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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학
논설위원

등록 : 2017.05.19 16:38
수정 : 2017.05.19 17:01

[메아리] ‘좌절과 실패의 기억’ 지우려면

등록 : 2017.05.19 16:38
수정 : 2017.05.19 17:01

기득권층 저항ㆍ진보 비판은 상수

욕심 버리고 핵심 과제 집중해야

국민 삶 바꿀 정책이 진짜 승부처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을 나서며 `나라를 나라답게 든든한 우리 대통령 문재인' 글자가 쓰인 액자를 받으며 어린아이의 뽀뽀를 받고 있다. 고영권기자

2006년 기획취재팀장 시절, 외부 전문가에게서 통계를 활용한 탐사보도 기법을 배웠다. 그는 5년 전 신문 사설(社說)에 나온 단어와 지금 단어를 컴퓨터활용취재(CAR) 기법으로 비교해 보라고 제안했다.

참여정부 들어 대통령을 다룬 사설 표현이 도를 넘었다는 것이다. 사설은 개인 의견인 칼럼과 달리 신문사의 주장인 만큼 단어 선택에 신중을 기하게 된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관련 사설에선 품격을 지키려는 엄정함을 보기 어려웠다.

기득권 세력은 흙수저 출신 비주류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최근 “내 입으로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불러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토로했듯이.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통령을 끌어내리려 했다. 언론은 효과적인 무기였다. 취임 첫날부터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대통령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참여정부 5년 내내 언론과의 전쟁이었다. 과거엔 쓰지 않던 섬뜩하고 부정적인 단어, 극단적인 표현을 대거 동원했다. 노 대통령을 거의 패대기치는 수준이었다.

한국은 아직껏 보수의 나라다. 보수는 집단적ㆍ사적 이익에 목을 맨다. 가진 게 많으니 변화와 개혁이라면 거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비록 박근혜 정부의 참담한 실패로 재집권에 실패했으나 보수 카르텔을 얕잡아봤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그간 누려온 기득권을 완강히 지키려 할 것이다. 적폐 청산에 대한 거센 저항을 각오해야 한다는 말이다.

진보 진영은 문재인 정부의 우군일까. 진보의 스펙트럼은 무척 넓다. 정치적 민주화에 만족하는 자유주의자부터 사회적 약자의 삶을 바꾸지 못하는 진보는 무의미하다는 세력까지. 일치된 지지를 기대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진보는 체질상 ‘어용’과도 안 어울린다. 자기만 정의롭다고 군자연하는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가 많다. 이들은 도덕적 우월의식에 빠져 진보 아닌 지성의 존재는 믿지도 않는다. 말은 또 오죽 많은가. 북핵과 사드 해법, 재벌 및 검찰개혁이 삐걱거리는 순간, 금세 비판 세력으로 돌변할 것이다(대선 TV토론 때 문재인 후보의 동성애 발언을 거칠게 공격하던 진보를 보라).

기득권 언론은 변신의 귀재다. 정권 속성에 따라 잣대를 달리 한다. 내 편이면 동지적 유대감을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세력엔 한없이 적대적이다. 진보 언론은 저널리즘 원칙에 비교적 충실하다. 권력에 대한 비판을 언론의 존재 이유라 믿는다. 가치를 공유하는 정권이라고 해서 권력 감시의 책무를 등한시하지 않는다. 노무현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신랄히 비판했듯, 문재인 정부가 잘못하면 보수 언론보다 더 매섭게 질책할 것이다.

출발은 좋다. 그간 인간의 얼굴을 한 권력에 얼마나 목 말랐던지, 문 대통령 취임 10일을 지켜보는 국민의 환호와 눈물이 뜨겁다. 보수정당 의원조차 “무섭도록 잘하는 것 같다”고 평가할 정도다. 하지만 탈권위 레토릭의 효과는 한계가 있다. 결국 진짜 승부는 국민의 삶을 변화시키는 정책에서 판가름 난다.

문재인 정부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약속했다. 힘겨운 과제다. 작가 유시민의 지적처럼 청와대만 벗어나면 암초가 널린 게 현실이다. 진영논리가 지배하는 정치 환경에서 야권 협조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국정과제 추진 과정에서 사사건건 발목을 잡을 것이다. 영혼이 없다지만 관료 조직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관료들을 긴장감 없이 대했던 참여정부가 이들에게 포섭당해 불평등을 키우지 않았던가.

노 대통령은 임기 중반 이후 급속히 레임덕에 빠졌다.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언론관계법 등 급진적 개혁 과제를 동시에 추진하다 야당과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부딪친 것이다. 치밀한 준비와 전략 없이 내지른 개혁은 반동을 부른다. 절대 조급해선 안 된다. 임기 5년은 금세 지나간다. 욕심 부리지 말고 몇 가지 핵심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과제와 거센 저항이 예상되는 과제를 나눠서 접근하면 추진 동력을 얻기가 한층 쉬울 것이다. 국민의 삶을 바꿔야만 노무현의 ‘좌절과 실패의 기억’을 지울 수 있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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