 셔츠를 주문 받으면 실제로 만들고 있지 않아도 일단 가능하다고 말한 뒤 해결책을 찾았다. 첫 번째 방법이 안 되면 늘 두 번째 방법을 만들어냈다. 주문이 밀려들어 우체국 마감 시간을 맞출 수 없게 되자 더 늦은 시간까지 받아주는 페덱스를 이용했고, 더 늦어지자 아예 물건을 싣고 공항까지 내달렸다. 1만7,000달러로 시작한 회사는 3년 만인 1999년 100만달러 매출을 돌파했고, 2003년에는 100배 이상 성장해 1억달러를 넘어섰으며 2010년에는 10억달러 고지를 달성했다. 플랭크는 2018년까지 매출을 65억달러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래를 결정하는 회사가 이긴다’

‘나이키 회장님, 지금은 우릴 모르겠지만 언젠가 우리가 누군지 알게 될 겁니다.’

언더아머를 막 시작했을 때 플랭크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나이키 창업자인 필 나이트 회장에게 이런 내용이 담긴 카드를 보내곤 했다. 아무도 언더아머가 어떤 회사인지 모를 때조차 아디다스나 리복이 아닌 세계 1위 회사 나이키를 경쟁 상대로 삼았다. 다들 무모하다고 여길 때 그는 “안 될 게 뭐 있나”라고 응수했다. 그의 승부근성은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있는 언더아머 본사 사무실 화이트보드에 적힌 글귀에 잘 드러나 있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빨리 처리하라’ ‘모두를 존중하되 누구도 두려워하지 말라’ ‘사업가처럼 생각하고 혁신가처럼 창조하며 팀 동료처럼 일하라’.

플랭크는 창업 초기 최고의 스포츠 의류를 만드는 데만 집중했다. 스포츠웨어의 핵심인 신발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언더아머가 의류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굳어질 무렵인 2006년에야 미식축구화를 만들었다. 2008년 미국을 강타한 불경기에도 굴하지 않았다. 불황에도 사람들은 운동을 하고 옷과 신발을 살 테니 사업을 계속 확장해야 한다고 여겼다. 2008년 트레이닝화를 시작으로 2009년 러닝화, 2010년 농구화를 연이어 내놓았고 창사 이래 한 번도 만들지 않았던 면 소재 의류까지 내놓으며 승승장구했다.

앞날을 내다보는 언더독(이길 확률이 낮은 약자) 전략도 통했다. 당장은 실력이 부족하고 성적도 뛰어나지 않지만 잠재력이 큰 선수를 광고 모델로 채택했다. 톱스타들을 나이키나 아디다스가 이미 모델로 쓰고 있기 때문이지만 1등에 도전하는 언더독의 열정과 투지와 맞아 떨어지는 것이기도 했다. 나이키가 마이클 조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당대 최고 선수들을 모델로 기용할 때 언더아머는 아직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두각을 내지 않았던 야구선수 클레이튼 커쇼와 농구 선수 스티븐 커리를 후원했다. 이들은 언더아머와 계약 후 슈퍼스타가 됐고 언더아머의 매출도 급성장했다. 커리가 NBA MVP로 꼽힌 2015년 언더아머의 신발 매출은전년 대비 무려 57% 늘어나며 이 같은 전략은 대성공을 거뒀다.

NBA스타 스티븐 커리가 등장한 언더아머 광고.
NBA스타 스티븐 커리가 등장한 언더아머 광고.

플랭크 회장은 “세계에서 최고의 장사꾼은 앞으로 올 것을 예상하는 사람이 아니라 앞으로 올 것을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가 IT와 스포츠웨어를 결합한 ‘커넥티드 피트니스(Connected Fitness)’를 실현시키기 위해 수년 전 디지털 전략을 완전히 개편한 이유다. 언더아머는 2013년 운동 관리 애플리케이션 제작사인 맵마이피트니스를 인수한 데 이어 2015년 칼로리ㆍ영양 측정 애플리케이션 제작사 마이피트니스팔, 피트니스 관리 애플리케이션 제작사 엔도몬도를 잇따라 사들였다. 이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건강모니터링 패키지 ‘헬스박스’를 선보여 지난해 CES에서 혁신상을 수상했다.

플랭크 회장의 공격적인 투자가 수익만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4분기 매출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에 언더아머 주가가 연초 대비 30% 가까이 폭락했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맞았다면 커넥티드 피트니스는 회사 매출을 몇 배 끌어올리며 언더아머를 진정한 테크놀로지 회사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틀렸더라도 약간 손해를 볼 뿐이다. 우리에겐 당장 쓸 수 있는 돈이 충분히 있으니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는 계속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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