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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아베와 일본의 미래

입력
2015.11.0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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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일중 및 한일 정상회담 등에 참석하기 위해 1일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방한, 전용기에서 내려 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일중 및 한일 정상회담 등에 참석하기 위해 1일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방한, 전용기에서 내려 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서울에서 박근혜 대통령, 리커창 중국 총리와 마주 앉았다. 거기서 그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심각하게 과소평가하는 나라의 지도자처럼 행동했다. 2012년 이후 처음 열린 이번 동북아 3국 정상회의 내내 그는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30년 전 많은 사람들이 일본을 정반대로 평가하는 실수를 했다. 다수의 미국인은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이 미국을 넘어서지 않을까 걱정했다. 일본의 제조업은 국제 기준이 됐고, 핵무기를 갖춘 초강대국 일본과 최후의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하는 책도 있었다. 일본의 놀라운 전후 경제성장 때문에 나온 추론이었다. ‘잃어버린 20년’을 보낸 오늘날 일본은 우리에게 선형 예측(현 추세가 직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의 위험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 위험은 우리에게도 있다. 중국의 빠른 성장과 공산당 지도부의 단호한 주장에 대응하느라 지금 일본을 부차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통념으로 자리 잡았다. 이 역시 잘못된 판단이다.

경제성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눈에 띄는 에너지원을 보유하고 있다. 안정적인 사회에 높은 생활수준을 갖춘 70년 동안 평화로웠던 민주주의가 그것이다.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중국의 5배다. 베이징 거주자들은 도쿄의 공기 질과 제품 안전 기준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일본 경제는 여전히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고 산업은 고도로 정교하다.

중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군인의 수도 더 많지만 일본 군대는 몇몇 분야에서 중국보다 더 좋은 장비를(그리고 굉장히 빠르게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을 분명히) 갖추고 있다. 게다가 일본의 문화(전통문화와 대중문화 모두), 해외개발 원조 그리고 국제기구 지원은 소프트파워의 인상적인 원천이다.

일본이 심각한 인구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은 맞다. 일본 인구는 1억 2,700만 명에서 2050년에 1억 명 이하로 감소할 전망이다. 현재 출산율은 1.4명이다(인구대체율인 2.1명보다 훨씬 낮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 데 저항감이 크다.

3년여 전 총리가 됐을 때 아베는 일류 국가로서 일본의 지위를 회복하겠다고 맹세했다. 이를 위해 ‘아베노믹스’라는 이름의 경기 부양 종합대책을 시행하고, 국방 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헌법을 재해석했다. 아베노믹스는 재빨리 시행됐지만 의회는 안보법을 최근에야 제정했다. 1년 이상 노력을 한 뒤였다. 아베의 자민당 의원들은 일본 국방 정책의 근본적인 개혁을 바랐을 것이다. 군대에 대한 헌법상의 제약을 없애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여론과 연립 여당 공명당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지난 세기에 일본의 침략 때문에 막대한 고통을 겪었던 중국과 한국은 서울 정상회의에서 소리 높여 항의했다. 한국과 중국 모두 아베를 못미더워 한다. 아베는 국수주의적 발언을 내뱉고 현 정부 초기 논란의 소지가 많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긴장을 악화시켰다. 실제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박근혜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아베와 회담을 거부해왔다. 박 대통령은 이번 서울 정상회담에서 처음 아베 총리를 따로 만났다.

반면 아베는 전임 총리들 재임 기간 동안 일본과 미국의 불편한 관계를 바로잡아왔다. 그리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아베의 국빈 방문 동안 양국 동맹의 이점을 되풀이해 말했다. 신미일방위협력지침 아래 미국과 일본의 군대는 더 효율적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게 됐다. 미일 동맹은 수십 년 만에 최고의 상태가 됐다.

이처럼 아베는 외교와 국방 정책 분야에선 상대적으로 성공을 했다. 그러나 경제 분야에서는 성패가 엇갈리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실직률은 낮지만 경제 성장은 멈춰 있다. 최근 내가 도쿄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전문가들 중 일본 경제가 눈에 띄게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통화ㆍ재정정책 완화라는 아베노믹스의 첫 번째 두 요소들(또는 ‘화살들’)은 수요 회복을 도왔다. 그러나 구조개혁의 세 번째 화살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 아베는 전력시장 민영화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 세제 개혁 착수를 말해왔다. 게다가 최근 체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이용해 비효율적인 농업 분야 개혁을 기대한다.

한 가지 중요한 제약은 노동력 공급이다. 아베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비자 조건 완화를 제안해왔지만, 일본의 단일 문화 전통과 섬나라 성향을 고려했을 때 경제적으로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낼 만한 수준의 이민은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이민 규제를 완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본은 충분히 쓰이지 않고 있는 여성 인력을 활용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 노력 역시 어마어마한 문화적 장벽을 극복해야 한다. 아베는 (유엔 연설을 비롯해)여성들을 위한 기회를 자주 이야기해 왔고 일본 기업들이 임원의 30%를 여성으로 운영하도록 촉구했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 여성들은 임원의 10% 미만이고, 최고 중역의 1% 정도밖에 차지하지 못한다. 일본은 세계경제포럼 성불평등지수에서 하위권이다. 가족 간병 휴직을 장려하고 일하는 엄마들을 위해 더 많은 어린이집을 마련하는 정부 정책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사고방식은 그다지 빠르게 바뀌지 않고 있다.

이런 문제를 처리하지 못해 노동력에 제약이 있다는 건 일본이 경제적으로 최고의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할 것이란 말이 된다. 국내외적인 문제에서도 그렇다. 일본은 성공했고 안락하며 세계에 기여할 게 많은 사회다. 문제는 내부만 쳐다 보고 전통적인 통념이 옳다고 느낄 만큼 일본이 너무 안락하다는 점이다.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ㆍ국제정치학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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