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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나이 70에 ‘미미솔’

입력
2015.10.0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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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넘게 성우인 한 인사가 대학 강연에서 사람들 말의 높낮이를 7음계로 표현했다. 그 음계로 볼 때 박근혜 대통령,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연설은 ‘미미미미’라고 했다. 미미미미는 말하는 게 아니라 읽는 것이고, 그래서 공감이고 설득력이고 호소력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을 음계로 표현해도 많은 것들이 그런 음(音)이 반복되는 미미미미일 듯싶다. 트렁크 살인을 저지른 김일곤의 가당치 않은 분노도, 교육을 위해 다 큰 아들을 해외로 입양시켜 천륜을 끊은 고위 공직자의 엇나간 부정도 그렇다. 그 가운데서도 대한민국을 헬조선, 지옥불이 치솟는 지옥불반도로 부르며 어려운 삶을 토로하는 2030세대 얘기는 요즘의 대표적인 ‘미‘ 소리다. 취업 준비생을 포함한 이들 청년 실업률이 10%를 넘었고 잠재 실업률은 23%선이다. 5년 전 가을 프랑스에서 68혁명을 되살리듯 청년들이 들고 일어났을 때 그들의 실업률이 21.2%였으니 우리 달관세대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소리와는 다른, 듣기에 좋은 음계 이야기도 있다. 노인이지만 노인이기를 거부하는 이들의 경쾌한 ‘미미솔’ 이야기다.

엊그제 만난 언론계 선배인 안병찬 선생은 주말에 개봉한 영화 ‘인턴’을 봤다고 했다. 일하는 여성, 워킹맘의 얘기가 아니라 나이 70을 넘은 나이든 퇴직자가 젊은 여사장이 있는 회사의 인턴으로 일하며 주변에 배려와 정을 나누는 벤(로버트 드니로)의 삶을 이야기 했다. 그의 나이는 벤보다 많은 78세다. 그래도 벤이 서양인으로는 드물게 직장 동료에게 방까지 내주며 시니어 인생의 노하우를 젊은이들에게 전한 것과 같은 그런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최근에 번데기 옥수수 고구마로 다이어트 해 배가 들어간 그의 몸은 무게가 9kg이나 줄어 있었다. 고된 기자 생활을 지나온 그는 영화 속 벤 이상으로 우리 사회 최고의 인턴이 될 경륜도 갖추었다. 노인이지만 노인이기를 거부하는 것을, 과거라면 노익장이라 하겠지만 맞닥뜨릴 일을 위해 건강을 챙기는 모습에서 그런 말은 더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되려 오너에게 충성 다짐을 하는 듯한 글을 쓴 흰머리의 현역 대기자에게 지조를 판 노욕이 과하다고 할 때나, 한 기자의 미국 연수기가 찬미 일색인 것을 지적하면서 ‘반미 좀 해보라’고 할 때는 시퍼런 깡을 느끼게 했다. 악착같이 버티는 오기란 뜻의 그의 별명 ‘안깡’ 그대로였다. 이런 그가 찾는 것은 힘 깨나 쓰는 자리가 아니라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통로, 여유 있고 조용한 일이나 봉사일 것이다.

이른 새벽 시외로 향하는 첫 지하철을 타보면 모든 자리가 노인석으로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일을 해야 먹을 수 있는 빈곤한 삶이 그 자리를 차지한 이들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법규상 노인인 65세에 당당히 은퇴했다가 95세에 후회의 글을 남겼던 고(故) 강석규 호서대 설립자는, 그 30년을 허송세월 보낸 것에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고 생전에 적었다. 올해 95세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도 어제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인생이 뭔지 알고 행복이 뭔지 알고 발전하는 시기가 60에서 75세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따져보면 중국의 마오쩌둥 주석과 저우언라이 총리가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베이징으로 초청해 죽의 장막을 연 것도 그들의 나이 78세와 73세 때였다. 올해 노벨상 첫 수상자들은 이들 보다 더 많은 80대의 노학자 3명이었다. 젊어서 한 연구가 말년에 평가 받은 것이지만 그들도 은퇴를 모른 채 현장을 지켰다.

평균연령이 47세이던 19세기에 사람은 늙지 않았다고 한다. 한 세기 건너 21세기인 지금 젊은 노인들의 이야기는 새로운 게 아닐 정도가 됐다. 나이 70을 넘어 미미미가 아니라 미미솔을 말하는 인턴들이 많다.

이태규 사회부장 tg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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