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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전시장의 동물 설명이 재미 없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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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전시장의 동물 설명이 재미 없다고요?

입력
2017.06.0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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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해외 동물원에 가면 전시장 앞에 동물보다 개체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하는 글들이 눈에 띈다. 가령 호랑이라면 이름과 습성, 성격, 현재 호랑이들의 멸종위기의 상태에 대한 얘기다. 기린이라면 기린의 성장 과정뿐 아니라 기린의 보존 등을 지원하는 기업의 광고까지도 버젓이 내건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다수가 동물명, 학명, 사는 곳, 먹이 같은 재미없는 백과사전식 설명판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의 관람객들은 설명판을 읽지 않고 지나치기 일쑤다. 서울동물원에서는 ‘사육사노트’라고 해서 사육사들이 자기 동물을 직접 그림으로 그려 설명하는 신선한 칠판 설명판이 등장하기도 했다.

좀 더 친밀한 설명판에 대해 늘 아쉬웠던 필자가 간단한 설명판을 직접 구상해봤다.

하마 물은 왜 맨날 더러워요?

하마는 물 속에 배변을 하고 꼬리로 배설물을 확산시키는 행동을 한다.
하마는 물 속에 배변을 하고 꼬리로 배설물을 확산시키는 행동을 한다.

많이 놀라셨군요. 똥물 속에 하마가 사는 것 같아서요. 늘 민원으로 곤욕을 치르는 부분이긴 한 데 우리도 어쩔 수 없어요, 바로 하마의 생리현상이기 때문이지요. 생리라면 모든 게 용서되긴 하잖아요. 오해와 달리 하마사는 거의 매일 물을 갈아주다시피 해요. 수돗물 값도 제일 많이 나가는 곳이구요.

그런데 깨끗한 물을 받아놓고 하마를 부르면 녀석이 어슬렁 어슬렁 나와서 물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똥을 내갈기기 시작해요.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꼬리질을 해서 그 똥을 순식간에 사방으로 확산 시켜버리지요. 물은 물감처럼 초록색으로 금세 물들고 우린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어요.

그 다음에 녀석은 느긋하게 그 물에 잠수를 감행하지요. 우리가 보기엔 정말 역겨운 바로 그 자기 똥물에 퐁당 말이에요. 이런 녀석의 행동은 자기 똥이라도 절대 사랑하지 않는 정상적인 사람은 결코 이해가 가지 않지요. 뭐 학자들은 하마가 먹는 물 속 수초에 영양분을 주는 작업이라고도 하고, 자기 영토임을 알리는 숭고한(?) 목적도 있다고들 해요. 그럼 하마는 자연의 농부일까요? 글쎄요. 가끔은 나도 더러운 다락방에 들어가 푹 쉬고픈 게 바로 하마의 마음일까요?

기린이 왜 자꾸 울타리를 빨아요?

아! 그게 궁금하셨군요. 기린은 허우대가 크고 행동도 참 우아한데 깨는 약점을 한 가지 가지고 있는 게, 뭐든 닥치는 대로 그 긴 혀(40㎝)로 빨아댄다는 거지요. 아프리카 사바나에서도 주위를 어슬렁거리다가 사자 무리나 하이에나 떼가 잘 발라먹은 커다란 뼈 조각이라도 발견하면 그걸 어렵게 다리 벌리고 입으로 주워서 껌처럼 맛있게 쪽쪽 빨고 다녀요. 동물원에선 이렇게 맛있는 뼈가 없으니 쇠 울타리도 빨고 기둥도 빨고 문도 빨고 심지어 한발 짝 넘어 심어놓은 가로수 가지도 빨고 해서 가로수 중간부분이 앙상하게 남아있기도 해요. 한 때 새 페인트를 발랐다가 그것까지 빨아대는 바람에 납중독에 걸릴까 격리시킨 적도 있어요. 왜냐고 물어보시니 굳이 답하자면 혀 운동, 목 운동, 몸에 부족한 칼슘 등 미네랄보충 정도라고 할까요. 그런데 필요 이상으로 빨아대는 건 이 모가지가 길어서 진정 슬픈 짐승이 무언가 늘 허기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늑대는 왜 울지 않아요?

동물원의 늑대도 야생의 습성이 남아 하울링을 할 때가 있다.
동물원의 늑대도 야생의 습성이 남아 하울링을 할 때가 있다.

그렇군요! 늑대는 원래 수시로 "아우우~" 하고 집단으로 하울링(howling)하는 게 특징인데 동물원 늑대는 잘 울지 않는군요. 사실은 늑대한테 물어봐야 제일 잘 알겠지만 가만히 지켜보면 조건이 잘 안 맞아서 그래요. 솔직히 표현하면 동물원에서 울 일이 없기 때문이에요.

늑대가 우는 것은 집단의 유대와 다른 집단에 자기 집단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표현인데요.동물원에서는 그들과 맞설 다른 집단도 없을뿐더러 자신의 우리에도 겨우 한 마리나 두 마리 만 있을 뿐이라 우는 것은 필요 없는 낭비, 즉 헛울음이 되는 거지요.

울음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늑대들의 언어는 집단의 언어예요. 그리고 계급이나 사회생활이 매우 발달돼 있답니다. 비교적 지구상에 늦게 출현한 인간은 늑대로부터 사회성을 배웠다는 얘기도 있어요. 원시부족들이 모닥불 주위를 돌면서 고함치며 추는 춤들도 결국 늑대의 하울링을 모방한 거지요.

비록 동물원 늑대들이 심하게 울지는 않지만 야생의 습관이 여전히 남아 해질녘에 “아우우~”하고 긴 선창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늑대, 개, 코요테 같은 비슷한 무리들이 같이 합창을 한답니다. 꼭 한번 들어보세요!

타조가 이상한 춤을 춰요?

수컷 타조의 춤은 암컷을 유혹하고 힘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이다.
수컷 타조의 춤은 암컷을 유혹하고 힘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이다.

수컷 타조의 춤을 보셨군요. 어때요? 치마를 펄럭이며 추는 춤 같지 않아요? 털 색깔이 검은색과 흰색뿐이라 좀 아쉽긴 하지요. 사막 주변에 사는 동물인 만큼 타조도 그 사막의 단조로운 무늬에서 벗어날 수가 없지요.

사막에 사는 녀석들은 대부분 모래와 비슷한 색이거나 하얀색 계통의 매우 단순한 색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도 타조는 엄연히 새인지라 진한 검은색을 하나 더 가지고 있어요.

녀석이 추는 춤은 모든 수컷들의 공통 목적인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자기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요. 타조는 춤 잘 추는 수컷을 택하는 것 같아요. 수컷들 세계에서 춤을 열심히 잘 추면 힘센 놈으로 통하거든요. 마치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비보이’들 춤 대결하고 비슷한 거랍니다. 춤 실력에서 진 녀석들은 암컷의 사랑을 받을 자격조차 없는 거지요. 그러니 사람 세계의 사랑은 좀 더 민주적이라고 봐야 할까요? 동물 세계에선 약한 놈은 국물도 없으니 말이에요.

타조가 춤추는 방법은 일단 다리를 굽히고 앉는다, 고개를 쳐든다, 날개를 쫙 편다, 그리고 머리를 흔드는 ‘헤드뱅’과 동시에 날개를 퍼덕이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참 쉽지요? 몸치도 따라 해볼만해요.

그렇게 노력해서 얻은 암컷이니만큼 수컷 타조의 사랑은 지고지순합니다. 암컷이 알을 낳아 놓으면 수컷들은 주로 밤새 그 알을 품습니다. 암컷은 낮에만 잠깐만 거들어요. 새끼들의 양육도 함께 책임지지요. 이쯤 되면 가히 이상적인 남편의 표상이 아닐까요?

사자는 왜 하루 종일 자요?

들켜버렸네요. 맞아요! 녀석들은 하루 종일 참 잘 잡니다. 하루에 거의 20시간 이상을 잠으로 보내지요. 게으름은 수컷이 훨씬 더 심해요. 암컷들은 누가 오면 기척이라도 하는데 이 수컷들은 파리가 와서 코를 간지럽혀도 요지부동이거든요.

지가 무슨 힘든 일을 한다고, 사냥도 거의 암컷들이 하는데 말이지요. 식구를 거느리는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일까요. 사자의 가족을 보통 ‘프라이드’(pride)라고 부르는데요 보통 10~20마리 정도를 한 수컷이 거느립니다. 싸움에 진 수컷은 식구들을 내어 놓아야 하고 간혹 다른 수컷이 낳은 새끼들에 대한 살육이 벌어지기도 해요. 암컷들이 잘 방어한다면 비극은 막을 수 있지만요. 이럴 땐 무작정 덤비지 말고 체제에 순응한 척 해야 해요. 아부나 애교도 필요하구요.

휴! 어쩌면 사람들 사회를 보는 것 같네요. 육식동물들은 사자뿐 아니라 호랑이 표범도 대개 게을러요. 우리가 낮에 보기에 그런 거지만요. 녀석들이 활동하는 시간은 해가 넘어가는 석양 무렵이거나 달이 초원을 환히 비출 때예요. 워낙 야간 시력이 좋아서 약간의 빛만 있어도 그걸 반사해서 좋은 영상을 얻어낸답니다. 그리고 이 사냥에는 많은 인내와 순간적인 폭발력이 필요해요. 이 순간적인 파워는 잠재된 힘에서 나오고 바로 이 힘을 비축하기 위해 그렇게 낮잠을 열심히 자는 거지요. 누가 감히 깊이 잠든 사자를 건드리겠어요? 아 그런데 눈치 없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곤충이 있네요. 바로 모기입니다.

글∙사진=최종욱 수의사 (광주 우치동물원 진료팀장, ‘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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