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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알렉산더, 박근혜, 김정은

입력
2014.11.17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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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정상회의서 큰 성과 거둔 박 대통령

남북관계 매듭 풀어야 주도권 쥘 수 있어

김정은 제1위원장도 함께 결단 내려야

소아시아 지역의 고대 왕국 프리기아 수도 고르디움에는 고르디우스 전차가 있었다. 고르디우스는 프리기아의 첫 왕인 미다스(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했다는 전설의 왕)의 아버지다. 그는 아들과 함께 탔던 전차를 신에 바쳤고 신전 기둥에 복잡한 매듭의 줄로 묶어 두었는데,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를 정복하고 왕이 된다는 말이 전해져 왔다고 한다.

마침 아시아 정복에 나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을 지나다 칼을 빼서 단번에 매듭을 잘라버렸다. 발상을 달리해 대담한 방법으로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때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언급하게 된 유래다. 중국에도 비슷한 고사가 있다. 남북조시대 북제(北濟)의 왕에게 아들이 여럿 있었다. 후계자를 고르기 위해 복잡하게 얽힌 삼베실 뭉치를 풀어보라는 문제를 내자 한 아들이 날카로운 칼로 싹둑 잘라버렸다. 쾌도난마(快刀亂麻)의 고사다.

박근혜 대통령이 6박9일에 걸친 연쇄 다자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17일 귀국했다. 한ㆍ중 FTA, 한ㆍ뉴질랜드 FTA 체결은 별도로 친다 해도 귀국 보따리에 든 성과가 만만치 않다. G20정상선언문에 규제개혁과 창조경제 등 박근혜 표 경제정책을 반영했고, 선진국과 개도국간 가교역할을 하는 중견국으로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다. 미ㆍ중 정상들로부터는 확고한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하고, 중단된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 제의 등을 통해 동북아 외교에서 고립 우려를 어느 정도 떨친 것도 성과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여장을 풀자마자 마주해야 하는 매듭들이 사방에 널려있다. 난마처럼 얽힌 국내 현안들도 현안이지만 북한문제를 포함한 대외관계의 매듭을 현명하게 풀어가야 하는 과제가 시급하다. 이번 연쇄 다자정상회의 기간 중국의 부상에 의한 미중 패권경쟁이 외교안보와 경제 분야 등 전방위적으로 한층 치열해지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무엇보다도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국가적 역량이 절실한 시점이다.

미중 경쟁 중간에 낀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 고난도 자세 제어 기술이 필요하다. 고도의 균형감각과 유연성을 요하는 일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연쇄 정상회의 성과에 상당히 고무됐을 법도 하지만 남북관계와 동북아 외교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구상과 역량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사상누각이 되기 십상이다. 박 대통령은 복잡하게 얽힌 사안들의 핵심을 파악하고 지혜롭게 우선순위와 완급을 조절해 과단성 있게 밀고 나가는 추진력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결국 출발점은 남북관계일 수밖에 없다. 즉 박 대통령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남북관계의 매듭인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유엔총회 참석 차 뉴욕을 방문을 했을 때 통일 문제와 관련해 “고르디우스 매듭을 끊듯이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박 대통령도 핵, 인권, 삐라, 5ㆍ24조치, 금강산 관광 재개 등으로 난마처럼 얽혀 있는 남북관계의 매듭을 단칼에 끊는 해법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다.

남북관계의 매듭을 박 대통령이 단칼에 풀어내면 미중 사이의 균형잡기를 포함해 동북아 외교를 주도해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반대로 그 매듭 풀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 외세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이니셔티브 구상을 통해 통일과 한민족 번영의 기틀을 마련해 나간다는 것도 한갓 공상에 그치고 말 것이다. 문제는 박 대통령에게서 자신의 말이나 상황의 엄중성과는 달리 남북관계를 단칼에 해결하겠다는 결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다자정상외교로 분주할 때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러시아에 자신의 특사를 파견하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중, 한미 정상간의 회담을 통해 가해지는 압박을 러시아 출구를 통해 해소하겠다는 계산이 읽힌다. 머리를 맞대고 남북관계를 옭아매고 있는 매듭을 풀어야 가야 할 상황에서 남북이 이렇게 엇나가서는 서로에 도움될 게 없다. 알렉산더가 고르디우스 매듭 자르듯 남북관계의 얽힌 매듭을 한 칼에 잘라내기 위해서는 김정은의 결단도 필요하다.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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