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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브렉시트, 트럼프, 그 다음은

입력
2016.10.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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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승리로 기우는 미국 대선

트럼프 신드롬은 자체로 큰 족적

정치권에 회초리 든 유권자 혁명

미국 대선(11월 8일)이 20일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판세는 대체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기우는 모양이다. 매체마다 차이가 있으나 2차 TV토론 이후 클린턴이 우세를 점한 뒤 갈수록 격차가 커지는 양상이다.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진영의 자중지란이 되돌릴 수 없는 임계점을 넘은 게 아닌가 싶다. “더 이상 트럼프를 방어하지 않겠다”는 당내 1인자 폴 라이언 하원의장의 발언은 임박한 선거일정에 비추어 대선 포기 선언이나 다름없다. 트럼프 캠프 내에서 “언론에 의한 선거조작”을 주장하며 ‘결과 불복’까지 거론하는 마당이니 이런데도 트럼프가 이긴다면 정말 역사에 길이 남을 선거가 될 것이다.

돌아가는 형세가 클린턴의 승리를 가리키고 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트럼프가 그냥 무너질 거라고 예상하기는 어렵다. 트럼프를 환호하는 유권자들의 지지세가 여전히 견고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미국 대선이 실제로 투표장에 나가는 유권자들의 적극적 행위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으니 충성도가 높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표심이 막판에 어떤 이변을 낳을지 알 수 없다.

아직 30%가 넘는 부동층의 향배도 큰 변수다. 만약 이들의 속마음이 트럼프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 시선을 의식한 ‘대답 없음’일 뿐 잠재적 트럼프 지지라면 지금의 여론조사는 모두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지금 미국 국민 사이에 만연한 기득권에 대한 반감, 정치혐오를 감안할 때 잠재적 클린턴 지지자보다는 잠재적 트럼프 지지자들이 훨씬 많다고 볼 수 있다.

4개월 전 영국 브렉시트 파문 당시로 돌아가보자. 국민투표 당일 아침까지도 브렉시트가 부결된다는 데 의심을 품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찬성과 반대의 차이가 적어 승부가 근소하게 갈릴 수 있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결과는 찬성 51.9% 반대 48.1%, 브렉시트의 완벽한 승리였다. 영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는 두 번 충격을 받았다. 영국이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게 첫 번째, 브렉시트 부결을 낙관하게 했던 수많은 여론조사가 그렇게 틀릴 수 있다는 게 두 번째였다. 국수주의자, 반평화주의자라는 낙인을 피해 영국인들은 속마음을 철저히 숨기고 있었던 셈이다.

영국인들이 분노한 것은 빼앗긴 일자리,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 빈부격차였다. 그리고 그런데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기성 정치를, 자살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장 폭력적으로 응징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브렉시트는 전 세계적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여 준다’는 제목으로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영국의 문제만은 아니며, 특히 신뢰의 위기는 통치의 위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금 트럼프 신드롬을 두고 ‘민주주의의 위기’‘이성의 실종’ 운운하는 것과 판박이다. 그때 미국발 트럼프 열풍을 두고 브렉시트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올바른 처방이 아니듯 트럼프가 미국병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한 경고가 무색하다.

정작 브렉시트가 통과되자 영국에서 온갖 자조적인 말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망연자실함에서 브렉시트를 후회한다는 ‘리그렉시트’, 브렉시트에서 탈출하자는 ‘exit 브렉시트’같은 신조어도 나왔다. 만약 미국 대선이 트럼프의 승리로 끝나면 ‘트럼프 자책’이 등장할까.

트럼프 지지자들이 브렉시트처럼 또 한 차례 말없는 다수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트럼프 신드롬은 자체로 큰 족적을 남겼다. 선거결과를 가지고 트럼프 현상을 재단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메시지는 전혀 다른 것일 수 있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역사는 언제든 퇴보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는 정치혐오가 으레 정치무관심으로 나타났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유권자들이 고분고분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유권자의 이성이니 민주주의의 가치니 하는 말은 낡은 정치의 자기변명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유권자가 회초리를 들었다는 점에서 브렉시트가 트럼프로 진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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