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성적은 젊은 시절의 자랑거리에 불과
고시 합격이 공직자 선택 기준 돼선 안돼
6ㆍ4 지방선거가 끝났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 있을 때면 선거 결과가 이미 나와서 후보와 그 지지자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는 세월호 침몰 사고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실상을 유권자가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가장 큰 변수였다. 그러나 이 돌발 참사가 없었더라면 이번에도 지역과 이념이 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가 집요한 색깔론으로 박원순 후보를 공격한 것을 보면 이 시대착오적 사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선거는, 그 결과에 관계 없이, 지역과 이념에 더해 새로운 퇴행적 변수의 등장을 알렸다는 점에서도 의미심장했다. 그 변수는 다름이 아니라 후보의 시험 성적이다. 한국의 많은 정치인이 이른바 명문대 출신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차원이 다른 시험의 달인이 출마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고승덕 후보는 선거 닷새 전 딸이 “아버지는 교육감 자격이 없다”는 글을 올리기 전까지만 해도 문용린 후보와 조희연 후보를 제법 앞서고 있었다. 그는 특히 20대 젊은이들에게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었다.
당시의 높은 지지율이 매우 의아했는데 그것은 그에게서 다른 후보를 압도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교육 현장 경험이 있어야만 교육감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교육 현장 활동 경험이 없고 두드러진 교육 철학을 내보인 적도 없다. 선거를 앞두고 받아본 공약에도 눈길 가는 것이 없었다. 도리어 3년 전 특강에서 “국영수를 공부하는 딱 한가지 이유는 대학교에 가기 위함”이라며 대입만이 능사라고 한 발언에서 그의 솔직한 교육 철학을 읽을 수 있었다.
결국 그에게서 두드러진 것은 젊었을 때 시험을 잘 보았다는 사실이다. 이미 널리 알려졌듯 그는 서울대 재학 시절 최연소로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행정고시에서는 수석, 외무고시에서는 차석을 했다. 시험에 관한 한 그는 대한민국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성적을 냈다. 그래서인지 고승덕을 소개한 글에는 늘 고시 3관왕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그는 공부방법에 관한 책을 썼고 TV에서 공부 잘하는 법을 이야기했다. 인터넷에는 고승덕의 공부 10계명이니 17시간 공부법이니 하는 글이 떠있다. 어렵다는 시험에 합격한 20대 초반의 성과가 그에게는 평생 따라다녔다.
그러나 곰곰 생각하면 우리가 고시 3관왕에 환호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중요한 것은 사법시험 합격이 아니라 사회정의를 위해,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약자의 인권 옹호를 위해 판사로, 검사로, 변호사로 어떻게 활동했느냐는 것이다. 외무고시 합격은 한국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외교관이 됐을 때 의미가 있고, 행정고시 수석 합격은 청렴하고 유능한 관료가 됐을 때 빛을 발한다. 그런 점에서 어렵다는 시험에 합격한 것은 젊은 시절 우쭐할 자랑은 될지 몰라도 지도자의 자격과 능력을 직접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시험 잘 본 사람이 교육감이 된다고 해서 내가, 내 자식이 시험을 잘 보는 것도 아니다. 시험은 결국 상대 평가이기 때문에, 시험을 잘 보든 못 보든 경쟁은 마찬가지다.
선거 결과가 다 나온 마당에 고승덕 후보를 개인적으로 질책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선거 과정에서 개인사가 드러나 마음 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시 3관왕의 출마로 학벌만능주의와 시험만능주의가 더더욱 위세를 부리지 않을지 걱정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중반 몇 번의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그것으로 혜택을 누리는 시험의 달인들이 이제 젊은 시절의 시험 성적을 무기 삼아 정치와 교육까지 맡겠다고 나서는 것은 막고 싶다.
하지만 한국인은 교육 문제에 이중적이다. 학벌을 비판하면서도 부러워한다. 따라서 언제 또다시 고시 3관왕에 환호할지 모른다. 지역과 색깔문제로 많은 사람에게 이미 여러 번 좌절을 안긴 한국의 선거가 그것들로만은 모자라 후보의 시험 성적에서까지 영향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박광희 문화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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