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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도 사치” 해약하는 서민들.. 환급금 사상 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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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도 사치” 해약하는 서민들.. 환급금 사상 최대

입력
2018.08.21 17:06
수정
2018.08.21 22:38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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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비 급한 실직자ㆍ자영업자

중간 해약 땐 무조건 손해 불구

‘최후의 미래 자금’마저 허물어

1~5월 생보사 해약환급금 지급

12조 육박, 작년대비 22% 급증

은행 예ㆍ적금 해지도 점차 늘어

[저작권 한국일보]수정생명보험 해지환급금 추이_김경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수정생명보험 해지환급금 추이_김경진기자

황모(34)씨는 6년 전 가입한 건강보험을 얼마 전 해지했다. 만기가 안 됐는데 보험을 깨면 해지환급금(400만원)이 원금(648만원)에 훨씬 못 미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재취업이 늦어지며 생활비조차 빠듯한 황씨로선 이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황씨는 “회사를 다닐 때만 해도 다달이 10만원씩 보험료를 내는 게 큰 부담이 안 됐지만 실직 이후로는 보험도 사치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 외국계 생명보험사 설계사로 일하는 이모(37)씨는 요즘 안타까울 때가 많다. 최근 경기 침체를 이유로 건강보험 해지 요청을 하는 시장 자영업자들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보험은 중간에 해지하면 무조건 가입자 손해인 만큼 특약을 빼는 식으로 일단 월 보혐료를 줄이는 게 어떠냐고 설득하지만 결국 계약을 깨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최근 보험을 깨는 10명 중 7명은 자영업자라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혹시 생길지도 모를 각종 위험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장기상품인 보험에 가입했다 김씨처럼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중간에 보험을 깨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생명보험사들이 보험을 중도 해지한 가입자에게 돌려준 해지환급금은 23조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대치를 찍었는데 올해는 이마저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경기 침체에 서민들의 최후 자금까지 무너지고 있다.

21일 금융감독원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1~5월 25개 생명보험사가 내준 해약환급금은 11조7,145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9조5,475억원)과 비교하면 무려 22%나 급증한 수치다. 지난해 생보사의 연간 해약환급금은 23조6,659억원으로 1년 전(21조7,009억원)보다 9.05%(1조9,650억원) 늘어났다. 이는 보험사들이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최대치였다.

[저작권 한국일보]가구당 실질소득_김경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가구당 실질소득_김경진기자

보험은 만기까지 계약을 유지하지 못하고 중간에 깨면 가입자가 무조건 손해를 보는 구조다. 보험사들은 사업비를 뗀 나머지를 굴려 미래에 내줄 돈을 마련하기 때문에 가입자가 중간에 계약을 깨면 보험사만 이익을 본다. 이런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보험을 깨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경제의 적신호다. 당장 생활비가 없어 미래자금을 허무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다. 실제로 1분기 2인 이상 가구당 실질소득은 458만원으로, 2년 전(452만원)에 견줘 고작 6만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특히 정부의 각종 경기부양책이 제대로 먹히지 않으면서 1분기 계층간 소득격차(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 5.95배)도 역대 최대로 벌어졌다. 고소득층은 소득이 늘었는데 저소득층은 되레 줄었다.

서민의 재테크 최후 보루 상품인 은행 예ㆍ적금을 중간에 깨는 이들도 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중도 해지된 적금 건수는 2016년 520만건에서 이듬해 594만건으로 14% 늘었다. 중도 해지 예금 건수도 같은 기간 147만건에서 171만건으로 늘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그만큼 경기 침체로 저축할 여력이 없어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보험을 중간에 해지하면 소비자가 떠안아야 하는 손해가 보험사에 견줘 훨씬 큰 만큼 이런 불균형을 바로잡는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환급률을 높이거나, 실업으로 당장 보험료를 내지 못할 땐 계약 효력을 실효시키는 게 아니라 일정 기간 보험료 납부 유예 기간을 두는 식의 개선책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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