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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시인 (그림책 작가)

등록 : 2018.02.09 04:40

"난 색이 변하지 않는 카멜레온, 항상 술래지만 그러면 어때?"

[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까만 카멜레온'

등록 : 2018.02.09 04:40

'까만 카멜레온'. 책고래 제공

카멜레온이 주위 색깔에 맞추어 피부색이 바뀐다는 것은 조금 틀린 얘기가 되었다. 최신 연구 결과로는 카멜레온이 빛의 노출과 온도에 대해 물리적 심리적으로 반응하고 표현하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어쨌거나 묘하게 사랑스러운 이 파충류 동물은 심심찮게 인간 세계에서 호명된다. 변절자를 비유하는 대명사로서, 자유자재 현란하게 변신하며 현실에 대처하는 능력자의 상징으로서, 또한 문학적 시각예술적 상상의 아이디어와 소재가 되어왔다. 그림책 세상에서도 색깔에 대한 이야기, 개성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에서 알록달록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은선의 그림책 ‘까만 카멜레온’의 주인공 카멜레온은 까맣다. 여느 카멜레온과 달리 언제 어디서도 변함없이 까만 색이라는 전복적 캐릭터를 보여준다. 표지의 동글동글 빨간 열매 가지를 타고 오르는 까맣고 꼬리 기다란 주인공은 얼핏 낯익은 듯하지만, 제목이 아니면 ‘카멜레온’이라 확신하기 어렵다. 빨간 배경 속에서는 빨간 색이어야 카멜레온이니까. 과학상식을 벗어나는 자못 도발적인 그림의 표지를 열고 면지를 펼칠 때 까만 카멜레온과 나란히 인사하는 알록달록한 친구들은 주인공의 특이점을 정확히 납득하게 되는 훌륭한 전략이다.

알에서 갓 깨어난 숲 속의 카멜레온들은 나뭇가지를 타고 높이 오를 만큼 무럭무럭 자란다. 빨간 열매 가지 위에서는 온통 빨간 색이 되어 놀고, 초록 나뭇가지와 파란 새들 곁에선 초록 파란 카멜레온이 되어 논다. 매 장면에서 까만 카멜레온을 또렷이 의식해온 독자들과 달리 꽃밭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놀 때에야 어린 카멜레온들은 소리친다. “네가 또 술래구나.” 까만 카멜레온이 까만 색 그대로 도드라져서 이번에도 술래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 카멜레온들은 까만 친구에 대해 궁금해 한다. 왜 언제나 까만색인지, 시시때때 알록달록하게 변하지 않는지, 과연 어른이 되면 변하게 될 것인지를. 까만 카멜레온은 담담하다. 친구들이 어여쁘다는 것을 알고, 자기는 그런 친구들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지만, 나중에 혹시 달라질지 모른다는 섣부른 위로도 고맙지만, 마음 쓰지 않는다. 그저 달콤한 열매를 즐기고, 멋진 새들이 찾아오면 함께 노래 부르고, 꽃향기를 마음껏 누릴 뿐이다. 밤이 되어 세상이 캄캄해지고 카멜레온들 모두 까만 색이 된 채 투덜댈 때 주인공이 건네는 말에는 남다름을 탓하지 않고 삼라만상의 신비를 자족해온 이의 감흥이 담겨 있다. “올빼미는 이제 일어나 산책을 나갈 거야./ 바람은 고요한 숲의 향기를 전해 주고/ 시냇물은 가만가만 자장가를 불러 줄 거야.”

군더더기 한 점 없이 깔끔한 글도 귀하지만, 정확한 드로잉을 스텐실 기법으로 찍고 두드려 채색한 그림은 이 작은 생물들이 살아가는 자연계의 아름다움을 풍성하고도 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다. 모처럼 만나는 순한 그림책 ‘까만 카멜레온’을 춥고 고단한 하루가 끝난 시간의 아이에게, 나에게 읽어주면 숙면에 이롭겠다. 온갖 색깔이 잠든 밤, 쏟아지는 별빛을 받으며 잠드는 주인공이 읊조리는 자족의 시 ‘난 까만 카멜레온이야./ 난 내가 좋아.’를 널리 나누고 싶다.

생물학에서는 인간은 처음에 동물의 세계에서 자연의 변종으로 출현하였다고 한다. 장미 경우에는 2만여 종의 변종이 재배되고 있다. 우리가 카멜레온이라면 지금 어떤 색을 띠게 될까?

이상희 시인∙그림책 작가

/까만 카멜레온

이은선 글∙그림

책고래 발행∙40쪽∙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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