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컬처피디아] 원작소설 좋고, 영화 좋고... '스크린셀러' 천하

알림

[컬처피디아] 원작소설 좋고, 영화 좋고... '스크린셀러' 천하

입력
2017.09.19 04:40
0 0
원작 소설과 영화 인기가 동반 상승하는 현상이 나오고 있다.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은 영화 개봉과 맞물리며 14만부를 더 찍었고, 영화 역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쇼박스 제공
원작 소설과 영화 인기가 동반 상승하는 현상이 나오고 있다.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은 영화 개봉과 맞물리며 14만부를 더 찍었고, 영화 역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쇼박스 제공

애초 소설가 김영하는 여론주도층이 사랑한 작가였다. 2004년 동인문학상, 이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학계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예외적인 작가’(심진경 문학평론가)가 된 후 여론주도층, 특히 문화예술계 종사자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그가 쓴 책 20여권 중 판매 부수 10만권을 넘은 작품은 거의 없었다.

한데 그가 4년 전 발표했던 장편소설이 돌연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지난 6일 개봉한 동명 영화의 원작 ‘살인자의 기억법’(문학동네)이다. 2014년 7월 출간한 이 장편은 올 5월까지 13만부를 발행한 김영하의 최고 히트작으로 꼽힌다. 이후 ‘살인자의 기억법’은 영화 개봉에 힘입어 14만 5,000부를 더 찍었다. 영화 원작인 한국소설이 종합 1위를 차지하기는 2011년 공지영의 ‘도가니’ 이후 처음이다.

영화 원작이 돼 베스트셀러로 떠오르는 경우를 ‘스크린셀러’로 칭한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여느 스크린셀러랑 다르다. 원작소설이 영화 개봉 시기에 영향을 주고 흥행에까지 큰 힘을 보태서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지난해 1월 촬영을 종료하고, 올해 개봉 시기를 저울질해 왔다. 영화 투자배급사 쇼박스 관계자는 “김영하 작가의 예능프로그램 ‘알쓸신잡’ 출연이 맞물려 개봉 시기가 잘 맞았다”며 “김영하 작가가 화제의 인물이 되면서 흥행에 긍정적 영향 미쳤다”고 말했다. 영화는 주말(금~일요일) 박스오피스 1위를 2주 연속 차지하며 206만3,881명(17일 기준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모았다. 원작 소설과 영화의 인기가 동반 상승한 셈이다.

스크린셀러 현상의 심화는 출판가에 새로운 풍경을 만들고 있기도 하다. 영화 판권이 팔린 소설에 웃돈이 붙는 게 대표적이다. 김준혁 황금가지 주간은 “10년 사이 스크린셀러가 인기를 끌다 보니 이제는 영화 판권이 판매된 해외 소설의 판매가도 올라가고 있다”며 “영화 개봉을 감안해 별도의 계약 조건을 제안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영화화 우선 기준 ‘서사성’

영화로 만들 소설을 택하는 기준은 당연 서사성에 있다. 한 중견 영화사 관계자는 “서사 구조에 기승전결이 명확해야 시나리오로 옮기기 좋다”며 “여기에 당대 대중의 욕망을 담아낼 수 있어야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건이 분명하고, 명쾌한 결론을 맺는 공지영의 소설이 영화로 많이 만들어지는 이유다.

줄거리가 반드시 명확할 필요는 없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소설은 시나리오 작업을 거치면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된다”며 “‘살인자의 기억법’,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처럼 줄거리가 단순하지만 설정이나 캐릭터가 강렬한 작품이 영화 판권으로 팔리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영화 '덕혜옹주'(왼쪽부터)와 '군함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한 장면. 영화 개봉으로 뒷심을 발휘하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CJ엔터테인먼트, CGV아트하우스 제공
영화 '덕혜옹주'(왼쪽부터)와 '군함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한 장면. 영화 개봉으로 뒷심을 발휘하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CJ엔터테인먼트, CGV아트하우스 제공

원작 소설 흥행은 ‘복불복’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원작 소설이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진 않는다. 한수산의 ‘군함도’(창비)는 지난해 출간 후 4만부, 동명 영화가 개봉한 올해 4만부가 팔리는 데 그쳤다. 영화 흥행이 기대 밖이었고 소설 주요 독자층인 20~30대가 읽기에는 이야기가 너무 크고 무거웠다.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인생’ 역시 출간 직후 20여 만부가 팔렸지만, 영화 개봉 효과는 미미했다.

국내 소설의 경우 대개 베스트셀러의 판매량이 떨어지는 시점에서 영화가 개봉하면 다시 판매량이 올라가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경우가 많다. 공지영의 ‘도가니’는 영화 개봉 전 36만부, 개봉 후 48만부가 팔렸는데 이중 42만부가 개봉 후 3개월 만에 팔렸다. 김려령의 ‘완득이’는 영화 개봉 전 42만부, 개봉 후 26만부(개봉 후 3개월 이내 10만부)가 팔렸다. 출간 후 이미 100만부가 팔린 권비영의 ‘덕혜옹주’(다산책방)는 동명 영화 개봉 후 8만부가 더 팔리는 뒷심을 발휘했다. 56만부가 팔린 김훈의 ‘남한산성’(학고재)은 올 추석 동명 영화 개봉을 앞두고 지난 7월부터 2달 만에 2만부가 더 팔렸다. 2012년 출간 후 15만권이 나간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다산책방)도 올 여름 영화 개봉 후 1만부를 더 찍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소장은 “영화화된 소설 중에서도 젊은 세대의 정서, 글쓰기 패턴을 반영한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기록할 글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살인자의 기억법’을 대표 사례로 꼽았다.

영화 개봉 후 베스트셀러로 진입하는 경우도 있다. 스티븐 킹의 ‘그것’(황금가지)은 2004년 국내 출간 후 14년간 1만부 남짓 팔렸지만 이달 초 영화개봉 후 2주 만에 2만부가 나갔다. 박범신의 ‘은교’(문학동네)는 출간 후 5만부를 발행하다 영화 개봉 두달 전인 2012년 2월부터 지금까지 17만부를 더 팔았다. 이런 현상은 해외 소설, 특히 독자층이 한정된 장르물에서 많다. 김준혁 주간은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작품은 주로 SF와 판타지”라며 “스릴러, 추리물은 작품 후반부에 의문이 생기거나 미스테리한 부분이 강하면서도 대중적인 작품이 영화화됐을 때 소설책 판매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스파이 소설, 액션 소설, 로맨틱 코미디물은 영화화가 소설 판매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스크린셀러 현상을 보며 전문가들은 새 미디어 환경에 맞는 출판 기획이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장은수 대표는 “단문에 익숙한 젊은 독자층이 소설 읽는 습관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스크린셀러 현상은 환영할 만하다”면서도 “일본 히가시노 게이고처럼 순소설과 장르소설을 잇는 중간소설이 국내에 거의 없어 이 분야 작가를 발굴하고 시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김표향기자 suza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