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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아들아, 사람이 움직이는 게 신기하지?

입력
2016.06.16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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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된 후로는 언제나 한 발짝 늦는다. 어떤 영화가 천만 관객을 기록하며 흥행하는 중에도 ‘음, 그런 영화가 있어?’ 할 뿐이고, 대한민국 여심을 흔들었던 송송 커플의 달달한 로맨스도 한참 지난 후에야 확인했다. 원래도 유행에 민감한 편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뒤처지지는 않았는데 육아가 힘들긴 힘든가 보다. 악동뮤지션의 새 앨범 소식도 언뜻 듣긴 했는데 역시 그때뿐이고 일상에 쫓겨 한참 동안 듣지 못했다. 그러다가 남편이 얼마 전 내 핸드폰에 담아주었다.

모처럼 음악을 듣는 호사를 누리는데 더블 타이틀곡 중 하나인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라는 노래가 귀에 확 들어온다. 이 노래는 가사에도 나오듯이 어느 날 ‘익숙하던 몸뚱어리가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을 담았다. 매일 걷는 우리는 두 다리가 움직이는 게 신기할 리 없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만큼 신기한 게 어디 있을까. 모터가 달리지도 않았는데 잘도 움직이는 데다 머릿속에 생각한 방향대로 틀림없이 움직여준다. 노래에는 심장의 두근거림도, 숨을 들이쉬면 갈비뼈 모양이 드러나는 일도 전부 다 신기하다고 말한다. 내가 이 노래에 유난히 공감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세상 모든 게 신기해 죽겠는 아들 녀석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아들은 바야흐로 “이게 뭐야?” 시기를 지나 “왜 그래요?” 시기로 접어들었다. 이게 뭐냐 물을 때도 참 귀찮았는데 왜 그러냐고 하니 대답이 더 장황해진다. “엄마, 아침에는 왜 밝아져요? 목욕 후 손이 왜 간질간질해요?” 이 정도 질문은 그럭저럭 설명 가능한데 “고추는 왜 매워요? 얼음은 왜 차가워요?”라고 물을 때면 난감하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하는 일을 이유를 들어 설명하자니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이렇게 세상 모든 게 신기하고 궁금한 아이 덕에 나도 덩달아 익숙한 세상을 낯설게 볼 때가 생긴다. 하루는 아이가 벽을 가리키며 호들갑스럽게 나를 부른다. “엄마, 저게 뭐예요? 왜 움직여요?” 바람에 흔들리는 창밖의 나뭇잎이 빛의 방향에 따라 거실 벽면에 그림자로 비친 것이다. 아이 손을 잡고 베란다로 나왔다. 2층 베란다 앞에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이 나뭇잎이 움직이는 게 저기에 비친 거야”라고 설명해주었다. 아이는 그 그림자가 신기했는지 창밖의 나무와 번갈아 쳐다본다. 내친김에 거울 놀이를 시작했다. 손거울에 햇빛을 반사해 벽면에 조그만 빛을 만든다. 나는 아이를 놀린다. “어머, 저기 햇빛 친구가 들어왔어.” 작은 빛이 내 손을 따라 요리조리 움직이자 아이는 신이 났다. 친구라는 말에 같이 놀자고 종종거리며 따라다닌다. 그러다 내가 거울을 덮자 빛이 사라졌다. 아이가 운다. “햇빛 친구 어디 갔어요” 하면서 대성통곡을 하기에 귀찮았지만 한참을 더 놀아주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거실에 앉아 공부하다가 문득 벽면에 비친 나뭇잎의 그림자를 보았다. 아이가 발견하기 전까지는 관심 밖의 형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앉아 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좋다. 아들이 아니었으면 모르고 지나갔을 텐데. 세상 모든 게 신기한 아들 덕에 잠깐의 행복을 느낀다.

우리가 손쉽게 행복을 얻는 방법은 나보다 불행한 사람을 보는 것이다. 그래, 차라리 내가 낫다며 위안하는 식이다. 그렇지만 이 행복은 처지 바꿔 생각해보면 참 덧없다. 그보다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쪽이 더 의미 있다. 이렇게 느낀 행복은 온전한 나의 행복이기에 공허하지 않다. 움직이는 두 다리가 신기한 듯, 벽면에 비친 그림자가 신기한 듯, 매일 옆에 있는 가족이 신기한 듯, 세상 모든 순간을 신기하게 대하면 생각지 못했던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물론 나도 아들의 눈이 참 부럽다. 애쓰지 않아도 모든 게 신기한 눈, 부디 그 눈을 오래 지녔으면 좋겠다.

이정미 전업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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