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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보조금도 직거래하자

입력
2016.03.3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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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 허위로 문서를 작성해 국고보조금을 빼돌렸다. 한 어린이집 원장은 해외체류 아동을 출석한 것으로 속여 보조금을 부당 수령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보조금부정 신고센터에 최근 2년간 총 723건에 633억원이 신고되었단다.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오죽하면 ‘정부 돈은 못 먹으면 바보’라는 말까지 있겠는가. 2015년 국고보조금은 총 58조4,000억원에 달하는데 거의 반이 복지용도이고, 농림수산 환경 문화 등 다양하게 쓰인다.

기획재정부는 부정수급자 처벌을 강화하고 보조금관리용 정보시스템도 만들고 있다. 필요한 조치여서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안하고 싶다. 국고보조금은 기획재정부에서 나와 수혜자에게 도달하기까지 3~5단계의 중간기구를 거친다. 중간기구란 주무 부처, 지자체, 공공기관, 관련 민간단체를 말한다. 소비자가 1,400원을 내면 농민에겐 300원이 돌아 간다는 농산물유통구조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복잡한 보조금 유통구조가 문제의 핵심이다. 우선 단계가 많으면 그만큼 부정의 가능성도 커진다. 중간 기구들은 돈 나눠 주는 힘을 갖게 되고 그 힘은 부정부패의 원천이 된다. 부정부패는 아니라 해도 중간기구들은 기득권을 가지게 된다. 보조금 사업 축소 소식이 들리면 수혜자가 아니라 중간기구들이 기재부로 달려온다. 불필요한 보조사업 신설을 위해 로비하는 것도 이들이다. 또한 수혜자에게 보조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접점 기관은 수혜자의 자격을 확인할 유인이 없다. 접점 기관은 보조금을 다 지출하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보조금 받겠다는 사람이 늘 반갑다. 이러한 보조금 유통구조를 방치한 채 관리만 강화하는 것으론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근본해결을 위해선 보조금 전달체계를 공급자 중심에서 수혜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유통마진을 줄이기 위해 중간상인을 건너 뛰는 농산물 직거래제도가 각광을 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보조금을 수혜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보조금 직거래제도’를 도입하자. 우리는 농민 노인 장애인 여성 청소년 아동 등 지원 대상이 있으면 기관을 신설하거나 기존 기관에 보조금을 지원한다. 공급자를 지원하는 것이다. 공급자간 경쟁도 없고 소비자의 선택도 없다. 그 과정에서 공공부문의 힘은 커져만 간다.

앞으로는 수혜자에게 직접 보조금을 주고 알아서 서비스를 구매토록 해야 한다. 본인이 원하는 분야에 쓸 수 있으므로 만족도가 올라갈 것이다. 반면 서비스를 독점 공급하던 기관은 경쟁을 하게 된다. 이 경쟁은 서비스의 질을 높일 것이다. 이렇게 수혜자가 직접 보조금을 받게 되면 수혜자 자격에 대한 심사가 더 중요해진다. 수혜자 자격을 사후 샘플 조사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보조금 직거래제는 국민의 복지 체감도를 크게 높일 것이다. 보조금은 각종 무상서비스, 가격보조 등 공급자를 통해 수혜자에게 전달된다. 그런데 많은 국민은 이를 복지혜택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이 비용을 사회적 약자에 현금으로 직접 지급하면 확고히 복지혜택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복지체감도가 높아지면 납세저항도 약화될 것이다.

보조금 직거래제는 내수부진에 빠진 경제에도 희소식이다. 보조금 수혜계층에는 저소득층이 많아 소비성향이 높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정부서비스가 현금지원으로 대체되면 부처간 칸막이가 의미가 없어진다. 국민을 믿지 못하고 쓰임새를 정부가 지정해야 한다는 발상에는 찬성할 수 없다. 정 오남용이 우려되면 바우쳐 발행도 검토할 수 있다.

보조금 직거래제는 기존 중간 기구들의 반발을 살 것이다. 유통마진을 챙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공공부문의 힘을 국민에게 돌리는 어려운 개혁이다. 정부는 국민이 원하는 바를 찾아서 제공한다는 발상을 버리고 국민에게 그 선택을 맡겨야 한다. 그래야 모든 것을 정부에 요구하는 정부 만능주의도 줄일 수 있다. 수혜자와 직거래가 가능한 보조사업을 최대한 찾아 보자.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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