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은경 기자

등록 : 2016.05.03 14:01

[반려배려] 식용개 ‘다비’구조 동행기

등록 : 2016.05.03 14:01

처음 철창을 나온 다비는 처음 본 사람들이었지만 거부하지 않고 품에 안겼다. 한국일보 ‘나는 식용개 다비입니다’동영상 캡처

지난주 월요일 새벽 5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미국 인도네시아 캐나다에서 온 동물보호활동가들과 만나 강원도 원주의 한 개농장으로 향했다.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6일까지 2주에 걸쳐 식용으로 키운 개 172마리를 미국으로 보내는 ‘농장 폐지 프로젝트’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목표는 미국 샌프란스시코와 뉴저지행 비행기에 오를 16마리를 철창에서 꺼내 인천공항까지 보내는 것이었다.

예전 개농장을 다녀온 후 철창 속에서도 새끼를 보호하려는 어미개의 눈빛이 잊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은 죽음에서 벗어나 모두 새 삶을 찾게 된 개들이라는 생각에 마음은 가벼웠고, ‘한번 안아보고 싶다’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겹치면서 직접 개 우리 이동을 돕겠다 자청했다.

농장 안에 들어서자 개들이 컹컹 짖어대며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다. 철창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20㎏ 안팎, 크게는 50㎏ 이상의 개들이 한꺼번에 짖어대며 뛰어대는 통에 통로를 지나가기조차 쉽지 않았다.

국제동물보호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SI) 활동가가 백구와 황구 2마리가 있는 철창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개들은 당황한 눈치였다. 활동가는 파란 줄을 천천히 개의 목에 채운 다음 입을 묶었다. 혹시라도 개가 놀라서 사람을 물 수도 있으므로 이를 막으려는 조치였다. 활동가는 개 목에 줄을 걸어 잡아끌지 않고 일단 개를 진정시킨 다음 동료와 함께 개를 안아 케이지 안에 이동시키고 줄을 풀어주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던 개도 케이지 속에서 안정을 되찾았다.

큰 개 꺼내기를 돕겠다고 지원했던 호기는 어느새 사라졌고, 작은 개라도 안을 수만 있으면 다행이다 싶던 순간 철창 안에서 꼬리치고 있는 초롱초롱한 눈빛의 작은 개 세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중 ‘다비’라는 이름을 가진 개를 안아 이동장에 넣는 걸 돕기로 했는데, 겁에 질린 다비는 입에 줄을 묶을 필요도 없이 품에 쏙 안겼다. 다비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철창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다비를 비롯한 이곳 개들 모두 음식 찌꺼기를 먹으며 목욕 한번 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당연히 개들에서 냄새가 났고, 긴장한 개들은 안는 순간 배변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활동가들은 냄새나 옷에 이물질이 묻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개를 달래고 안심시키는 데 집중했다.

인천공항화물청사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가기 위해 검역을 기다리고 있는 다비가 카메라를 보고 있다. 고은경기자

개장 속 다비는 구석에 웅크린 채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주변 움직임을 살폈다. 활동가들이 다비를 꺼내 꼭 품에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뽀뽀를 해줬다. 길어봤자 10분이 지났을까. 이 시간이 다비를 변화시켰다. 처음 사람 품에 안겼던 다비는 케이지 속에서도 사람이 지나가거나 아는 척만 해줘도 꼬리를 흔들었다.

이렇게 세계 각국에서 온 활동가들이 새벽부터 개를 구조하고, 개를 미국으로 입양까지 보내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 부끄러웠다. 개 수백 마리를 사서 입양을 보내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비용,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으로 우리나라를 비난하지 않을지 걱정도 됐는데, 구조활동을 본 이후 기우였음을 확인했다. 휴가를 내고 이번 구조 활동에 동참한 미국의 한 봉사자는 개를 식용으로 키우는 것을 비난하지 않고 “구조할 기회를 줘서 감사하며, 두 나라가 함께 개들을 구조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자”며 환하게 웃었다.

개농장 관련 정부의 관리나 감독과 같은 근본적 대책 없이 식용 개가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걸 개선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도 올여름 복날을 나기 어려웠던 개들이 먼 땅에서나마 반려견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기회를 얻게 된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 졌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 ‘나는 식용견 다비입니다’영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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