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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루바토, 일정한 틀 안의 자유로움

입력
2017.06.1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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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용어 중에 ‘템포 루바토(Tempo rubato)’ 라는 게 있다. 박자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연주하라는 뜻이다. 박자대로만 연주해서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기 힘든 경우, 연주자가 임의로 박자를 밀고 당기면서 자유롭게 노래하라는 것이다.

학생들은 어렵고 일정한 빠르기의 곡은 잘 해내면서도 루바토는 잘 소화하지 못한다. 자유롭게 치라고 하니 더욱 못한다. 어디에서 어떻게 당기고 풀어주는지를 악보에 모두 표시 해달라는 학생도 있다. 마치 단어 1,000개를 외우라고 하면 금방 해내는 학생이 서정시를 쓰라고 하면 어느 단어를 어디에 쓰면 되느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

‘템포 루바토’와 ‘템포감이 없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올바른 템포 감각을 지닌 사람만이 그 곡에 적합한 루바토를 만들 수 있다.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있어야만 밀고 당김의 ‘조화’를 제대로 가늠할 수 있다. 본인은 스스로 적합한 루바토로 연주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듣는 이에게는 과한 것일 수 있다. 반대로 본인은 한껏 루바토를 한 줄 착각하지만 실상은 기계적인 연주를 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박자의 기본기는 확실하게 연마해야 한다. 그러나 박자의 기본기만 탄탄할 뿐 거기에서 음악적으로 진일보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연주자가 되기는 힘들다. 아마도 박자를 정확히 지켜서 연주하는 것은 인공지능 악기가 사람보다 훨씬 더 잘 할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의 심미적 귀는 컴퓨터 같은 박자의 완벽함만으로는 쉽게 감동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컴퓨터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좋은 루바토 테크닉을 가질 수 있을까? 어떤 루바토가 좋은 루바토일까?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시간예술 속의 연주자가 악기와 교감하며 공간의 울림을 타고 청중의 마음에 도달하기까지에는 수많은 변수와 즉흥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루바토도 그 중의 한 요소이다.

우리는 연주자의 루바토를 들으며 그의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내공이 있는 연주자의 루바토는 자연스럽다. 남의 흉내가 아닌 자신의 노래를 하고 있으므로 청중과의 소통이 원활하다. 임기응변에도 강하다. 표현의 자유로움이 조금 과한 것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 바로 담백함으로 조화를 이룬다. 잠시 몰아치는가 싶으면 어디에서인가 자연스럽게 풀어준다. 숨을 조금 길게 쉬는가 싶으면 다음 악구에서는 숨을 쉬지 않고 가볍게 지나간다. 일정한 박자에 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연주한 것 같지만 곡 전체 기승전결의 짜임새에 흐트러짐이 없다. 리듬의 수리적 질서 뿐 아니라 음악적, 심리적 질서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어디 음악에서뿐이겠는가. 삶 속에서의 루바토 역시 쉽지 않다. 일정한 틀 안에서의 자유로움! 별 의식 없이 행동했는데도 거슬림이 없는, 정형화된 모습이 아닌데도 조화로운, 과하지 않아 더욱 빛나는, 깊은 내공이 깃든 ‘일상 속에서의 루바토’는 쉽지 않다. 확실한 것은 평소의 일상 속에서도 부단히 노력하여 기본 품격을 갖추어야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로 진실 되게 삶을 연주해야 한다는 것, 그 때에 감동이 있다. 음악이 그러하듯 우리의 삶도 그러하리라 믿는다.

김준희 피아니스트ㆍ백석예술대 음악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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