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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수장은 정말 답변하지 않아도 되나요?

입력
2016.10.1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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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과 11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고영주(왼쪽)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과 고대영 KBS 사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10일과 11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고영주(왼쪽)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과 고대영 KBS 사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답변하지 마.”

잔뜩 화가 난 두 사람이 나눈 대화처럼 들립니다. 지난 10일과 11일 각각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국정감사에서 각기 논란이 된 말들입니다. 서로 다른 시점에서 쓰인 말들이었으나 불쾌감을 꽤 유발한다는 공통점을 지녔습니다. 국정감사에서야 해마다 각종 구설과 화제가 일어난다지만 올해 미방위 국감에서는 때아닌 ‘답변’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전자는 10일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산주의자”이냐는 야당 의원의 거듭된 질문에 내 놓은 말이고, 후자는 ‘이정현 녹취록’ 의혹과 관련해 야당 의원의 질문을 받은 KBS 보도본부장을 향해 고대영 사장이 한 말입니다.

말을 던진 상대는 다르지만 두 사람의 말에는 공통적으로 ‘질문에 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습니다. 또 그 의지만 뚝 떼어놓고 보면 문제될 것도 없습니다. ‘국회에서의 증언ㆍ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3조에 따르면 국정감사 등 국회에 출석한 증인에게는 증언은 물론 선서와 서류 등의 제출까지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부 이유를 소명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어쨌든 우리나라 법이 이들에게 ‘답하지 않을 의지’ 자체는 인정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발언이 이런 법의 보호와는 무관하게 국민적 질타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MBC와 KBS란 양대 공영방송을 관리감독 및 경영하는 두 수장들이 법적 권리를 스스로 남용하거나 오용했기 때문입니다.

고 이사장은 문 전 대표를 공산주의자라고 언급해 최근 법원의 3,0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받은 사실과 관련해 국감에서 집중 공세를 받았습니다. “문 전 대표가 공산주의자라는 주장에 대한 증거를 법원에 제출했다” “(공산주의자라는)사실을 알고도 문 전 대표를 지지한다면 문제가 있다고 말한 것” 등 국감 초반부터 자신의 입장을 거침 없이 쏟아내던 고 이사장은 종반부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의 “문재인 전 대표가 공산주의자입니까?”라는 거듭된 질문에 이렇게 맞섭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추론이 또 길어질 테고. 증언을 거부할 수 있는 국회법에 따라 증언을 거부하겠습니다.”

고 이사장은 지난해 국감에서도 똑같은 질문에 “솔직하게 말하면 국감장이 뜨거워지고, 사실과 다르게 이야기 하면 법정에서 불리해지니 말씀 드리지 않겠다”며 답변을 거부했다가 야당 의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는 등 논란을 일으켰던 전례가 있습니다.

고 이사장과 달리 국감에 처음 출석한 고 사장은 답변하지 않아도 될 권리를 잘못 행사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 사장과 함께 증인으로 출석한 김인영 보도본부장에게 KBS 뉴스가 ‘이정현 녹취록’을 왜 보도하지 않았냐고 묻자 고 사장은 “답변하지 마”라며 반말로 지시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만일 질의를 받은 당사자인 김 보도본부장이 소명을 밝히며 답변을 거부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겁니다. 그에게도 답변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그 이유와 내용에 따라 의원의 추가 질의를 받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고 사장의 발언은 다른 증인의 증언을 가로막아 감사를 방해하는 행위가 돼 버렸습니다. 더군다나 국민이 지켜보는 국감에서 부하직원에게 반말로 지시를 내리는 고압적인 자세까지 도마에 오르며 KBS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얼굴이 화끈거렸다”는 평가가 오가고 있습니다.

양일간 현장에서 국감을 지켜보면서 여러 생각이 스쳤습니다.

두 사람이 경력의 대부분을 검사와 기자로 각각 살아온 만큼 질문과 추궁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생긴 해프닝 정도로 사안을 단순화해 보려고도 했습니다. 증인으로 출석한 기관장들을 마치 범죄자라도 되는 듯 몰아붙이는 데만 급급한 일부 의원들의 태도에 눈살이 찌푸려진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공정성과 독립성이란 존재 가치가 점점 무너지고 있는 공영방송의 현실을 떠올릴 때 두 수장의 ‘답변 거부’를 지지해 줄 국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대로 말하면’이란 전제로 이미 야당의 전 대표를 공산주의자로 확신한 고 이사장과 ‘언론자유 침해’를 앞세워 국감 질의를 가로막은 고 사장. 이날 국감을 보며 두 사람의 MBC와 KBS가 국민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습니다. 법과 규정과 윤리를 유리한 방식으로만 해석하려는 두 사람의 태도가 공정성을 잃은 공영방송의 뒤틀린 현실을 보여주는 듯해 씁쓸했습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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