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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받던 사람들 존엄 일깨워… 한국 순교역사 또 하나의 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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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받던 사람들 존엄 일깨워… 한국 순교역사 또 하나의 획

입력
2014.08.17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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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주문모 신부 제외 모두 평신도… 양반 외 백정·악사·아녀자 등 포함

"민중이 역사의 중심에 서는 순간" 기쁨과 경건함의 물결 광장 가득

시복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무개차를 타고 행진하며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이날 미사에서 윤지충 바오로를 비롯한 순교자 124위가 복자로 선포됐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시복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무개차를 타고 행진하며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이날 미사에서 윤지충 바오로를 비롯한 순교자 124위가 복자로 선포됐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복자라 부르고 해마다 축일을 거행할 수 있도록 선언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포가 울려 퍼졌다.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 모인 신자와 시민들이 환호했다. 제단 주변 건물에 걸려있던 걸개그림도 따라 펄럭였다. 그림 속 순교자 124인이 춤을 추는 듯 들썩였다.

16일 오전 열린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인의 시복식은 기쁨과 경건함이 뒤섞인 예식이었다. 교황의 선언으로 순교자 124인은 한국 교회의 추앙을 받는 복자ㆍ복녀(성인의 전 단계)로 다시 태어났다.

이들 가운데 사제는 단 한명이다. 중국인 선교사 주문모 신부를 제외한 123명은 평신자였다. 철저한 계급사회였던 조선에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 천민, 평민도 끼어 있다. 백정 출신인 황일광(시몬), 옹기장이 이도기(바오로), 악사(樂士) 지황(사바), 궁중 나인 강경복(수산나) 문영인(비비안나), 관아 아전 박상근(마티아) 등이 그들이다.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여성도 있다. 김조이(아나스타시아) 심조이(바르바라) 최조이(바르바라) 이조이(막달레나)다. ‘조이’란 조선시대 서민의 아녀자를 부르는 말이었다. 이들과 함께 복자가 된 정약용의 형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이 한글교리서인 ‘주교요지’를 쓴 이유도 배우지 못한 천민이나 여성을 위해서였다.

천주교가 무엇이었기에 이들은 목숨을 내놓으면서도 기껍게 여긴 걸까. “내 신분이 이런데도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 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 백정 황일광이 천주교 교리를 배우며 만난 양반들이 자신을 동등하게 대해 주자 했다는 말이다.

한국천주교회사 연구로 저명한 조광 고려대 명예교수(사학)는 “이들이 천주를 알게 되면서 자신이 천주에 버금가는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은 것”이라며 “이들에게는 죽음보다 더 귀한 진리였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민중의 이러한 깨달음은 평등의식과 개인의 존엄성이라는 근대 민주사회로 가는 토대가 됐다”고 덧붙였다.

교황 역시 한국 순교자의 역사에 감동했다. 교황청 대변인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교황이 한국의 순교 역사에 크게 감동해 영적으로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시복식 장소가 세종대왕상과 충무공 이순신 동상이 있는 광화문 광장이었다는 점도 각별하다. 두 사람은 역사가 가장 화려하게 기억하는 영웅이다. 서울 장위동 성당의 신자로 시복미사에 참석한 조 교수는 “이름 없던 개인들이 우뚝한 두 영웅과 함께 역사의 주인공으로 선포됐다”며 “민중이 역사의 한가운데로 올라오는 아주 인상 깊은 현장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무총장이던 1998년부터 시복을 준비한 김종수 신부의 감회도 남다르다. 김 신부는 주교회의의 청원인으로 지정돼 2009년 6월 교황청 시성성에 시복 청원서를 냈고 시복미사에선 교황 앞에서 순교자들의 약전을 낭독했다. 김 신부는 “한국 천주교를 ‘평신도의 교회, 순교자의 교회’라고 하면서도 이들의 피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마음의 빚이 있었는데 이제 조금이나마 덜게 됐다”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황수현기자 sooh@hk.co.kr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일정 따라잡기]

넷째날②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

넷째날① 아시아 주교들과의 만남

셋째날②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 미사

셋째날① 서소문 순교성지 참배

둘째날② 아시아 청년들과의 만남

둘째날①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와 세월호 유족 만남

첫 날③ 한국 주교들과 만남

첫 날② 대통령 면담 및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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