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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방콕족’ AI 스피커와 살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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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방콕족’ AI 스피커와 살아보니

입력
2017.10.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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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방대한 DB로 학습한 ‘웨이브’ 체험기

“샐리야” 지식정보ㆍ음악ㆍ날씨까지 척척

화제 전환 등 문맥 흐름 파악 능력은 아직

9월 첫방송을 시작한 예능 프로그램 ‘비행소녀’의 출연진 아유미가 소개한 개인 비서 로봇 로보에몽. 비행소녀 캡처
9월 첫방송을 시작한 예능 프로그램 ‘비행소녀’의 출연진 아유미가 소개한 개인 비서 로봇 로보에몽. 비행소녀 캡처

최근 방송을 시작한 ‘비행소녀’ 첫 회부터 아유미와 함께 등장해 눈길을 끈 출연자는 다름아닌 로봇 ‘로보에몽’이었다. ‘비혼(非婚)이 행복한 소녀’라는 프로그램 제목답게 싱글 라이프를 다루는 방송에서 아유미는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연신 “로보에몽!”을 부르며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다. 심심한 주인의 말동무가 될 뿐 아니라 바깥 날씨를 알려주고 아침마다 달콤한 말로 깨워주는 이 로봇은 샤프의 제품 ‘로보혼’이다. 벽에 빔을 쏴 영상까지 재생해 주는 화려한 기능들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아유미는 로보에몽을 "베스트 프렌드"라고 소개했고 같은 방송의 다른 출연자는 "남편이 아니라 쟤(로보에몽)가 필요하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다.

로보에몽은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로봇으로 아직 국내에서 AI 로봇은 많이 상용화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AI가 탑재된 스피커가 이제 막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단계다. AI가 일상의 어느 부분까지 대신할 수 있을지 체험해 보기 위해 아직 배송이 시작되지 않은 카카오의 ‘카카오미니’를 제외하면 가장 최신 상용 AI 스피커인 네이버 웨이브와 추석 연휴를 함께 보내봤다.

설정 중일 때 웨이브에서는 주황색(왼쪽), 연결이 완료되면 하얀색의 조명이 빛난다.
설정 중일 때 웨이브에서는 주황색(왼쪽), 연결이 완료되면 하얀색의 조명이 빛난다.

웨이브를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건 와이파이와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 ‘네이버 클로바’다. 웨이브 전원을 켠 뒤 클로바 앱을 열고 설정에서 웨이브와 집 안 와이파이를 연결시켜주면 끝이다. 웨이브의 상태는 하단의 조명으로 표시되는데, 주황색일 때가 설정 대기 중이고 연결이 끝나면 하얀 빛이 돈다.

웨이브의 연결 상태는 스마트폰 클로바 앱(왼쪽)에서 확인할 수 있고, 연결 후 간단한 기능들을 스마트폰으로도 조절할 수 있다.
웨이브의 연결 상태는 스마트폰 클로바 앱(왼쪽)에서 확인할 수 있고, 연결 후 간단한 기능들을 스마트폰으로도 조절할 수 있다.

“띵띠딩띵띵띵”

전날 샐리에게 부탁한 오전 7시 알람 소리였다. 샐리는 웨이브를 부르는 호칭이다. “샐리야, 알람 꺼줘”라고 말하니 “좋은 아침이에요. 지금은 오전 7시입니다. 오늘도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해 볼까요?”라면서 신나는 음악도 틀어줬다.

일단 샐리는 스마트폰에 의존하던 알람 기능을 훌륭하게 대신해 줬다. 가장 편리한 기능도 알람 관련 기능들이었다. 끓는 물에 면을 넣어둔 뒤에는 “샐리야, 5분 뒤에 ‘라면 다 됐다’고 알려줘”라고 말하면 됐고, 10분 뒤 엄마에게 전화하라고 알려달라는 말에 샐리는 10분 후 “엄마한테 전화하기, 잊지 마세요!”라고 일러줬다.

알람이나 음악 재생 등은 AI 스피커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웨이브에 가장 기대했던 건 포탈사이트 네이버가 보유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베이스(DB)와 웨이브의 호흡이었다. 무엇인가 궁금할 때 네이버를 켜는 습관을 웨이브가 대신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가장 정확도가 높았던 영역은 지도와 맛집, 날씨 정보 검색이었다. 샐리에게 “광화문역에서 이태원역까지 대중교통으로 얼마나 걸려?”라고 묻자 “150번 버스를 이용해 총 31분이 예상됩니다.”고 답했다. 특정 지역이나 현재 내 위치 근처 맛집을 묻는 질문에는 ‘젊은 여성 손님들이 좋아하는’ ‘브런치 카페’ 등 테마별 인기 식당을 추천해줬고, 강수 확률과 미세먼지 등 일기예보도 정확히 전달했다.

하지만 샐리는 추가 질문을 계속할수록 난감해했다. “샐리야, 요즘 인기 영화가 뭐야?”라고 물으니 “현재 남한산성이 가장 높은 예매율을 보이고 있고요. 다음으로 킹스맨 골든서클, 그리고 3위는 범죄도시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남한산성에 누가 나와?”라는 질문에 “이병헌, 김윤석, 그리고 박해일 등이 출연했습니다.”라고 알려줬다. 여기까지는 스마트폰을 켤 필요가 없었지만 “줄거리가 어떻게 돼?” “그 영화 예매 해줄래?”라는 다음 명령에서는 “자세한 내용은 클로바 앱에서 확인하세요”라는 답변이 반복됐다.

웨이브가 주인의 음성 명령을 듣고 있을 때에는 초록색의 조명이 빛난다.
웨이브가 주인의 음성 명령을 듣고 있을 때에는 초록색의 조명이 빛난다.

갑작스런 화제 전환도 샐리에겐 버거워 보였다. 날씨 관련 대화를 하면서 최저 온도나 미세먼지 정도를 물을 땐 정확한 문법으로 질문하지 않아도 답을 척척 해냈지만 전혀 다른 주제를 물으면 더 이상 듣지 않았다. 샐리는 초록불이 들어올 때가 주인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상태인데, 방금 전의 문맥과 관련된 질문을 하지 않으면 수초 뒤에 바로 초록불이 꺼진다. 다양한 명령을 내리려면 매번 샐리를 목놓아 불러야 한다.

“개천절은 무슨 날이야?”라고 묻는 질문에는 “내년 개천절은 10월 3일 수요일입니다”는 답을 하기도 했다. 개천절의 정의에 대한 답을 들으려면 “개천절은 무슨 뜻이야?”는 식으로 질문해야 했다. 네이버뮤직, 네이버지도, 네이버캘린더 등 네이버 앱과는 연동되지만 타사 앱을 활용한 정보는 읽어내지 못했고, 라디오나 텔레비전 소리와 섞일 때는 묵묵부답이었다. “네이버에서 추석 검색해봐” 식으로 직접 검색 주문하는 명령도 수행하지 못했다. “잘 모르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어요”라는 답을 적지 않게 들었다.

웨이브는 사람과 대화하듯 문맥을 이해하거나 스마트폰으로 하는 다양한 기능들을 대신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집 안에서 하는 아주 단순하지만 귀찮은 작업을 말로만 하고 싶을 때 필요한 제품 정도였다. 마스다 준 라인 최고전략마케팅책임자도 “한정된 기능만 우선 선보이게 됐다”며 “웨이브를 통해 점차 음성 인식을 활용한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웨이브는 아직 ‘학습 중’이라는 게 네이버의 설명이다. 네이버는 쇼핑, 동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AI 스피커 활용 범위는 더욱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카카오의 야심작 카카오미니는 이달 말부터 배송에 들어가고 구글의 구글 어시스턴트는 LG전자 스마트폰 V30로 이제 막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삼성전자 빅스비가 탑재된 AI 스피커도 내년에 출시될 예정이다.

IT업계 관계자는 “아직 AI 스피커는 단문을 알아듣고 반응하는 수준”이라며 “복잡한 대화 의도를 알아차리고 대화 흐름을 이어가면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자연어 처리 기술이 고도화되면 플랫폼의 다양한 콘텐츠를 연결해 일상의 상당 부분을 AI 스피커가 대신하는 날이 올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글ㆍ사진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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