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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등록 : 2017.06.13 14:41
수정 : 2017.06.13 15:35

[이정모 칼럼] 그랜트 부부와 KBIF 공동조사단

등록 : 2017.06.13 14:41
수정 : 2017.06.13 15:35

자연에서 한 가장 강도 높고 가치 있는 동물 연구를 하나 꼽으라면 피터와 로즈메리 그랜트 부부의 ‘다윈 핀치에 관한 연구’를 들 수 있다.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을 지낸 최재천 교수는 그랜트 부부의 연구를 담은 조너선 와이너의 책 ‘핀치의 부리’ 서문에 “만일 다윈이 다시 살아온다면 그랜트 부부를 제일 먼저 찾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썼다. 진화 연구가라면 쉽게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윈 핀치는 남미 갈라파고스 제도에 살고 있는 작은 새들을 일컫는 총칭이다. 이름에 다윈이 붙어 있으니 마치 다윈이 엄청난 일을 한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다윈은 갈라파고스에서 핀치 표본을 잔뜩 채집해 영국에 보내기만 했을 뿐 그 중요성은 알지 못했다. 부리의 크기와 모양이 다른 것을 뻔히 보고서도 그들이 서로 다른 종이 아니라 같은 종의 작은 변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핀치의 부리가 먹이와 관련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 사람들은 후대의 과학자들이다.

가설을 세웠으면 확인해야 한다. 관측, 관찰, 실험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자연선택의 과정은 너무 느려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 다윈도 갈라파고스에 5주간이나 머물렀지만 진화의 진행을 한 번도 목격한 적은 없다. 새의 부리가 변하는 모습을 어느 세월에 확인한다는 말인가! 난감한 일이다. 누군가가 엄청난 세월을 보내며 관찰한다고 해서 딱히 이렇다 할 결과가 꼭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과학자들은 간혹 무모한 선택을 한다. 남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다윈주의자인 그랜트 부부는 1973년 갈라파고스 제도에 들어갔다. 그들의 소망은 오직 하나. 진화의 진행을 목격하는 것이다. 부부는 거기에서 44년을 보냈다.

과학자의 무모함에는 근거가 있다. 그랜트 부부가 갈라파고스 제도에 들어간 데는 이유가 있다. 섬은 진화를 연구하는 데 커다란 장점이 있다. 연구 대상이 도망갈 곳도 없고 다른 집단과 짝짓기할 수도 없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살고 있는 생명들은 마치 실험실 사육장 속의 실험동물처럼 고립되어 있는 셈이다.

“날개 길이 72㎜. 다리 길이 21.5㎜. 부리 길이 14.9㎜, 두께 8.8㎜, 너비 8㎜, 깃털 색깔은 까만색 5번, 까만색 부리, 몸무게는 22.2g. 나이는 열세 살. 이 섬에는 현재 같은 세대의 핀치가 세 마리 더 있고, 그보다 연장자는 전혀 없다.”

그렇다. 그랜트 부부는 섬에 살고 있는 핀치를 모두 구분한다. 누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다. 심지어 새들의 족보까지 꿰고 있다.

그랜트 부부가 새를 잡아서 0.1㎜ 단위까지 측정하면서 기록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리다. 부리가 생사의 갈림길을 정해주기 때문이다. 1976년 가뭄 때 중간땅핀치들은 부리 폭 1.5㎜의 차이로 살아남느냐 죽느냐가 결정됐다. 씨앗을 파먹고 사는 중간땅핀치는 부리가 크고 두터워야 유리하다. 1986년 중간땅핀치의 부리 폭은 평균 8.86㎜였다. 그런데 이 해에 비가 많이 오자 먹이가 풍부해졌다. 그랜트 부부는 중간땅핀치의 부리 폭이 다음 해에는 8.74㎜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먹이가 풍부하면 부리가 가늘고 작은 핀치들도 먹이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87년 실제 측정 결과 중간땅핀치의 부리 폭이 실제로 평균 8.74㎜였다.

그랜트 부부는 생물학계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이론, 즉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이론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다윈의 걱정과는 달리 자연선택의 작용은 드물지도 또 느리지도 않다는 것도 보여줬다.

갈라파고스가 태평양 가운데 떠 있는 섬이라면 지구는 우주에 떠 있는 작은 섬이다. 규모는 다르지만 모든 생명체는 결국 섬에 고립되어 있는 셈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든 생명을 관찰하고 채집하여 측정하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 이 작업은 전 세계 과학자의 협력망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그래야 진화의 종합적인 모습을 알 수 있고 또 생명의 진화 방향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생물다양성정보기구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지부 격인 국가생물다양성기관연합(KBIF)이 정기적인 공동학술조사를 통해 국제협력망에 참여하고 있다.

KBIF는 2007년부터 전국을 열 개 권역으로 나눠 정기적인 모니터링을 통한 생물상의 변화를 조사하고 있다. 한 개의 권역을 6월과 8월에 일주일씩 어류, 조류, 식물, 포유류, 해양생물 등 분류군에 따라 조사한다. 매년 한 개의 권역을 조사하고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지난 후 그 자리를 다시 찾아 그 사이에 생물들은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지난 월요일부터 KBIF는 여수 돌산도 일대를 10년 만에 다시 찾아 조사하고 있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최근 3년 사이에 연구원의 절반이 바뀌었다. 상당수의 과학자들이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과학자들도 그랜트 부부만큼이나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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