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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정신질환자 인권과 정신보건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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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정신질환자 인권과 정신보건법 개정

입력
2017.04.0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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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지난 주 초등학생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체포된 16세 여학생이 조현병 환자로 알려졌다. 지난해 5월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이나 서울 수락산에서 발생한 60대 여성 흉기 살해 사건 범인도 모두 조현병 환자여서 조현병 환자 범죄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조현병 환자 범죄율은 일반인과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적다. 문제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강력 범죄율이 더 높아진다는 보고가 있다. 따라서 조현병 환자의 적절한 치료는 환자 본인 회복뿐만 아니고, 사회 안전에도 도움된다.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질환은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예후가 좋다. 적절한 치료의 판단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의학적인 판단을 필요로 한다. 병의 경중에 따라 외래치료만으로 가능하기도 하다. 하지만, 병이 심각하면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 그런데 환자 자신이 병을 인정하지 않고, 치료 받을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어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신병 증상이 시작되고 치료를 시작할 때까지 기간을 ‘치료받지 않는 정신병 기간(DUP)’ 라고 하고, 이 기간이 길수록 치료 반응이 좋지 않고, 예후도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의학적 측면에서는 환자가 거부하더라도 환자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강제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이렇듯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해지는 강제입원은 환자 신체를 구속한다는 면에서 법적인 문제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환자 의사에 반해 의학적 판단으로 시행되는 치료에 대해 법적 인가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의사는 최소한 진료만(방어 진료)할 것이고,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미국 보고에 의하면, 입원기준이 엄격하면 범죄 사건과 길거리 환자가 많아진다. 강제치료를 받았던 환자가 회복된 뒤에는 자신의 강제입원 치료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보고 역시 강제입원 필요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강제입원기준을 너무 엄격히 하거나 너무 느슨하게 하지 않고, 적절한 기준을 통해 불필요한 강제입원을 줄이면서 조기 치료를 적절히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강제입원치료는 의학적 판단의 법적인 인가과정과 적절한 입원기준의 2가지 이슈가 핵심이다. 이러한 2가지 측면에서 보면, 5월 30일 시행될 정신보건법은 법 기본 정신과 너무 괴리가 크다. 첫째, 의학적 판단에 대한 법적 인가과정이 허술하고 부족하다.

외국에서는 가능하면 빨리 준사법적 권한을 가진 기구에서 강제입원의 적합성을 평가한다. 하지만 개정정신보건법에서는 준사법적 기구에서 평가하는 이런 과정을 법적 권한이 없는 전문의사 1인이 하게 되어 있다. 그나마 초기에 국공립기관에 근무하는 의사로 한정하려던 계획을 바꿔 최근에는 민간의사들을 이런 법적 인가과정에 동원하고 있다. 물론 정신보건법에는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라는 방대한 조직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 정도 회의를 통한 실효성 없는 서류 검토만을 통해 할 수 있도록 했다.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환자를 강제입원한 상태에서 가능한 이른 시간에 법적 판단을 필요로 하는데, 환자인권을 생각하면 너무 안이한 발상이다.

둘째, 강제입원기준을 너무 까다롭게 해 정작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조기에 치료하지 못하게 만드는 법이 됐다. 이를 인정이라도 하듯 최근 발표한 시행령ㆍ시행규칙에서는 입원기준을 아주 느슨하게 만들어 모법과 하위법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겉으로는 기준을 강화해 환자 인권을 보호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는 환자 인권을 보호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현재 상황과 별 다를 바 없게 돼 버렸다.

강화된 강제입원규정으로 환자 인권을 위해 진일보하였다면서 법 시행을 강행하겠다는 보건복지부 태도는 법안 곳곳 불합리한 규정과 인권을 오히려 침해할 수도 있을 가능성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문제가 있어도 일단 시행해보자는 정부 태도나 합리적인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을 단순히 집단이기주의로만 치부하는 단세포적인 생각을 버려야 할 때다.

이제는 상식적인 선과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 진정으로 환자를 위해 어떤 것이 중요한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19대 국회 마지막 임기에 신중한 검토 없이 졸속으로 통과된 개정정신보건법과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일관성 없는 시행령, 시행규칙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누더기가 돼 버린 개정정신보건법을 전면 재개정하는 것만이 또 다른 강남역 사건이나 초등학생 살해 같은 끔찍한 일들을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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