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성 기자

등록 : 2017.12.19 16:32
수정 : 2017.12.19 18:46

이해인 수녀 “50년 수도자의 길, 잘 견뎌 온 걸 자축하고 싶었죠”

산문집 '기다리는 행복'에서 뻔뻔하지만 가슴저린 행복 설파

등록 : 2017.12.19 16:32
수정 : 2017.12.19 18:46

19일 서울 후암동 성분도은혜의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해인 수녀가 최근 낸 산문집을 들어 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샘터 제공

“아녜요. 전 수녀 아니라 작가했어도 제법 괜찮은 작가가 됐을 거에요. 당신이 수녀라 인기 있는 거란 말을 워낙 많이 들어서, 이제는 그냥 제 스스로 그냥 작가를 했어도 꽤 괜찮은 작가가 됐을 거라 말하려고요. 하하하.”

19일 서울 후암동 성분도은혜의뜰에서 만난 이해인(72) 수녀는 유쾌하게 웃었다. 수녀는 산문집 ‘기다리는 행복’(샘터)을 냈다. 2008년 대장암 발병했을 때 ‘명랑 투병’하겠다고 선언했던 수녀다운 제목이다. ‘기다리는 행복’은 사실 좀 ‘뻔뻔한 행복’에 가깝다. 그가 뻔뻔해지자 싶었던 건 여러 계기가 있다.

2018년은 수녀가 되겠다고 맹세한 지 딱 50년이 되는 해다. 산문집은 50년을 기념하는 책이기도 하다. “내가 과연 수도자의 길을 갈 수 있을까” 했던 걱정은 이제 옛 기억이 됐다. 그 걱정을 딛고 반세기 세월을 보냈으니 이제는 “착한 것도, 인내심이 많은 것도 아닌 내가 잘 견뎌온 걸 자축해주고 싶고, 또 이런 나를 잘 견뎌준 주변 사람들을 칭찬해주고 싶다”고 했다. 불안하고 초조했던 마음 대신 뭔가 어른스럽고 여유 있는 마음을 지닐 때라는 다짐 같은 것이다.

다른 계기도 있다. 지난달 18일 친언니인 이인숙 수녀가 선종했다. 자신을 수녀의 길로 이끌어준 언니다. “제가 어릴 적에 좀 허영기도 있고, 남학생들에게 인기도 있는, 공주 같은 학생이었거든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대학 2학년생이던 언니가 20여명 정도만 받는 엄률수도원에 들어갔어요. 그때 언니가 그곳 생활에 대해 제게 써준 편지가, 결국 저를 이 길로 가게 한 겁니다. 지나고 보니 그 편지들이 제겐 일종의 영적 수련이 된 것 같아요.” 책을 통해 그 언니에게 ‘내가 그래도 잘 해내고 있는 거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또 다른 계기는 좀 웃기다. 재작년 부산대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다. 가톨릭계열 병원에 안가고 일반 대학병원 간 걸로 봐서 너무 급박한 상황이 있었다, 이해인 수녀가 죽었다는 소문이 쫙 돌았다. 경기 수원의 한 성당에서 강연하고 있던 수녀의 귀에도 이 소문이 들어갈 정도였다. “덕분에 좋은 기도를 너무 많이 받아서 행복”하기도 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그런 걱정에 대해 자신의 자세를 한번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했다.

‘기다리는 행복’은 그래서 ‘뻔뻔한 행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마음이 많이 저린 행복’이기도 하다. 책에는 법정스님과의 편지, 세월호 참사 당시 썼던 시 등 다양한 내용이 망라됐다. 이젠 수도원 식구들에게 더 집중할 생각이다. “수녀와 작가를 병행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그간 알게 모르게 피해줬던 우리 공동체에게 공을 들이려고요.”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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