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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남매 국회의원’ 전성시대

입력
2016.09.1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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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에 이어 20대에서도 ‘남매 국회의원’들의 활약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진짜 친남매는 아니지만, 계파와 선수를 뛰어넘어 피보다 진한 찰떡호흡을 보여주면서 붙은 별명이죠.

야당에서 새롭게 떠오른 남매 국회의원은 ‘김남매’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김현미 예결위원장과 김태년 예결위 간사를 지칭하는 표현인데요, 두 사람은 이번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 처리 과정에서도 협상력을 발휘하며 새누리당을 들었다 놨다 했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김현미(앞줄 오른쪽 두번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태년(앞줄 맨 오른쪽) 의원이 지난달 8일 세종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세종시 예산정책협의회’에 참석, 이춘희(앞줄 왼쪽 세번째) 세종시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현미(앞줄 오른쪽 두번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태년(앞줄 맨 오른쪽) 의원이 지난달 8일 세종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세종시 예산정책협의회’에 참석, 이춘희(앞줄 왼쪽 세번째) 세종시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본예산의 전초전 성격인 추경안을 두고 여야는 양보 없는 줄다리기 릴레이 협상을 벌였는데요. 야당 입장에선 누리 과정(3~5세 무상보육) 예산을 우회 지원할 수 있도록 교육 분야 예비비를 늘리자고 주장한 반면, 새누리당은 우회 지원은 국가 재정 원칙 상 수용할 수 없다고 버티면서입니다. 평행선을 걷던 여야 협상은 야당이 교육 분야 예비비 증액을 새누리당이 설정한 마지노선인 2,000억 원에 맞추며 한발 양보하되, 의료급여 보조 및 저소득층 생리대ㆍ장애인 지원 등 복지예산 1,500여 억 원을 각각 증액하는 선에서 마무리 됐습니다.

협상 결과를 두고 “야당이 실리는 전부 다 챙겼다”는 관전평이 나왔습니다. 여기에는 김태년 간사의 뚝심과 김현미 위원장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도 곁들여집니다. 실제 두 사람은 추경 처리 과정에서 긴밀하게 소통하며 협상을 이끌었다고 합니다. 김 간사가 협상 테이블에서 뚝심을 갖고 주고 받기 식 협상을 통해 여당의 양보를 더 많이 이끌어냈다면, 김 위원장은 여야 협상이 원만히 마무리 될 수 있도록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죠.

이에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추경안이 통과 된 지난 1일 의원총회에서 김 위원장과 김 간사를 과거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박영선 의원이 ‘박 남매’로 불린 것을 빗대 ‘김 남매’라 부르며 “두 분의 협상력이 빛났다”고 추켜세우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김 위원장이 62년생, 김 간사가 65년 생으로 3살 터울이나, 두 사람 모두 3선 국회의원이고 운동권 출신의 50대 국회의원이라는 점이 공통 분모입니다. 야권에선 두 사람이 여소야대 정국에서 처음 벌어지는 예산 전쟁에서도 큰 활약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물론 야권의 원조 남매 국회의원은 우 원내대표도 언급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박영선 더민주 의원이 함께 한 ‘박남매’입니다. 두 사람은 19대 당시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활약하며 이 같은 별명을 얻었는데요, 정부를 향해 날 선 송곳 질의로 야권의 든든한 공격수 역할을 다했죠. 지금은 박 위원장이 탈당해 국민의당으로 당적을 옮기며 졸지에 이산가족이 돼버렸는데요. 탈당 당시 박 위원장은 박 의원에게 “다시 만나자”고 문자를 보냈다고 해, 두 사람이 야권 통합의 단초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회자될 정도입니다.

국회의원 남매 버전은 새누리당 내에서도 탄생했습니다. 새누리당의 고질병과 같은, 절대 섞일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친박(박근혜)’ ‘비박’ 양대 계파의 대표적 의원들이지만 당의 위기 상황에서 뭉쳤고 박근혜 정부에 힘을 싣는 데 뜻을 함께 했습니다.

이은재(오른쪽)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달 31일 열린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유성엽 위원장을 향해 의사진행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이장우 새누리당 의원. 뉴스1
이은재(오른쪽)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달 31일 열린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유성엽 위원장을 향해 의사진행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이장우 새누리당 의원. 뉴스1

지난달 31일 오전 상황입니다. 국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내정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인사청문회가 열렸습니다. 국민의당 소속 유성엽 교문위원장이 청문회 개회를 선포하려 하자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합니다. 앞서 같은달 29일 교문위 전체회의에 앞선 소위에서 야당 의원들이 누리과정 예산 부담으로 급증한 지방교육채무 상환을 위해 예산 6,000억원을 추가로 편성해 통과시킨 것을 항의하는 차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유 위원장은 의사진행발언 요청에 대해 “이따 드리겠다. 청문회 상정부터 하겠다”고 했고, 그때부터 청문회장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고성이 오갔고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졌습니다. 당시 회의록을 살펴보겠습니다.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 의사진행발언 먼저 좀 신청합니다.

유성엽 위원장: 이따 드릴 테니까 잠깐, 상정해 놓고 드리겠습니다.

이장우 새누리당 의원: 지금 받아 주세요. 무슨 말씀이세요?

이은재 새누리당 의원: 아니 왜 그러시는 거예요, 도대체. 위원장님, (어떻게 지금)회의를 진행하십니까.

<중략>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닥치세요, 좀 조용히 해요. 멍텅구리...

이장우 의원: 닥치세요라니요.

이은재 의원: 뭐야? 어디서? (지난 소위를) 제대로 했으면 그래?

<중략>

손혜원: 그 역할로 들어오셨지요?

이은재: 뭐라고?

이장우: 닥치세요라니요.

이은재: 창피하다, 정말, 수준이. 제대로 배웠어야 말이지, 아는 게 그런 용어밖에 모르잖아.

손혜원: 그러니까 너무 창피해. 우리는 멍텅구리 정도는 안 씁니다.

이 ‘멍텅구리’라는 표현은 이은재 의원이 30일 당 의원총회에서 그 전날 교문위 추경안 야당 단독 처리를 두고 야당을 향해 “국가재정법, 지방재정법을 설명해줬는데 이해 못하는 멍텅구리들만 모여 있었다”고 말한 것이 먼저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청문회 초반부는 이렇게 여야 의원 할 것 없이 막말이 오갔고, 그런 와중에 등장한 것이 ‘이남매’ 입니다. 바로 친박계 입장을 언론에서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이장우 당 최고위원과 비박계로 분류되는 이은재 의원의 쌍포, 협공이 이날 발현된 것이지요.

압권은 이날 이은재 의원의 질의에 앞서 있었습니다. 이은재 의원의 오른쪽에 앉아 있었던 이장우 의원은 이은재 의원의 종이컵에 물을 따라 주었습니다. 그러다 다시 그 물을 다른 물잔에 옮겼습니다. 본인이 따라줬지만 물의 양이 너무 많았던 탓이었겠지요. 그런 세심한 모습이 TV카메라에 포착됐고 전국에 생중계됐습니다.

이은재 의원은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뒤인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9번으로 국회에 입성하면서 친이계로 불렸고 그 뒤로부턴 비박계로 분류됩니다. 지난 8ㆍ9전당대회에서는 비박계 여성 대표로 출마했다 친박계 최연혜 의원에게 패한 바 있습니다.

이장우 이은재 두 의원의 뜻밖의 조합은 이날 이렇게 이뤄졌습니다. 이은재 의원이 1952년생, 이장우 의원이 1965년생이니 이은재 의원이 누나가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언론만 이들을 ‘이남매’라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9월 2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이남매’ 의원이 의총장에서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이장우 의원이 먼저 이야길 합니다.

“이제 누님은 제가 지켜드릴게요. 우리 의남매 맺읍시다. (계파) 통합의 이미지에도 좋고.”

이은재 의원이 이장우 의원을 빤히 바라보며 답을 합니다.

“무슨 소리야~나 친박이야~.”

이은재 의원의 존재감은 지난 2009년 7월 미디어법 통과 때 나타났습니다. 당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법안 통과를 막고 있을 때 이 의원을 비롯해 김옥이 정옥임 등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의원들이 몸싸움을 벌이면서지요. 이장우 의원은 몸을 던져 싸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자신이 해야 할 말은 분명하게 큰소리로 하는 친박계 의원들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더불어민주당에 박지원 박영선 남매가 있었다면 이번 새누리당에는 이장우 이은재라는 저격수 남매가 탄생한 것이 됩니다.

서상현기자 ssh@hankookilbo.com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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