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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AI만 못한 세 가지 인간 군상

입력
2016.03.22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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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이 13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구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제4국에서 첫 수를 두고 있다. 연합뉴스
이세돌 9단이 13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구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제4국에서 첫 수를 두고 있다. 연합뉴스

인간은 기계를 만들면서부터 특정 능력에서 기계에게 끊임 없이 우위를 양보해왔다. 많은 사람이 예상하지 않았던 결과이지만, 바둑에서 인공지능(AI)의 승리 또한 마찬가지다. AI가 단순 기계와 달리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대목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겠으나, 그렇다고 그것을 SF영화에서 즐겨 묘사하듯 AI의 인간 지배로 향하는 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일이다.

바둑을 모르는 나로서는 알파고와 함께 열에 들뜬 지난 일주일 동안 승부보다 이 대결을 둘러싼 인간의 반응에 더 눈길이 갔다. 승패가 일찌감치 결정되자 굴욕감에 몸부림치며 설욕하겠다고 나서거나, 결과에 흠칫 놀라 AI가 가져올 불안한 미래만 상상하는 모습 같은 것들이다. 통탄해야 할 것은 AI에게 바둑에 졌다는 것보다 인간의 이런 잘못된 상황 인식이 아닐까.

우선 이 대국의 현실적인 의미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기원이나 바둑 세계 랭킹 1위라는 커제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세돌의 패배가 확정된 뒤 한국기원은 “결과를 분석해 다음에 더 준비를 하고 다시 맞붙으면 어떨까”라며 구글에 재대결을 제안했다. 커제는 한 술 더 떠 “알파고의 약점을 찾아냈다” “나는 이길 수 있다”고 호기를 부렸다. 알파고는 딥마인드라는 회사가 향상된 능력의 AI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내놓은 프로그램일 뿐이다. 이 승부를 인간의 패배나 굴욕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사인 볼트가 오토바이와 100m 달리기에서 졌다고 재대결하라고 주위에서 부추기거나 다른 선수가 “내가 이겨 보겠다”고 나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AI의 미래를 불안하게만 여기는 것도 균형감을 잃었고 인간에게 그다지 이롭지 못한 것 같다. ‘터미네이터’ ‘매트릭스’처럼 AI의 인간 지배를 그린 영화들이 뇌리에 더 선명하게 남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SF 영화도 있다. AI와 관련된 것들은 아직 많은 가능성으로 열려 있다는 말이다. 당장 AI가 도입됐을 때 생겨날 윤리적인 딜레마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가 일으키는 사고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하는 지적 같은 것들이다. 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만에 하나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가릴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럴 두려움 때문에 교통사고를 줄이는 큰 이점을 기대할만한 자율주행차 도입을 막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세돌은 딱 한 번 이겼지만 그것으로 네 번의 패배보다 더 주목 받았다. 신의 한 수 ‘78’이 회자되었고, 알파고가 돌을 던질 때 표현 방식이 눈길을 끌었다. 패배를 인정하면서 알파고가 던진 메시지는 ‘Resigns’다. 하지만 이 단어에 이어 알파고가 띄운 문장이 내게는 더 인상적이었다. ‘The result “W+Resign” was added to the game information.’ 인간에게 패한 결과가 대국 정보에 추가되었다는 뜻이다.

인간은 누구나 많은 경험을 가지지만 그것 모두를 기억해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할 때 의식적으로 이용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AI는 자신의 성공은 물론이고 실패까지 모든 정보를 축적하고 그 정보를 남김없이 활용해 앞으로 맞닥뜨릴 새로운 상황에서 최적의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의미다.

다가온 총선 정당 공천 과정에서 온갖 볼썽사나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사당(私黨)이 되다시피 한 여당의 공천을 두고는 30년 전 민주화 이전의 정치 행태를 보는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당의 경우, 특히 엊그제 비례대표 추천 과정이 70년대 정치 파동을 떠올리게 한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만약 과거의 잘못된 정치행태를 깡그리 기억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AI가 정치를 맡았더라면, 한국 정치가 지금처럼 잘못된 과거사를 되풀이 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바둑만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AI에게 많은 것을 지고 있다.

김범수 문화부장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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