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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지는데… 집엔 언제 갈 수 있나요” 움츠린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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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지는데… 집엔 언제 갈 수 있나요” 움츠린 주말

입력
2017.11.19 17:07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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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3동… 여기저기서 “콜록”

감기 등 전염병 위험도 커져

사생활 보호 위해 칸막이 설치

이재민들 “임시 거주지 필요”

LH “아파트 160호 제공하겠다”

흥해읍 상권 위축… 상인들 울상

19일 오전 경북 포항시 흥해체육관에서 지진 피해 이재민이 대피소를 옮기기 위해 체육관을 떠나고 있다. 포항=연합뉴스
19일 오전 경북 포항시 흥해체육관에서 지진 피해 이재민이 대피소를 옮기기 위해 체육관을 떠나고 있다. 포항=연합뉴스

“날은 추워지는데,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러야 할지 몰라 속상해요.”

19일 경북 포항시 흥해실내체육관. 김모(9)군은 고사리손으로 모포와 옷가지 등 이삿짐을 챙기느라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따뜻한 집으로 가는 길이면 좋았을 텐데, 체육관에 칸막이를 설치하는 동안만 흥해남산초등학교 강당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일 뿐이란 얘기에 실망만 커졌다.

김군이 온기 없는 체육관 바닥서 지낸 것도 어느덧 닷새째. 여느 주말이었다면 친구들과 학교운동장, PC방을 다니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낼 시간이지만, 읽었던 책을 또 읽거나 부모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며 오늘도 쳇바퀴 생활을 하고 있다. “집에서 TV도 보고 싶고,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하고 싶다”는 소년의 바람은 언제 이뤄질 지 기약 없다. 그가 살던 다세대주택은 전기와 난방이 끊기고, 온갖 집기가 널브러지게 만든 규모 5.4 지진이 있던 그날(15일) 모습 그대로다.

갈수록 추워지는 날씨와 여진으로 쌓여가는 공포감, 여기에 사생활 보호가 전혀 되지 않는 대피소 환경에 이재민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특히 이날 오전 전국 대부분 지역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가운데 대피소가 설치된 포항 북구도 영하 3도를 기록하는 등 추위가 본격화해 감기 등 각종 전염병 위험도 커지고 있는 상태다. 백모(76) 할아버지는 “면역력 약한 노인들 상당수가 감기에 걸렸다. 여기저기서 콜록거려 걱정”이라고 했다.

더는 견디기 어렵단 이재민들 요구에 포항시는 이날부터 가장 많은 인원(800여명)을 수용 중인 흥해체육관에 칸막이 설치 작업을 시작했다. 일정공간을 천으로 가려 이재민 사생활을 조금이나마 보장하겠단 취지. 시 관계자는 이르면 20일 ‘칸막이 대피소’가 완성돼 21일부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대로 씻고 싶다”는 요구도 반영해 인근 목욕탕과 협약을 맺고, 1인당 일주일에 두 번씩은 샤워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목욕티켓’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재민들은 그러나 대피소는 그저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하루빨리 임시거주지 마련을 서둘러 달라고 호소한다. 18일부터 ‘칸막이 대피소’가 설치됐던 기쁨의교회는 19일 오전 발생한 네 차례 여진으로 곳곳에 균열이 생겼다. 교회 측은 여러 건설회사로부터 안전하다는 진단을 받아 걱정 없단 입장이지만, 이곳에 배정된 이상엽(49)씨는 “집단 수용된 이곳에서 사고가 나면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걱정으로 밤을 지샜다”고 했다.

이날 오전 기쁨의교회를 찾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이재민 임시거주지로 쓸 아파트 160호를 내주기로 했다”며 “날씨가 하루가 다르게 추워지고 있는 만큼 임시거처 확보에 먼저 힘을 쏟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일부 이재민은 “(임시거주지) 이주 순서에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공정한 기준을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이재민들이 대피소 생활로 지쳐가는 사이 이들 상당수가 살던 홍해읍 상권은 침체 일로다. 이곳 상인들은 지진 이후 뚝 떨어진 매상에도 묵묵히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지진피해가 가장 큰 곳으로 알려진 흥해읍 대성아파트 입구에 위치한 빵집 주인 권옥자(59)씨는 “상인들마저 문을 닫으면 동네 활기가 뚝 떨어질 거란 생각에 문을 열었다”고 했다. 실제로 지진으로 도시가스 공급이 끊겨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운 주민들이 늦은 밤까지 문을 두드리기도 한단다. 그는 “사정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오면 빵 값을 받지 않는다”며 “주민들이 힘을 내 하루빨리 일상을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포항=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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