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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환율 ‘슈퍼 301조’ 공세

입력
2016.04.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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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종합통상법(Omnibus Trade Bill) 301조를 가리키는 ‘슈퍼 301’조는 불공정무역을 바로잡기 위한 제도로 포장됐다. 하지만 국제적으로는 악명(惡名)을 떨쳤다. 왜? 무역이 공정한지 아닌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자의적 잣대에 좌우됐고, 실제로는 미국과의 무역에서 많은 흑자를 낸 국가들을 무역 불공정국으로 몰아붙이는 데 쓰인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일방 조치에 세계 각국이 속앓이만 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섣불리 대들었다간 미국이라는 거대 수출시장을 잃을 판이었기 때문이다.

▦ 슈퍼 301조는 한시법이었다. 1989ㆍ90년, 94~2001년 등 두 차례에 걸쳐 운용됐을 뿐이다. 하지만 93~95년의 ‘미일포괄경제협의’ 상황을 돌아보면 슈퍼 301조를 앞세운 미국의 대일본 무역공세가 역설적으로 얼마나 불공정했는지 잘 드러난다. 자동차만 해도 일본차는 미국시장을 석권하다시피 했지만, 미국차는 일본에서 거의 팔리지 못했다. 낮은 연비, 잦은 고장, 둔중한 차체 등 당시 미국차의 절대적 품질 열세에 따른, 어찌 보면 불가피한 현상이었다.

▦ 하지만 미국은 비관세장벽을 탓하며 막무가내로 일본을 몰아붙였다. 클린턴 행정부는 일본 경상수지 흑자폭을 3년 내 GDP의 1% 이내로 줄일 것, 일본 정부가 자동차와 반도체 등의 수입 목표치를 정해 무조건 해당량을 수입할 것 등을 요구했다. 미국이 내세우는 자유시장경제 원칙조차 무시한 것임은 물론, 백기 항복하고 관리무역을 하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급기야 일본의 민족감정이 들끓었고, 협상에서 미국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버틴 하시모토 류타로 통산상은 나중에 총리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 최근 미국 재무부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우리나라 등 주요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월 발효한 ‘베넷-해치-카퍼(BHC)’법 때문이다. 미국 ‘2015 무역촉진법’ 중 제7장 환율조작 부분을 가리키는 BHC법은 슈퍼 301조와 마찬가지로 환율조작을 통해 미국과 ‘불공정무역’을 하는 나라에 강력한 보복조치를 가동하도록 돼있다. ‘대미 무역흑자가 과도한 국가’에 적용될 것임을 공공연히 밝혀, 특정 국가 압박 의도를 노골화했다. 우월적 시장지위를 활용해 보편적 국제규준도 아닌, 미국만의 잣대로 환율조작을 판단하고 규제하겠다니, 여간 씁쓸하지 않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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