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승준 기자

등록 : 2018.02.14 04:40

[Enter, 현장] 거리, 스크린에서… 아직 살아있는 '마왕' 신해철

등록 : 2018.02.14 04:40

창작 공간을 박물관으로 조성

즐겨보던 책ㆍ라디오 진행표 등

고인의 자취를 곳곳에 보존

신해철 거리엔 동상.추모글...

오늘 개봉 영화 ‘골든 슬럼버’

미공개 육성 이용 곡 새로 만들어

경기 성남시에 마련된 '신해철 거리' 초입.

“대학에 꿈을 가지러 왔는데 더 희미한 길을 제시하네요.” 라디오 DJ는 청취자가 보낸 사연을 읽었다.

비싼 대한 등록금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었다. “머릿속에 인생 세 가지 원칙 세워가며 단순하게 살면 그것도 행복인데…” DJ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청년으로 보이는 청취자의 불안을 어루만졌다. 가수 신해철(1968~2014)의 목소리였다. 11일 오후 2시 경기도 성남 분당구 발이봉로 3번길2. 신해철의 음악작업실인 ‘신해철 스튜디오’에는 그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신해철이 생전에 SBS와 MBC 등에서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 네이션’ 녹음이었다.

신해철 거리 내 '신해철 스튜디오' .

8일 문 연 ‘신해철 스튜디오’ 가보니

미셸 푸코 ‘앎의 의지’, 기형도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 일본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 전집… 지하 1층 약 99㎡(30평)의 공간에 마련된 응접실의 책장에는 신해철이 즐겨 본 다양한 분야의 책이 빼곡했다.

작업실은 신해철 박물관이었다. ‘소년에게 성교육이 필요한 이유’ 등의 문구가 적힌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표(2012년 9월 1일)를 비롯해 프로젝트 전자음악팀 모노크롬 기획안, 밴드 넥스트의 1집 ‘홈’(1999)의 음악이 실린 사각의 디스켓 등이 전시돼 신해철 창작의 발자취를 보여줬다. 컴퓨터가 놓인 책상의 일정표에는 ‘(2014년) 10월 30일 오후 4시 JTBC ‘속사정 쌀롱’ 녹화’가 마지막으로 적혀 있었다. 신해철은 이 일정을 소화하지 못했다. 녹화 사흘 전에 의료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컴퓨터 모니터 앞엔 신해철이 태우다 남은 담배도 고스란히 남겨 있었다. ‘흡연을 즐기라’는 뜻의 영문이 새겨진 재떨이가 고인의 위악을 대신했다. 이날 신해철 스튜디오에서 만난 자원봉사자에 따르면 지난 8일 문을 연 이 공간에는 500여 명의 시민이 다녀갔다.

신해철 스튜디오 인근에 조성된 ‘신해철 거리’에는 그의 흔적이 가득하다. 신해철이 마이크를 잡고 앉아 있는 동상부터 그가 쓴 노랫말과 그가 세상에 던진 말이 나무 푯말과 돌 등에 아로새겨져 있다. 160m 구간의 신해철 거리에는 추모글이 수놓아져 있다. 고인에 대한 저마다의 기억이 생생하게 깃들어 있다.

“지금쯤 어느 공원의 양지 바른 벤치에 걸터앉아, 뛰노는 아이들의 귓가에 병아리의 추억으로 맴돌 사람. 내게는 가객일 뿐 아니라 논객으로 남은 사람”(손석희 JTBC 사장), “힘들었던 시절 형님의 노래 ‘날아라 병아리’를 들으며 위로 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날아오를 그날을 꿈꾸던 내게 친구가 되어준 그 노래... 내 마음 속 영원한 마왕”(방송인 유재석)

신해철 거리에 세워진 신해철 동상(사진 맨 위부터)과 스튜디오에 전시된 그의 음반 그리고 거리 나무 푯말에 새겨진 그가 남긴 노랫말.

“청년 문화 상징” 스크린의 신해철

“신해철은 힘든 이들에게 위로이자 용기였고 희망”(산악인 엄홍길)이었다. 세상의 아우성을 음악으로 때론 소신 발언으로 전하며 시대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던 창작자였다. 시대와 호흡하는 가수의 부재 속에 거리뿐 아니라 대중문화에서도 신해철을 기억하려는 몸짓은 이어지고 있다.

14일 개봉할 영화 ‘골든 슬럼버’에서 고교 동창인 건우(강동원), 금철(김성균), 동규(김대명) 등은 같은 밴드 멤버로 신해철의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한다. 김태성 음악감독은 “신해철은 청년 문화의 상징”이라며 “학창 시절 밴드를 했던 30~50대라면 ‘그대에게’를 따라 연주했을 거라 생각해 영화에 모티프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골든 슬럼버’는 대통령 후보 암살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한 남자의 도주극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우정을 보여준다. 영화에는 ‘그대에게’를 비롯해 ‘힘을 내!’ 두 곡이 쓰였다. ‘힘을 내!’는 신해철의 미공개 육성을 활용해 완성했다. 넥스트는 편곡을 한 뒤 연주를 새로 했다.

강동원(왼쪽부터) 김대명 김성균이 영화 ‘골든 슬럼버’에 삽입된 신해철 노래 ‘힘을 내!’를 녹음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유족 돕자” 뜻 모은 영화ㆍ음악계

신해철 원곡을 쓰지 않은 속뜻은 따로 있었다. 영화에 새로움을 주면서도 신해철의 유족에 더 많은 곡 사용료가 돌아가게 하려는 의도가 담겼다. 곡을 새로 만들면 복제권, 배포권 등이 포함된 저작인접권을 기존 음반제작사가 아닌 유족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골든 슬럼버’를 제작한 영화사 집은 신해철 유족에게 연락해 새 음악 작업을 건의했고, 유족은 신해철의 오랜 지기였던 음악인 남궁연에게 부탁해 작업이 성사됐다. 넥스트 기타리스트인 데빈이 신해철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그의 음성을 유물 발굴하듯 찾았다. 작업은 지난해 7월 중순부터 지난달까지 이뤄졌다. 남궁연은 “너무 요즘 사운드면 안 되어 (신)해철이 전성기 때 소리를 내려고 작업을 하느라 애를 먹었다”며 “해철이가 허락한 컷(녹음)이 아니라 나중에 고인이 뭐라고 할 수도 있다”며 웃었다.

신해철 유족을 향한 도움의 손길은 가요계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이승환은 지난해 11월 신해철 유족에 3,000만원을 전달했다. 이승환 소속사 드림팩토리는 “자선 공연 ‘차카게 살자’를 통해 얻은 수익금 일부를 신해철 두 자녀의 교육비로 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성남(경기)=글ㆍ사진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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