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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논설위원

등록 : 2016.05.09 20:00
수정 : 2016.05.09 22:36

[이충재칼럼] 옥시! 정부 책임 끝~

등록 : 2016.05.09 20:00
수정 : 2016.05.09 22:36

광우병, 세월호 때 책임 회피한 정부

가습기 살균제 참사도 업체 뒤 숨어

보수 정권 8년 ‘위험의 사회화’ 뚜렷

영국에 있는 옥시 본사를 방문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족들이 지난 5일 런던 도심에서 시민들에게 피해 사례를 알리고 있다. 런던=연합뉴스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시민이 분노한 건 발병 우려보다 국가의 직무유기였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생각이 전혀 없는 정권에 대한 저항 의식이 사람들을 광장으로 이끌어냈다.

자본과 상품을 앞세운 국가에서 정부는 그에 수반하는 사회적 위험에 맞서 국민을 지켜낼 능력과 의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책임감은커녕 이에 대한 기본적 인식조차 갖고 못했다.

무능하고 비상식적인 정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외부로 돌리려 한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광우병 사태는 이전의 노무현 정권 탓이고 괴담을 퍼뜨린 ‘PD수첩’때문”이라는 식으로 떠넘겼다. 이미 대법원의 ‘PD수첩’ 무죄 판결을 통해 언론의 비판을 혹세무민으로 매도한 정부에 대한 심판이 내려졌는데도 잠꼬대를 했다.

권위주의 정권은 국가의 행위를 항상 선과 국익으로 포장한다. 대통령은 공동체를 위해 매사에 신중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고 국민을 오도한다. 대통령과 정부는 무오류의 자기최면에 빠져들고, 정권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실패해도 사과나 책임 인정을 외면한다. 나아가 국민의 분노를 돌리고 시선을 분산시킬 희생양을 찾는다.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다. 박근혜 정권은 구조실패 책임이 청와대로 향하자 의혹의 눈길을 유병언 전 청해진해운 회장에게 쏠리게 했다. 마치 참사의 모든 책임이 유병언에게 있는 듯 몰아붙였고 정부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토끼몰이는 유병언이 숨진 채 발견될 때까지 계속됐다. 상황이 끝났을 때는 박 대통령의 사라진 일곱 시간 행적을 규명할 동력이 사라진 뒤였다.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서도 정부는 쏙 빠졌다. 업체 뒤에서 숨을 죽인 채 여론의 향배만 주시하고 있다. 1994년 세정 목적으로 허가된 화학물질이 인체 호흡기로 침투하는 가습기 살균제로 탈바꿈했을 때 왜 막지 못했는지, ‘인체에 무해하다’는 허위광고는 왜 허용했는지 한 마디 설명도 없다. 2006년부터 원인 불명의 폐질환으로 사망자가 잇따라 보고됐는데 왜 가습기 살균제와의 관련성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2011년 역학조사 발표 이후에는 왜 피해자들을 외면했는지 납득할 만한 답변을 내놓지 않는다.

10년 동안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더니 대통령이 몇 마디 지시를 내리자 정부와 새누리당은 이제야 대책을 마련한다며 야단법석이다. 국회에 야당이 제출한 법안이 3년 넘게 계류 중인데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온다. 2013년 피해자 구제법안을 다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정부의 방관자적 태도가 잘 드러난다.

-(윤성규 환경부장관) “현재 법안이 제출된 대로 일반 국민이 낸 세금을 가지고 일반 국민이 책임을 지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심상정 의원) “국민의 대표가 예산심의권을 갖고 있고 국민이 이야기하는데, 왜 장관이 그 판단을 하세요?”

-(윤 장관) “아니, 정부 내에서도 그런 논의가 있었고 그래서 이것을…”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는 제조업체와 개인간의 문제로 국가가 나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끝까지 책임을 회피했다.

보수정권 8년 동안 나타난 두드러진 변화는 ‘위험의 사회화’다. 관리돼야 할 위험이 관리되지 않고 국민에게 분산되는 현상이다. 국민은 과중한 책임에 시달리지만 국가는 조직적이고 구조적으로 면책 특권을 누린다. 가습기 참사에서 정부는 “이윤을 위해 무리하게 운영한 기업이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라이트 밀즈는 진작에 간파했다. “우리는 저 높은 곳에서 무책임성이 조직화됐다고 느낀다. 특히 우리 시대의 역사적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 가습기 사태는 결국 개별기업의 일탈로 끝날 것이다. “빨래 끝~”이라는 유행어를 남긴 옥시의 광고 문구를 빌리자면 “정부 책임 끝~”이다.

/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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