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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 힘든 문제들, 그래도 거기엔 실낱 같은 희망이...

입력
2017.04.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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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탄 소년

앞으로도 힘든 순간이 오겠지만

소년은 힘차게 페달 밟을거예요

●내일을 위한 시간

“복직을 도와줘” 동료들을 설득

1박 2일 대화 과정이 곧 ‘희망’

●아들

갈등이 모두 해결될 순 없겠지만

다시 함께 일하는 사제지간 남자

장 피에르·뤽 다르덴 형제 감독은 그 자체로 세상을 담아내는 영화의 어떤 태도를 뜻하는 이름이 되었다. 그들 영화에서는 음악이 거의 없고, 플래시백처럼 인위적인 구조도 쓰지 않는다. 기교를 배제한 미니멀리즘적 화법 속에서 그들의 흔들리는 카메라는 오로지 절실하게 인물을 좇을 뿐이다. 벨기에라는 번영의 그늘 속에서, 본능적인 가족애보다는 좀더 넓고 깊은 시선에 포착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그들의 영화는 나의 이익이 타인의 불이익과 맞물릴 때 벌어지는 윤리적 딜레마를 예민하게 응시한다.

그들의 영화에서 말끔한 해피엔드 같은 건 없다. 주인공이 내내 몰두했던 과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지 않고, 복잡하게 얽힌 문제는 여전히 해결이 어려워 보이며,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문제는 또다른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도 거기엔 실낱 같은 희망이 내비친다. 그건 바로 인물들이 지난한 과정 속에서 무엇인가를 배우게 됐다는 사실 자체이다.

그림 1'자전거 탄 소년'은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소년의 시련을 통해 엷은 희망을 이야기 한다.
그림 1'자전거 탄 소년'은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소년의 시련을 통해 엷은 희망을 이야기 한다.

‘자전거 탄 소년’

'자전거 탄 소년'은 이야기가 다 끝난 것 같은 지점에 불쑥 에피소드 하나를 덧붙여놓은 것처럼 여겨진다. 어린 소년 시릴은 아버지에게 버려져 치유되기 힘든 마음 상처를 입게 되고 그 때문에 나쁜 일에 연루되기도 하지만, 자신과 아무런 연고가 없음에도 헌신적으로 돌봐준 사만다의 노력으로 바르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 하지만 그에겐 여전히 남은 문제가 있다.

영화의 끝에서 시릴은 자신의 이전 행동과 관련된 어떤 일을 지독한 후일담처럼 겪은 후 자전거를 타고 길 저편으로 천천히 퇴장한다. 이때 카메라는 그가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멀리서 묵묵히 지켜보기만 한다. 시릴이 필사적으로 전화기에 매달리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절절하게 따라다니며 비추었던 도입부의 카메라와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세상 속으로 멀어지는 소년을 마침내 평온하게 놓아주는 듯한 카메라는 흡사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걱정하지 말아요. 이제 이 아이는 책임에 대한 귀한 깨달음을 얻었어요. 힘든 순간이 앞으로도 닥쳐오겠지만 그때마다 교훈을 떠올리며 힘차게 페달을 밟듯 계속 살아갈 거에요.

그림 2몸이 안 좋은 직장 동료가 해고되는 대신 보너스를 받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해고 대상이 만약 당신이라면.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냉정한 질문을 던지며 따스한 해답을 찾아간다.
그림 2몸이 안 좋은 직장 동료가 해고되는 대신 보너스를 받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해고 대상이 만약 당신이라면.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냉정한 질문을 던지며 따스한 해답을 찾아간다.

‘내일을 위한 시간’

'내일을 위한 시간'은 건강 문제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동료 직원 산드라의 해고를 묵인하면 1000유로의 보너스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의 윤리적 딜레마를 다룬다. 산드라가 주말 동안 동료들을 일일이 찾아가 자신의 복직에 힘을 실어달라고 부탁한 뒤 마침내 월요일 아침이 온다. 그런데 직원들이 산드라의 복직 여부에 대해 투표를 하고 결과를 집계하는 동안, 카메라는 엉뚱하게도 투표장 바깥 복도에 서있는 산드라만을 계속 비춘다. 이야기로 보면 투표 장면이 분명 클라이맥스일 텐데 왜 이 영화의 카메라는 핵심 '이벤트'를 긴장감 넘치게 중계하는 대신, 결과를 기다리는 산드라를 담담하게 바라보는 걸까.

그건 이 영화 원제가 '1박2일'을 뜻한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4일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 왜 원제가 '3박4일'이 아니라 '1박2일'일까. 1박2일은 산드라가 동료들을 찾아다니면서 설득을 시도했던 기간이다. 다시 말해 이 이야기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투표의 결과가 아니라 동료들끼리 나누게 된 대화와 그 과정에서의 상호 처지에 대한 고려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 투표는 재투표다. 이미 내렸던 자신의 결정이 과연 옳았는지에 대해 그런 대화의 끝에서 다시 한번 숙고하고 성찰해보는 과정이 그 기간 동안에 이뤄졌다. "생각해 봅시다"와 "다시 생각해 봅시다"는 완전히 다른 자세를 요구한다. 투표 결과에 관계없이 1박2일 간의 경험은 산드라(와 관객)에게 희망이 될 것이다.

그림 3영화 '아들' 속 도제로 맺어진 두 남자는 어느날 서로를 의심하고 갈등한 뒤 다시 인연을 이어간다.
그림 3영화 '아들' 속 도제로 맺어진 두 남자는 어느날 서로를 의심하고 갈등한 뒤 다시 인연을 이어간다.

‘아들’

'아들'은 종반부에 이르러 비밀이 드러나면서 목공직업훈련소의 사제지간인 올리비에와 프란시스 사이에 격렬한 갈등이 표출된다. 결국 홀로 남게 된 올리비에는 차에 목재를 옮겨 실으며 목재소를 떠날 채비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올리비에를 피해 달아났던 프란시스가 다가와 그를 돕기 시작한다. 그런 프란시스를 올리비에가 바라보고, 그런 올리비에를 프란시스가 쳐다본다. 둘은 다시 노동에 집중한다. 프란시스가 잡아주고 있는 목재를 둘러싼 천에 올리비에가 끈을 둘러 묶으려는 순간 영화는 조용히 마침표를 찍는다.

둘은 이제 어떻게 될까. 다시 이뤄진 협업 한번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리는 없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어쨌든 또다시 힘을 모았다. 이전에 목공 기술을 가르치면서 올리비에는 “젖은 판자로 문을 만들면 줄어들어서 틈이 생긴다”고 주의를 주었다. 이제 그들은 햇빛 아래로 젖은 판자를 꺼내놓았다. 어쩔 수 없이 틈은 좀 생기겠지만, 그 판자로 만들게 될 문을 열어젖힐 수는 있을 것이다.

이동진 영화평론가·B tv '영화당'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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