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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앙골라 용병 처형(6.28)

입력
2018.06.28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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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한 언론이 전한 앙골라용병 재판 뉴스.
영국의 한 언론이 전한 앙골라용병 재판 뉴스.

아프리카 남서부 신생 독립국 앙골라 인민공화국의 인민혁명재판소가 1976년 6월 28일 영국과 미국 출신 내전 용병 4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들은 7월 10일 총살됐다.

포르투갈 식민지 앙골라의 독립운동은 범아프리카주의에 고무되면서 2차대전 이후 본격화했다. 소련과 쿠바의 군사ㆍ경제 지원을 받은 앙골라인민해방운동(MPLA)과 영국과 미국 등 서방이 뒤를 받친 앙골라민족해방전선(FNLA), 앙골라완전독립민족동맹(UNITA)이 주축이었다. 74년 포르투갈 독재정권이 붕괴되고 앙골라의 독립이 초읽기에 접어들자 좌우파 무장 독립운동 세력은 적으로 돌아섰다. 앙골라는 매장량 세계 4위의 다이아몬드 산지이자 신생 산유국이었다. 내전은 냉전의 대리전으로 격화했다.

엎치락뒤치락하던 내전은 76년 2월 MPLA의 승리로 잠정적으로 끝이 났고, 아프리카통일기구(OAU)는 MPLA의 앙골라인민공화국을 유일 정부로 승인했다. 수도 루안다(Luanda)에서 열린 혁명재판은 내전의 사법적 종식을 국제사회에 통고하는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6월 11~16일 열린 용병 재판에는 유죄 판결을 받은 13명이 회부됐다. 9명이 영국인, 3명이 미국인, 1명이 아일랜드 출신이었다. 재판부는 그 중 9명에게 16~30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25세의 키프로스 출신 영국인 코스타스 게오르규(Costas Georgiou, 1951~1976)는 사형을 선고받은 4명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북아일랜드 주둔 공수부대 출신으로 72년 영국에서 무장강도 혐의로 징역형을 살았고, 출소 후 의료봉사단 일원으로 아프리카에 갔다가 용병이 됐는데, 동료들 사이에서도 ‘살인광’이라 불렸다고 한다. 징역을 살던 나머지 9명은 미영 외교당국의 협상으로 각각 82, 84년 풀려났다.

냉전기 서방의 지원과 자국 내 일부 자원을 확보한 우파 반군의 저항은 이후로도 이어졌다. 소련 와해 뒤인 97년 양측이 평화협정을 맺어 유엔 감독하에 거국화해정부를 구성하고 유엔 평화유지군이 파병됐다. 하지만 잔존 반군의 무장 저항이 협정을 통해 공식적으로 끝난 것은 2002년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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