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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귀열 영어] Kitchen Cabinet vs. Parlor Cabinet(비선 그룹과 공식 내각)

입력
2016.12.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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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도 잘 모르는 표현인 kitchen cabinet이 한국 정치에 등장했다. 이 말이 왜쓰일까 의구심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이상한 말은 아니다. 권력자가 가까운 지인들과 간단하게 스낵을 먹으며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눈다는 뜻이라서다. 공식 내각을 뜻하는 응접실 내각(parlor cabinet)과의 대비다. 공식 조직은 응접실에서 절차를 갖춰 모임을 갖는다.

박근혜 대통령측이 헌법재판소에 낸 답변서에서 kitchen cabinet 용어를 사용한 것은 상당히 의외다. 이 말의 배경과 원천을 제대로 안다면 언급할 수 없을 것이라서다. 이 말은 미국 7대 대통령 Andrew Jackson때 나왔다. Jackson은 내각 외에 소수 혁신파(ginger group) 그룹과 자주 만났다. 말하자면 비선그룹인 셈인데, 이 비선 그룹이 말썽을 낳았다.

당시 국방장관 John Eaton은 Margaret Peggy O’Neill과 재혼했는데, 문제는 이들 부부의 평판이었다. Peggy는 10대 때부터 숱한 남자와 어울리다가 17세에 술주정뱅이에 빚도 많은 39세의 해군 경리관과 결혼했다. 이 남편은 Eaton과 친분이 있었고, 그 인연으로 해군 내 사업을 알선했다. Eaton과의 결혼도 남편이 죽은 뒤 온갖 염문을 뿌린 뒤에야 성사됐다.

이들에게 과연 장관과 장관 부인으로서의 자격이 있느냐는 의문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가자 급기야 내각의 재구성을 위해 모든 장관들이 사표를 내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Jackson정부는 실패한 정부가 됐고 부통령과 국무장관을 지낸 Martin Van Buren이 8대 대통령이 됐다. 이렇게 본다면 kitchen cabinet은 비선그룹의 실패를 지칭하는, 말하자면 대통령에게 그리 좋은 용어가 아니다.

물론 John F. Kennedy나 Lyndon Johnson 대통령도 kitchen cabinet 그룹의 지인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했다. Reagan대통령도 그의 고향 California의 지인들과 만났으며 Carter대통령도 별도의 사적인 그룹과 만났다. 1960년대 이후 영국에도 수상에게는 소위 inner circle이 있었고 호주의 수상에게도 kitchen cabinet이 있었다. 호주에서는 수상이 kitchen cabinet에 지나치게 의존하다가 물러나게 된 일도 있었다. 긍정적인 의미로는 권력자의 두뇌집단이라는 의미에서 Think Tank, Brain Trust라고도 부른다. 혹은 인종문제가 있는 미국은 흑인 정책을 위한 흑인 비선 그룹 Black Kitchen도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들은 최소한 대통령과 국정에 대한 여러 의견을 나눴다. 하지만 그 어느 대통령도 본관 집무실보다 사저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지는 않았다. 화장과 치장에만 신경 쓰는 대통령도 없었다.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응접실이든 부엌의 찬장 앞이든,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것이 국정이기라도 했더라면 국민들이 이렇게 슬프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한테 구차한 변명만 들어야 하는 국민은 그래서 더 슬프고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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